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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같은 사주, 다른 풀이 - '팔자 센' 여자들을 위한 항변

[서평] 《내 팔자가 세다고요?》, 릴리스, 북센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새해가 다가온다. 사주보러 가는 사람이 많아질 시기다. 한 해가 시작될 무렵, 올해의 길흉화복과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들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철학관은 늘 북적거린다. 미래를 궁금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어찌 보면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다. 사주로 과거를 보면 '모든 게 내 잘못은 아니었다'는 위안을, 미래를 보면 '내일이 어제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얻을 수 있으니 이래저래 매력적인 수단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따금, 사주를 보러 간 여성들은 느닷없이 '팔자 센' 여자가 되어 역술인의 꾸지람(?)에 가까운 해석을 들으며 참담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여자 팔자가 너무 세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 팔자다', '팔자에 남자복이 없다' 등 ... 표현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좋은 남편을 만나 자식을 잘 낳고 현모양처로 사는 인생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남자에게도 여자복을 놓고 이렇게 '팔자 세다'는 표현을 쓸까? 아마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이성운에 관한 한, '팔자 센 사주'는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일방적인 사주 해석에 반기를 든 책 《내 팔자가 세다고요?》가 북센스에서 출간됐다. '페미니스트 명리학자'를 자처하며 사주 상담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같은 사주를 놓고도 성별에 따라 풀이가 천차만별인 이유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 관점에서 시대착오적인 사주 풀이를 하는 탓이라고 일갈한다.

 

 

우선 '관성'은 성별과 관계없이 직업을 의미하지만, 여성 사주에서는 '관성'을 남편으로도 보는 반면, 남성 사주에서는 직업과 성격에 한정해 해석한다. 이런 풀이가 굳어진 이유는, 저자의 분석대로 명리가 지난 5천 년 인간 역사의 빅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여성 대부분이 직업을 가질 수 없어 남편의 신분이 곧 자신의 신분이 되었던 사례가 누적되다 보니, 직업을 의미하는 '관'은 곧 남편을 의미하게 되었다. 저자는 여성도 얼마든지 직업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풀이는 더는 현실과 맞지 않고, '관'은 성별과 관계없이 직업과 성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연애나 결혼은 그다음이라고 말한다.

 

이 문제의 '관'이 낳은 수많은 '팔자 센 여자 사주', 곧 '무관 사주', '관살혼잡 사주' 등은 사실 관성의 해석만 달리해도 얼마든지 긍정적인 풀이가 가능하다. 또한, 사주에 강한 자기주장이나 총명함을 뜻하는 글자가 있을 때, 남성은 사회생활에 유리한 것으로 풀이하면서도 여성은 유난히 이성과 관련지어 원만한 결혼생활이 어려울 것이라고 풀이하는 경향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p.79) 팔자의 음양 외에도 여성에게 자기표현과 총명함을 상징하는 상관이 많거나 강한 카리스마를 의미하는 괴강살, 뚜렷한 주관과 고집스러움을 상징하는 백호살, 자신을 드러내는 끼에 해당하는 도화살 등이 중첩되면 악담은 가중된다. … 이처럼 여성이 무언가 강성한 요소를 갖추면 그것은 무조건적인 단점으로 치부되었으며, 개인적으로 어떠한 성취가 큰 삶을 살더라도 남성 배우자와의 관계가 평탄치 않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 그 하나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팔자에 망친 인생인 것처럼 매도해버린다. 이것이 '팔자 센 여자 사주'의 비루한 진실이다.

 

이렇듯 이성운에 천착해 팔자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보다 사주는 훨씬 더 유용한 쓰임이 있다. 기본적으로 역학은 타인의 아픔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훌륭한 도구이자, 한 사람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일례로, 저자가 분석한 빈센트 반 고흐의 사주를 보면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난다.

 

(p.45) 나는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인재만큼 슬픈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생전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던 화가 반 고흐의 명식(命式)을 떠올린다. 고흐는 1895년 3월 30일생으로 병화(丙火) 일간이다. 본래는 밝고 환한 성격을 가져야 하는 병화임에도 10대부터 초년 대운이 약 30년간 수(水) 운으로만 흐르면서 불운과 우울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30대 후반에 사망했으니 평생 불리한 운만 살다간 셈이다. … 최소한 고흐의 사주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우울증과 정신병에 시달린 인생을 살다 간 것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느낄지언정, 그의 불행이나 괴팍한 성격이 모두 그의 탓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사주의 관점에서 풀이한 것이다. 저자는 영조의 사주에는 자신을 의미하는 비견*과 자신을 괴롭히는 편관*만이 가득해 매사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하고, 의무감과 자기관리가 지나쳐 편집증적인 성향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사도세자의 경우 사주가 매우 불안정한 구조인데다 대운의 흐름 또한 40대 이전까지는 불리한 편이라 중년까지 잘 버티는 것이 관건이나, 그 이전에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도세자의 사주에서 토와 목은 기피해야 할 기운인데, 영조는 사주 전체가 토와 목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니 이 부자관계는 상극이라기보다 사도세자 쪽이 일방적으로 당했던 관계라고 보았다.

 

* 비견 : 사주에서 나를 뜻하는 글자인 일간을 기준으로, 일간과 음양과 오행이 모두 같은 글자

* 편관 : 나를 뜻하는 글자인 일간을 기준으로, 일간과 음양은 같으나 일간을 극하는 오행인 글자

 

영조가 사도세자의 사주를 보고 아들의 본성이 어떤지, 그리고 자신은 아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이해했다면 역사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런 측면에서 자식의 사주도 일찍이 보고 양육에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궁합 역시 상대방의 본성을 살피는 의미에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살아가면서 가족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할 일이 무수히 많으니, 미리 가족 구성원의 성정을 살펴보는 것이 응당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운명은 과연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도 저자는 인상깊은 답변을 제공한다. 운명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어려우나, 지병을 다스리듯 자신의 약점을 다스려, 점차 나은 인간으로 성장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p.40) 운명이라는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절반, 혹은 그 이상의 이미 정해진 틀을 보여주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약점으로 타고난 것을 우리 뜻대로 180도 바꿀 수는 없다. 즉, 완치란 없을 수도 있다. 허나 중요한 것은 증상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운명이 완전히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사주를 볼 필요도 없이, 그냥 정해진 대로 살면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올해도, 내년에도 사주를 보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삶을 개선해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자,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의 표현이다. 지금껏 받았던 사주 상담에서 잘못된 해석으로 '팔자 센 여자'의 누명을 쓰고 상처받았을 많은 여성은 물론, 사주가 무엇인지, 운명은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내 팔자가 세다고요?》, 릴리스, 북센스, 값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