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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결국엔 나를 바꾸어야 하는구나

그저 다른 오리와 함께 사는 방향으로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침마다 산책 겸 운동 겸 도는 둘레길의 시작이자 끝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아파트 옆이어서 둘레길 들어가는 입구에 인공으로 둑을 쌓아 작은 연못이 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저 밑에서 놀던 오리 한 쌍이 올라와서 잘 헤엄치며 놀고 있다. 오리도 그냥 오리가 아니라 수컷의 목덜미에 파란 깃털이 있어 아주 고급스러운 청둥오리이다. 달 포 전에 처음 보고 반가웠는데 어제도 또 나왔다. 그런데 남자들이야 그저 아 오리 한 쌍이 잘 놀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 끝나고 곧 갈 길을 가는 것인데 그날 집사람은 조금 늦게 오더니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

 

 

"두 마리가 있는데 수컷은 자맥질도 안 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암컷이 부지런히 먹이를 찾으며 저 앞으로 가니까 수컷이 좀 늦게 눈을 떠 보니 옆에 암컷이 없잖아요? 그걸 보더니 앞으로 바지런히 물살을 저어 가서 암컷이 있는 그 옆에 가서는 다시 또 꾸벅꾸벅 졸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아이고 저 수컷 오리가 어쩌면 나하고 저리 행동하는 게 똑같을까 하고는 속으로 조금 뜨끔했다. "그렇구나. 저 작은 동물계에서도 주변에서 먹을 것을 부지런히 챙기고 정리하고 하는 것이 암컷이고 수컷들은 밖에서 뭐 크게 한탕 해왔는지는 모르지만, 일상에서는 저렇게 졸며 배짱을 부리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동물의 수컷에 해당하는 인간의 남성인 것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퇴직인지 은퇴인지를 하고 나서 대부분 시간을 집에 있어야 하는 처지에서는 저 수컷 오리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주변을 돌아보면 퇴직하고서도 이런저런 실력이나 연을 만들어 사회에 나가서 일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고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집에만 있는 처지와 비교가 된다. 또 집에 있으면서 남자들이 가장 듣기 싫은 게 도와달라는 것인데 뭐 도울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잘하지 못하니 모든 게 서툴고, 그러고 평생 연습과 훈련이 안 되어 있어서 선뜻 몸과 마음이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욱 한심한 것은, 그동안 여성들은 부엌 주변에 온갖 첨단 기기들을 갖춰 놓고 그것을 쓰는 방법도 숙지하고 있어서 뭐든지 만들어내는데, 남자들이란 게 정말로 할 줄 아는 것, 만질 줄 아는 것이 없으니 부엌이라는 데에 남자들이 끌려 들어가면 그야말로 뭐에 잡혀 온 뭐 신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그냥 들어 넘길 수만은 없다는 것이 이른바 집으로 은퇴한 남성들의 슬픈 현실이다.

 

저 오리 수컷도 그런저런 것을 몰라서 그렇겠는가? 그저 그들이 살아온 대로 하는 것일 뿐일 텐데, 어쩌면 그것이 저 세계에서는 당연하고 그들은 별 탈이 없는데, 요즈음 아직 여성 상위시대는 아니지만, 양성평등 시대를 만나, 아니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라 특별히 은퇴한 우리 남성들에게만 해당되겠지만, 그런 것을 보는 것도 스트레스다. 물론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일단은 넘어가겠지만...

 

내가 저 수컷 오리처럼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닌가 해서 되돌아보니 2013년 7월 초에 회사를 사직하고 나온 지 올해로 8년째가 되는구나. 그 이후 비상임 감사나 비상임 이사, 자문 위원 등 자리를 조금씩 맡아왔지만 다 비상근이고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다 보니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나보고 뭘 하시냐고 하기에 글을 쓴다고 하니 의아해하며 밖의 그 많은 자리 하나도 못 차지했느냐는 듯, 뭐라도 해야되지 않느냐고 걱정을 해 주셨다.

 

그 배려가 고맙기는 해지만 사실 나는 저술가 또는 작가로 직업을 전환했는데 사람들이 인정을 안 해 준다. 그러나 그동안 글을 써서 책은 열심히 내었으니 무직으로 허송세월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동안 나온 책을 되돌아보니 2013년 은퇴 이후에 매년 책 1권씩은 낸 셈이구나. 책들이 생각만큼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읽히지는 않았지만 내가 생각해온 것을 정리해서 펴냄으로써 누군가와 대화를 할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

 

 

그렇게 본다면 허송세월한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지난 시간이 그냥 날아갔다는 생각이 요즈음 부쩍 들까?

 

그것은 아마 올해 내가 세는 나이로 다시 아홉 고개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곧 집의 나이로 예순아홉인 것이다. 곧 1년만 더 있으면 6학년에서 7학년으로 올라간다. 70대? 그 옛날 젊을 때는 생각도 못 하던 연령대로 들어가는구나. 아니, 벌써? 그리고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니 책을 쓴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 10년이 그냥 너무 빨리 지나갔다는 느낌이 새삼스러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더욱 근본적으로는 점점 친구나 후배들을 못 만나 그들과 대화를 하지 못하는 이 엄중한 코로나 상황으로 지난 1년 이상 허송세월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다가 정말 어느 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다가 부름을 받아 가야 하는가?​

 

10년 전쯤에는 그 옛날 춘추전국 사대에 나이가 들어서도 새롭게 시작한 거백옥의 예를 들면서 뭔가 해보겠다고 말을 하고 다녔다. 《장자》라는 책 <칙양(則陽)> 편에 나오고 공자도 칭찬했는데, 위나라의 대부였던 거백옥은 나이 60이 되었을 때 60번이나 변했다고 한다. 그렇게 60이라는 나이에도 변하려 애를 쓴 거 백거옥을 마음속의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다짐한 것이 내 나이 만 60이 되던 2013년인데 그 사이 근 10년 동안 내가 변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생활 자세를 고쳤는가? 나의 사고방식을 고쳤는가? 뭔가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다시 새롭게 시작한 것이 있었던가? 그저 글 쓴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안 하고 허송세월한 것이 아닌가? 이런 고민과 그 고민의 여파로 따라오는 후회인 것이다.​

 

다시 고민하자. 지금 이대로가 좋은가? 그게 아니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의 방향을 다시 세워보자. 지금 나가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젊을 때 자신이 이 세상을 온통 바꾼다고 믿고 허풍을 치다가 세상은커녕 이 사회, 이 이웃 하나, 가족 하나도 바꾸도록 한 것이 없으니 이제 다시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살아온 길, 내가 공부해 온 것들이 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고 지금 젊은이들이 보고 듣고 행하는 방법들을 이제 따라갈 수도 없을 정도이니 내가 이들을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헛된 망상일 수밖에 없다.

 

누구처럼 다시 공부를 할 수도 있지만 이제 공부하는 전문적인 지식이 크게 이 사회에 소용될 것 같지도 않다. 누구처럼 운동을 열심히 해서 전국의 봉우리 1만 2천 봉을 올라간다는 목표를 세우고 실행해 볼까? 그것도 내키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은 이제 밖으로 향했던 나의 바꿈의 노력을 안으로 돌려서 나를 바꾸는 수밖에 없는 것 같구나.

 

 

나의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이제까지 내 한 몸, 내 한 잎만을 생각하던 것을 남을 위해서 생각하는 것으로 바꾸어야겠다. 그 첫 번째로 집안에 단둘이 있고, 평생 남편이라는 존재를 위해 헌신해 온 집안의 여성을 생각해야겠다. 집안의 여성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해질 수 있으니 힘든 일은 나눠 하고 혹 먼저 도와줄 일이 없는지를 찾아보고, 여성에게 도움이 될 것을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알아내어 실행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큰소리를 치는 각종 첨단 주방기기, 생활기기의 작동법부터 배워야겠다. 사실 아무리 여성들의 소뇌가 남성들보다 발달했다고 하지만 남성들이 하려고 하면 가정의 전자기기 다루는 것 정도는 여성보다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는 그 하나로 요리법을 배워야겠다. 꼭 요리학원에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고 집안에서도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배워 나가야겠다. 이른바 ‘밥하고 빨래하고,,,’라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법을 배워서 겉으로는 여성들의 노고를 덜어주고 실제로는 남성의 자립 생존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가정에만 있게 되는 은퇴자들이 조금이라도 가정의 경영에 함께 참여하는 거다.​

 

 

 

그렇게 하고 집만이 아니라 혹 밖에서 꼭 무슨 보답이나 명예를 바라는 일을 떠나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더 찾아보는 거다. 그렇게 나를 변화시켜 보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옆의 친구들은 그럴 것이다. 기껏 좋은 생각을 하는가 했더니 겨우 더 공처가가 되겠다는 선언 아니냐? 그리고 공연히 마누라한테 잘 보이려고 입발림(립서비스) 하는 것이 아니냐?

 

그래.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고 이런 변화라도 추구하지 않으면 일주일, 한 달 단위로 마구 내 앞으로 달려와 번개처럼 일 년이라는 시간을 뭉텅이로 가져가는 저 세월을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에게 남은 그나마 시간도 금방 사라질 텐데, 그때 어디 하소연하거나 핑계를 댈 수도 있는가? 그때 후회가 무슨 소용이랴?

 

차라리 공처가 선언이건 말건, 집 뒤의 작은 물가에서 수컷 오리를 보면서 그동안 자기 위주로 잘난 척하면서 살아온 수컷의 생을 반성하며 새로운 수컷으로, 아니 이젠 암컷 수컷 구별도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니 그저 오리 한 마리로 다른 오리와 함께 사는 방향으로 변화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런 하소연이라도 하지 않고는 이 아홉수라는 시점을 맨정신으로 맞았다가는 집안에 후회만을 쌓아놓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