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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타령까지 있는 우리가 ‘도정’이란 일본말 쓰는 까닭은?


방아타령까지 있는 우리가 ‘도정’이란 일본말 쓰는 까닭은?


방아타령

※에-에- 에헤이야 에라 우겨라 방아로구나 반넘어
늙었으니 다시 젊기는 꽃집이 앵도라젔다 엣다 좋구나

1. 오초동남 너른물에 오고가는 상고선은 순풍에 돛
을달고 북을 두리둥실 울리면서 어기여차 닻감는
소리 원포귀범이 에헤라 이 아니란 말까

※에 - 에 - 에헤이야 에라 우겨라 방아로구나 널과
과 닻이나 감어라 줄을 당기어라 물 때가 막 늦어간다 엣타 좋구나

2. 영산홍록 봄바람에 넘노나니 황봉백접 붉은꽃 푸른잎
 산용수세를 그림하고 나는나비 우는 새는 춘
광춘흥을에헤라 자랑한다
에~에헤에 에헤이야 어라 우겨라 방아로구나

신나는 방아타령 한 곡을 듣고 나면 신명이 절로난다. 힘든 방아를 찧으면서도 결코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노래로 이겨낸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이 방아타령에서 느껴진다. 봄에 모를 심고 여름에 김매고 피를 뽑아 가을에 걷어 들이면 이번에는 방아를 찧어야 밥상에 비로소 한 그릇의 밥으로 올라온다. 여간한 정성이 아니다.

청풍명월의 고장 충주에 가면 댐 수몰로 사라질 뻔한 기와집들을 복원해둔 곳이 있다. 옛 한옥과 먼발치의 댐 경치가 어우러져 가족단위로 찾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한곳에 한옥과 초가집 그리고 예전에 쓰던 연자방아 등이 전시되어 있어 구경하던 중 연자방아 앞에서 발길을 멈추게 한 글자가 있으니 바로 ‘도정’이란 글자이다. ‘도-세-’ 곧 ‘도정’은 일본말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도정(搗精) : 곡식을 찧거나 쓿음’이라고 나와 있다. 일본말이란 표시가 없다. 마치 ‘한자’에서 유래한 말인 양 스리슬쩍 감춰 놓았다. 일반인들은 ‘한자말에서 유래한 것은 뭐고, 일본말에서 유래한 것은 뭐냐?’라는 궁금증이 일 것이다. 쉬운 예를 들면 같은 김씨라도 호적을 뒤져보면 ‘본’이 다르고 ‘파’가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도 어려울 것 같아 예문을 들어본다.

1) 일본말에서 온 한자말 : 대절(貸切·가시기리), 추월(追越·오이코시), 노견(路肩·로카타), 택배(宅配·타쿠하이), 물류(物流·부츠류), 선착장(船着場·후나츠키바), 입장(立場·다치바), 잔고(殘高·잔다카), 절취선(切取線·키리토리센), 차출(差出·사시다시), 촌지(寸志·슨시), 할증료(割增料·와리마시료)… 현재 우리말 국어사전에서 한자말이 70%라고 하는데 이 중의 몇%가 일본한자말인지 모른다.

2) 예전부터 쓰던 한자말 : 위의 말들을 뺀 우리가 흔히 쓰는 한자말

이렇게 말하고 나면 또 ‘시비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일본 한자면 어떻고 중국 한자면 어떠냐? 그게 그거지… 정말 그럴까? 나중에 이야기하고 주제로 돌아가자.

위 국어사전풀이에서 ‘곡식을 찧는다.’라는 말은 알아듣겠는데 ‘쓿음’이란 말은 얼른 와 닿지 않는다. 곡식을 ‘쓿는다니?’ 좀 더 쉬운 말로 말해줄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다. 보니 처음 보는 말이다. 사전을 보는 사람은 어른보다는 아무래도 학생들이나 외국인들일 것이다. 어른이 누가 ‘도정’을 찾아본단 말인가! 삼겹살과 소주 먹을 시간도 없는 판에. ‘도정’이면 그냥 ‘도정’으로 알고 말지… 나부터도 말이다. 그러나 같은 국립국어원 <순화어 방>에는 자못 단호한 표현으로 ‘순화한 말만 쓰라’고 못 박고 있다. 그 이유는 함구한 채… 다만 ‘방아찧기’라고 쓰란다. ‘방아찧기’를 버리고 왜 우리는 ‘도-세-(搗精·도정)’란 일본 한자말을 들여다 쓰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즐겨보는 연자방아 설명에도 버젓이 ‘도정’이란 말이 등장하다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일본국어대사전에는, “とう-せい【搗精】玄米をついて白くすること。”라고 나와 있다. 번역하면 일본발음은 ‘도-세-’: 현미를 찧어 희게 하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도정’을 뭐라 했을까? 그때도 거둬들인 벼를 방아 찧어 먹었을 테니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도정’이 원문에는 없고 <국역본> 중 3곳에 ‘일본말 도정’이 쓰이고 있다. 예를 하나 보자. 선조실록 27년 기록이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요즈음 지방에서 온 이들이 모두 말하기를 ‘각 고을의 수령이 중국 병사의 접대 및 사객(使客)의 비용을 마련한다고 핑계하여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피곡(皮穀)이 있으면 모조리 도정(搗精)하여 정미(精米)를 만들고 일체의 곡식을 저장(貯藏)하여 백성에게 꾸어주지 아니하므로, 봄철이 이미 지나가고 있는데도 개간한 곳이 매우 적으며…

○壬午/備邊司啓曰: “近日自外方來者, 皆言 : ‘各官守令, 托以天兵支待及使客應辦, 雖有些少皮穀, 盡皆<春正作米>, 一切閉糶, 不給民債, 故春節已晩, 而開墾之處甚少, 往往監司

조선시대에 백성은 입말로 ‘방아찧기’라고 했을 것이다. ‘방아 찧는 일’은 일반 백성이나 종들의 일이므로 그들이 선조실록에 나온 말인 <용정작미, 舂正作米>라는 말을 썼을 리가 없다. 그런데 왕조실록의 <舂正作米>를 국역본에서는 <도정(搗精)>과 <정미(精米)>로 번역해 놓았다.

‘도정’은 못 알아먹을지 모르나 ‘방아찧기’는 누구나 알아먹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자기 나라의 좋은 말을 버리고 왕조실록에까지 ‘일본말 찌꺼기’를 끌어들여 번역하느라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다니 좀 따져야 하지 않을까?

말이 나온 김에 ‘조선왕조 한글 번역본’은 누구를 대상으로 번역한 것인지 묻고 싶다. 어차피 원본을 못 읽는 국민이 읽는 거라면 쉬운 우리말로 번역했어야 한다. 어떤 것은 번역이 아니라 한자음을 그대로 옮겨 놓아 전혀 뜻을 알 수 없다. 안다 해도 모호한 경우도 많다. 예를 하나 보자.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2년(1496 병진)에, <대간이 합사(合司)하여 아뢰기를, 어제 하교에, ‘어세겸·윤효손(尹孝孫)이 대간이 두려워서 곡의(曲議)한 것이다. 이미 임금의 명령이 있었는데, 문형이 어찌 취직하지 않겠는가.하셨으나, 신들의 생각으로는 세겸은 묘당(廟堂)의 대신인데, 어찌 대간이 두려워서 바로 주대(奏對)하지 않으리까. 문형이 그 자리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은 신들뿐이 아니라, 중의가 다 그러하옵니다. 문형이 이미 동료들에게 용납되지 못하였으니 어찌 감히 취직하겠으며, 전하께서도 어찌 꼭 굳이 취직시키려 하십니까? 지금 대신의 의논은 정의(正議)인데, 전하께서 도리어 곡의(曲議)라 이르시니, 신들은 대신이 이로부터 정의를 드리기를 어려워할까 염려입니다. 빨리 문형을 파면하소서.>

곡의/취직/주대/중의… 알듯 말 듯한 말이다. 국역본이라지만 상당수준의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세종의 백성 사랑을 생각했다면 ‘한글’을 뗀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번역이었어야 한다. 전문가는 어차피 원문을 보지 번역본을 보지 않을 것이기에 애초부터 왕조실록 번역은 일반국민 대상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린 아이들이 보는 연자방아 설명판에 ‘벼를 도정하는 기구’ 라고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 ‘방아찧기’로 고쳐 쓰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