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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목조주택의 이상향 "집과 마당의 풍경전"

4월 13일까지 인사동 토포하우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여행 가고 싶다, 바다 보러 가고 싶다라는 말을 남편에게 종종 하곤 했는데 이사 오고 나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당에서 햇살, 나무, 풀, 하늘, 구름, 바람을 느낄 수 있고 창으로 보이는 풍경도 편안하니 좋다. 햇빛 좋은 날 마당에 빨래를 널면 개운하고 걷어 접을 때 나는 뽀송한 햇빛 냄새가 좋다. 식탁에 앉아 하염없이 쳐다보는 연못물이 좋고 그곳에 새가 와서 물 먹고 날갯짓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는 종로구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어제(31일, 수요일)부터 열리고 있는 <집과 마당의 풍경 전(展)>에 나오는 10번째 주택(세종주거) 주인의 인터뷰 가운데 일부다. 사람들은 왜 도회지의 편리한 아파트를 청산하고 전원 속에 집을 짓는 것일까?

 

 

“집을 짓고 이 집에 살아가면서 집이란 어떤 곳인가를 질문하게 되었다. 이 집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고 쉴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다. - 청경우독(晴耕雨讀)집, 주인-

“주택 살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삶의 밀도 있는 확장이다.” -은평 9칸집, 주인-

“역사를 연구하는 우리부부에게는 이 집이 마치 오랜 세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100년된 마치야집, 주인-

“다락방 테라스에서 밤이면 달과 별을 감상할 수 있는 이 집은 살수록 정이 간다.”- 갤러리하우스집, 주인 아들 장해수 씨-

 

 

<집과 마당의 풍경 전(展)>은 한양대학교 건축학과에서 15년 동안 후학을 양성해온 도미이 마사노리(富井 正憲)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지은 14채의 목조주택에 관한 이야기를 전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시회’라고 해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 도면이나 완성된 집의 사진 등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사실 기자 역시 벽에 전시된 내용을 기대하고 갔다가 전시물 하나 없는 ‘전시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얼 전시하는 것이지?’ 싶었는데 그런 오해는 금방 풀렸다.

 

 

 

전시 첫날 아침 10시 무렵, 전시장을 찾은 시각에 이미 도미이 교수는 일찌감치 전시장에 나와 기자를 대형 영상 화면으로 안내했다. 영상 화면은 두 개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이번에 전시하는 14채 주택의 도면, 건축 현장, 집안 구조와 주택이 들어선 마을의 드론 촬영 등을 보여주는 영상이고, 다른 하나는 도미이 교수가 1970년대부터 자신의 작업을 구현시키기 위해 모아 둔 이미지를 망라한 [도상학 圖像學=iconography] 필드워크 영상이다.

 

 

 

도미이 교수와 대형 스크린 앞에 마련된 작은 의자에 앉자 화면 가득히 10번째 주택(세종주거)에 관한 작업 화면이 비춰지고 있었다. 화면에는 설계도면을 놓고 제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 목수들과 협의하는 모습, 오후의 햇살이 가득 비치는 부엌이며 자연미를 한껏 간직한 통나무 기둥을 윗층까지 연결시킨 거실 모습 등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영되고 있었다.

 

“한 채의 집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가 30%, 건축주 30%, 시공자 30% 등의 협업이 서로 잘 맞아 떨어질 때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건축가 혼자서 집을 짓는 게 아닙니다. ‘세종주거’는 이번에 전시 중인 14채의 집 가운데 가장 최근에 완성한 집(2년 전 입주)입니다. 화면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 집은 ‘막힘없는 공간’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도미이 교수가 지은 14채의 집에 대한 각각의 특징을 듣고 있자니 마치 기자가 당시 건축 현장에 함께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각 주택이 특징이 있다는 것은 집주인의 취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또한 땅모양이 평지인 집도 있고 어떤 집은 경사지를 이용해서 설계해야 하는 등 건축의 조건도 각각 다르다.

 

“제가 설계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한국 건축의 장점과 일본 주택의 장점을 조화롭게 살린 점입니다. 특히 본채와 별채 개념의 공간을 마당으로 연결하는 작업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마당에는 텃밭도 배치하여 청경우독(晴耕雨讀) 주택처럼 맑은 날은 텃밭을 가꾸고 비가 오면 독서를 한다는 의미에서  제가 주택에 이름을 붙여주었지요. 이번에 전시중인 14채 주택 모두 제가 그 특징을 살려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핵가족화 사회에서 사람뿐 아니라 반려동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에도 신경을 쓰고 있지요.”

 

도미이 교수는 영상화면 속에 고양이 한 마리가 마당을 향한 거실 쪽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풍경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풍경’ 이라는 말을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다. 도시에서는 풍경이라는 말 대신 ‘경관’ 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는데 말이다. 고양이도 강아지도 사람처럼 지하층이든 1층이든 2층이든, 거실이든 마당이든 막힘없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다가 볕 따스한 양지쪽에 배 깔고 조는 모습이 보기 좋다.

 

“건축전시회라고 하면 대개 설계도면이나 집안 내부 구조, 완성된 사진 등을 판넬로 만들어 벽면에 전시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러한 경우 ‘완성에 초점’을 둔 것이라 건축 과정을 이해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이번 전시처럼 한 채, 한 채의 집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영상화하여 보여줌으로써 결과보다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한 전시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설계도면 등은 <도록> 등을 참고하면 되니까요”

 

 

이번 전시를 보기 위해 충남 부여에서 올라온 김인수 (환경조형연구소 그륀바우) 소장이 전시물 설명을 듣고 한 말이다. 기자 역시 공감한다. 집을 짓기 전 토지신에게 고사를 드리는 모습, 목수들이 나무 켜는 모습, 목재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천정 공사 모습, 건축과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더 좋은 집을 설계하고자 하는 모습 등등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건축 과정을 영상을 통해 보면서 집 한 채의 완성에 이르는 노고를 엿볼 수 있었다.  

 

이번 <집과 마당의 풍경 전(展)>은 도미이 교수가 주축이 되고 그의 제자인 김지원, 손주희, 이주운, 장해수, 유재연, 정명선, 홍다혜 씨가 14채의 집 설계를 나눠 맡았다. 마침 전시장에는 유재연 씨와 장해수 씨가 나와 있었다. 장해수 씨는 갤러리하우스 《집과 마당의 풍경》 도록의 6번집을 설계한 제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졸업)인데다가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이라 ‘집의 장점’을 물어 보았다.

 

“아파트에서 전원주택으로 이사 온지 5년이 되어 가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당 있는 집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아파트의 단순한 공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공간에서의 생활이 활력을 갖게 합니다. 아파트의 경우, 남자들의 공간이 특히 부족한데 갤러리하우스에는 지하에 서재 형식으로 아버지만을 위한 방이 있고 저는 4층 다락방을 쓰는데요. 다락방에 테라스를 만들어 밤에는 달과 별을 볼 수 있게 설계했습니다.” 라며 흡족해 했다.

 

이번 전시에서 《집과 마당의 풍경》 도록의 2번 '도토리나무주거' 집과 '피닉스하우스 12번' 집을 설계한 유재연 제자(한양대학교 건축학부 졸업)에게는 <집과 마당의 풍경 전(展)> 에 참가한 소감을 물어봤다.

 

“교수님은 언제나 ‘현장 답사’를 강조하십니다. 한번은 옥탑방을 조사하라는 과제를 받은 적이 있는데 사실 남의 집 옥탑방을 찾아다니며 리포트를 쓰기가 쉽지는 않지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옥탑방을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거든요. 수십 집을 찾아다닌 끝에 횡재를 만난 듯 아주 멋진 옥탑방을 발견하여 좋은 점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유재연 씨는 학부 시절에 발품을 판 덕에 이번에 맡은 설계를 무난히 해낼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일본인 건축가에게 자신의 집을 맡긴 14채의 집주인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것은 ‘집의 가치’ 였다. 도미이 교수가 설계한 집은, 살수록 정이 드는 집, 일 년 열두 달 살아도 싫증나지 않는 집, 온 가족이 만족스러운 집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것은 일본 건축의 장점과 한국 건축의 장점을 철학적으로 접목 시킨 도미이 교수의 설계였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국 생활 40년, 한국 건축을 가장 잘 아는 일본 건축가로 알려진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는 말한다. “저는 한국의 전통 건축에 존재하는 미를 탐구하는 일이 즐겁습니다.”라고 말이다.

 

 

그가 지난 15년 동안 지은 14채의 주택을 소개하는 <집과 마당의 풍경 전(展)>은 그래서 한번 쯤 찾아 볼만하다. 특히 ‘집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 이라면 말이다. 전시 기간에는 언제나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가 살가운 건축 설명을 해줄 예정이다.

 

【집과 마당의 풍경 전(展) 참여자 소개】

도미이 마사노리 : 서울에 거주하는 건축가. 1948년 도쿄 출생. 1982년 첫 방한. 1973~2004년 가나가와대학교, 2004~2020년 한양대학교에 재직했다.

손주희: 2013년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졸업

이주운: 2017년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졸업

김지원: 2018년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졸업

장해수: 202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졸업

유재연: 2021년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졸업

정명선: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재학 중

홍다혜: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재학 중

 

이번 전시를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만든 도록을 현장에서 판매한다. 도록에는 1부 [마음을 담는 건축 프로젝트]에 14채 주거의 도면과 사진, 작업 과정 등을 정리했다. 2부 [건축 보캐블러리]에선 건축적인 언어를 통해 설계에 임한 마음과 사고방식에 대해 해석했다. 3부에서는 14채 주거에서 생활하는 건축주의 솔직한 목소리와 시공과 구조설계 등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회사를 소개했다. 도록/ 크기 B5, 112쪽, 10,000원

 

【전시 안내】

*곳: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TOPOHAUS)/ 종로구 인사동11길6 / 전화: 02-734-7555

*기간: 3월31일(수)~4월13(화)일까지 휴관일 없이 기간 내 아침 10시 ~ 저녁 7시

*전시 기간 중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와 젊은 건축가 유재연 씨가 전시장에서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