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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벌써 입춘이라구요?

진정한 봄은 언제 올 것인지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8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희망의 새해니 뭐니 하면서 해를 바꾸어도 사람들은 오로지 코로나 발생이 줄어들기만을 바랄 뿐, 계절이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 듯하다. 예전에 혹독한 추위가 오면 봄 봄 노래를 불렀는데, 요즘에는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바깥나들이도 못 하고 대부분 집콕 하고 있어서 그런지 영 봄을 기다리지도 찾지도 않는다. 하긴 예전보다 난방시설이 좋아져 굳이 따뜻한 봄날이 사무칠 이유는 없으렷다.

 

한동안 영하 십몇 도 이하로 내려가다가 어느 틈엔가 영상 15도까지 올라가는 변화무쌍함도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하는 원인 중의 하나일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집안에만 있으면서 하늘만 보다 보니 벌써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째인데, 문득 달력을 보니 아니 오늘이 입춘이구나!​

 

盤登細菜燕依人  오신반(五辛盤)을 내오고 처마에 제비 드니

此是東皇按節辰  지금은 봄의 신이 행차하는 때로세

誰言極否難回泰  그 누가 말했던가 꽉 막히면 되돌리기 어렵다고

忽破窮陰復睹春  어느덧 심한 추위 다 지나고 봄이 돌아왔는 걸

                                 ...《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입춘/임인년(1782, 정조6)

 

 

예전에는 이랬단다. 입춘에는 오신반을 먹었단다. 매운맛이 나는 다섯 가지 채소인 파와 마늘과 부추와 여뀌와 겨자를 오신채라고 하는데 과거에 입춘이면 봄을 맞는다는 의미에서 이 다섯 가지 채소를 나물로 만들어 먹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런 풍습을 전하는 무명자라는 시집을 쓴 시인은 정조 대왕 때 사람이니, 그 이후라도 오신채를 먹었단 뜻일 텐데 요즈음 우리 입춘에는 이런 풍속이 없지 않은가? 혹시 대보름에 우리가 하는 부럼깨기, 오곡밥 먹기, 나물 해 먹기 등등 이런 풍속하고는 어찌 다른가? 조선시대에 있었던 풍속이 언제 이렇게 바뀐 것일까?​

 

어쨌든 오늘이 입춘이란다. 서예를 못 하니 오늘 입춘방 써붙이는 것은, 예전에도 그랫듯이, 완전 포기다. 그렇다면 뭘 하지? 이직도 밖에 마음 놓고 돌아다닐 사정은 아니라고 하니 그저 텔레비전만 보거나 인터넷 검색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나?​

 

나는 올해 봄이 좀 이상하다. 지난달 중순 조금 추위가 세게 온 것은 사실이지만 곧 서울 지방이 영상 15도까지 올라가는 등, 입춘 전에 이미 봄이 온 것 같은데 왜 아직까지 매화꽃소식을 전하는 이가 그리도 별로 없는가 하는 것이다.​

 

봄이 오는 겨울끝에는 봉우리를 맺어서 막 터지려는 매화의 꽃망울, 그것이 터져 활짝 피는 모습을 보면서 겨우내 우리 삶의 구차함과 째째함을 심적으로 덮어버리는 것인데 왜 사진들이 안 올라오지? 아! 남도 분들도 집콕이어서 매화를 보러가지 않는구나? 그럼 섬진강변에 사람들은 안 모이는 것인가? 설이나 지나면 모이려나?

 

 

꽃이야기를 하자면 일 년 사시사철 수많은 꽃들, 색깔도 붉은색, 노란색, 누런색, 자주색, 흰색 등 아리땁고 고운 꽃들이 아름다움을 경쟁하면서 다투어 피어날 적에는 어느 것 하나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지 않는 것들이 없겠지만 대부분 꽃은 따뜻하고 좋은 계절에 피니 좋고 싫어함이 갈리는 편인데, 유독 매화에 대해서는 싫어한다는 사람들이 별반 없다는 것 아닌가? 왜 그럴까? 옛날 문인들이 하도 매화 예찬을 많이 남겨놓아 그런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매화를 사랑한 대표적인 인물로 퇴계 이황(李滉)이 소환된다. 그는 매화에 관해 100수가 넘는 시를 지었고, 이 가운데 71수를 스스로 뽑아 자필로 책을 만들고는 ‘매화시첩’이라고 이름 붙였다. 매화의 덕을 상찬하고 이 덕을 삶 속에서 구현해보자는 다짐을 시 속에 담았다.​

 

“뜰을 거니니 달이 사람 따라오네

매화나무를 몇 바퀴나 돌았을까

일어날 줄 모르고 밤 깊도록 앉았더니

옷에는 온통 매화향기, 몸에는 꽃 그림자.”

                         ..   .(도산 달밤에 매화를 읊다 중에서)

 

 

사람들은 왜 매화를 그리 좋아할까?

조선조 효종 때의 문신인 조익(趙翼·1579~1655)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어찌 매화의 기품이 곧고 깨끗하여 멀리까지 그 향기가 퍼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수많은 꽃이 제아무리 화려한 모습을 보여도 사람들이 혹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지만, 유독 매화에 대해서만은 그 기품이 곧고 깨끗하여 멀리까지 향기가 퍼져 나가는 까닭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시(詩)에서 “향기가 많아서가 아니라 역시 특이하기 때문이다(誠不以富 亦祗以異)”라고 한 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를 통해서도 곧고 깨끗하여 맑은 향기를 발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공통적인 정성(情性)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겠다.”​

 

곧고 깨끗한 기품과 멀리까지 퍼지는 향기, 이것이 매화의 매력이라면, 사람 속에서 그러한 매력을 찾아본다면 그것은 역시 오직 절의(節義)를 지키는 선비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매화의 정결한 자태와 맑은 향기만으로도 선비가 대표하는 청고(淸苦)한 절조와 아름다운 품행을 연결시킬 수 있지마는, 그것과 함께 매화가 미처 추위도 가시기 전에 온갖 식물에 앞서서 홀로 꽃을 피우는, 그런 계절적인 요인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한기(寒氣)가 엉겨 아직 풀리지 않는 때인지라 뭇 초목들이 모두 쓸쓸하게 생기(生氣)가 없어 움츠리고 있는데 홀로 얼음과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것

 

이야말로 하늘과 땅의 기운이 막혀 통하지 않는 그 속에서 변함없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며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음으로써 맑은 기품이 자연히 드러나게 되는 그런 참된 선비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저 절의를 지키는 선비로 말하면 이 세상에 홀로 우뚝 서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으니, 몸이 초췌해지고 생활이 곤궁해지는 정도가 또한 극심하다고 하겠지만, 그 맑은 풍도와 높은 의리 정신이 자연히 사람들이 경모(敬慕)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여, 백세(百歲) 뒤까지 탐욕스러운 자를 청렴하게 하고 나약한 자를 일으켜 세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 역시 매화가 극심한 추위 속에서 하얀 꽃망울을 터뜨릴 뿐 화려한 채색을 보여 주는 일이 없이 오직 맑은 향기와 곧고 깨끗한 자태가 자연히 사람들이 애지중지하게 하여, 비루한 자나 속된 자라도 모두 매화를 사랑하게 하는 점과 같다고 할 것이다.”

 

 

절조와 기개를 보여주는 것으로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있지만 그래도 매화를 첫손으로 꼽는 것은 역시 향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조 인조 때의 문장가였던 계곡 장유(張維 1587~1638) 선생도 그 점을 지적한다.

 

“시험 삼아 세한(歲寒) 무렵에 관찰해보기로 하자. 된서리가 내리고 눈발이 흩날려 모든 꽃이 시들어 버리는 그때, 비록 절조(節操)를 보여 주는 소나무나 대나무라도 향기를 내뿜게는 하지 못하는데 매화나무 세 그루야말로 비로소 준수한 자태를 선보이며 화원에 우뚝 서서 그 정채(精彩)를 발산하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그 남다른 향기와 차고도 고운 영상이 내 방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와 나의 금서(琴書)에 반사(反射)되어 비치면서 곧장 사람의 마음을 한 점의 티도 없이 맑고도 시원스럽게 해 주곤 하니 매화야말로 나에게 세 가지 유익함을 제공해 주는 친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매화는 단순히 꽃 자체, 향기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한 점의 티도 없이 맑고 시원하게 해 주는 영물이기에 , 우리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이리라. 그 대표적인 분이 퇴계 이황이고 멀리 중국에서는 북송의 화정(和靖) 임포(林逋, 967~1028) 등 수없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다 땅을 디디고 살던 분들이고 보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아파트 베란다에 혹 매화 화분 하나를 놓고서라도 그 매화 꽃망울을 보고 봄이 오는 것을 미리 느껴야 하는가? 남녁 매화마을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텔레비전으로라도 전해지면 혹 그 화면을 타고 남녘 꽃망울의 향기가 혹 여기까지 날아오지나 않을까? 짐짓 허망한 줄 알면서도 코를 킁킁거려 볼 모양이다. 그런 매화 소식이 올해는 왜 이리 늦고 없는가?​

 

아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더는 매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인가? 아니면 매화같이 고결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서인가? 높은 분들이 벼슬에 나가기만 하면 무슨 문제가 그리 많은지 줄줄이 나오는가? 세상을 다스린다는 사람들이 이리 누구 하나 깨끗한 사람 없는 것 같은 이 혼탁함은 어째서인가?​

 

결국, 매화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또 한탄하는 것이다.

 

왜 이 시대 모든 사람이 매화를 사랑하면서도 스스로는 매화처럼 되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어찌하여 맑고 깨끗한 사람이나 사물에 있으면 찬탄하고 경모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이러한 속성을 지니려고 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리해서 이 세상에 맑고 깨끗한 자는 매우 드문 반면에, 더럽고 혼탁한 자가 항상 많은 것일까?​

 

동지(冬至)를 지난 지 95일이 되는 날, 우주에 양기(陽氣)가 열리고 만물이 맹동(萌動)하는 날이라는 오늘 입춘(立春)을 맞아 매화와 매화 같은 사람을 기다리며, 우리에게 진정한 양기, 진정한 봄은 언제 올 것인지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