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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바집> 사람들

 

함바집 사람들 - 홍수열 

함바집에서 있는 힘을 다해
밥을 먹고 있다.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식도를 밀어 내리며
먹고 있다.  

알몸은 밖으로 열을 내뿜고
낯선 입술위로
살갗을 태우던 붉은 해는
길 위에 누워 뒤척이고 있다

보름간의 간조가 끝난
팔월 중복(中伏)날에도
노련한 인부는 겨울 꽃처럼
봄을 미리 기다리지 않는다.

오직 자기 힘만으로 하늘을
열면 그게 봄이라는 것을
막소주잔을 든 팔월의
함바집 사람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함바집이란 무슨 집일까? 혹시 부모님의 ‘함바집’이란 대화를 엿듣던 아이라면 당장 국어사전을 찾아볼 것이다. 그런 데 없다. 다음 순서는 아빠에게 물어보는 일이다.

아들: 아빠 함바집이 무슨 집이예요?
아빠: 밥집이지
아들: 그런데 왜 함바집이라 해요. 밥집이라 하지요?
아빠: 옛날에 쓰던 말이란다.

 똑똑한 아들은 이쯤에서 멎는다. 그러나 의혹은 있을 것이다. ‘예전에 쓰던 말?’이라면 신라시대 말인가? 하는 생각도 할 것이다. 아빠가 ‘일본말찌꺼기’라고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어른들은 그렇게 흐리멍텅한가 모르겠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은 아들도 알 것이란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는 국어사전도 마찬가지다. 당당히 ‘함바집:일본말로 밥집을 뜻하며 정식 식당이 아니라 공사판에 딸린 밥집임’ 이 정도만 해줘도 우리의 똘똘한 아이는 앞으로 ‘함바집’이란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에 ‘함바집이 뭐예요?’ 이런 질문을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막무가내라는 뜻의 ‘무뎁뽀’는 국어사전에 있으면서 ‘함바집’은 없다. 무슨 기준인가 모르겠다.  

‘왜놈의 함바집에서는 식비는 엄청나게 떼여 내면서도 주는 것은 강조밥에 멀건 소금국과 따꾸앙 몇 쪽뿐이었다.’ <홰불을 찾아서, 조선말 대사전> 참으로 서러운 집이 함바집이다. ‘조반 겸 점심으로 강조밥 한 덩어리를 삼킨 그들은 마당으로 쏟아져 나와 항아리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변방에 우짖는 새, 현기영> 강조밥이란 요새 새 모이로 쓰는 좁쌀로만 지은 밥을 말한다. 함바집에서 멀건 소금국에 좁쌀밥을 먹고 나와 벌컥벌컥 항아리 물을 마시고 다시 막노동판에서 죽어라 일해서 일군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 아버지들에게 고개가 수그러든다.  

일본어국어대사전<広辞苑>에 따르면, 함바(飯場, はんば)란 ‘광산이나 토목, 건축 공사현장 가까이에 가설한 작업원의 합숙소를 뜻하는 말’로 나와 있다. 항(飯, han)이란 밥을 뜻하며, 바(場, ba)란 장소를 뜻하는 것으로 합숙하는 사람들에게 잠도 재워주고 밥도 먹여주는 공간이 ‘함바’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공사판도 없는 곳에 ‘함바집’이란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한다. 고양시 어느 곳을 지나다 보니 번듯한 식당 건물에 사람 키 보다 큰 입간판을 턱 하니 세워 놓았는데 식당이름이 ‘함바집’이다. 이 무슨 향수란 말인가! 시인이야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한 밥집 풍경을 나타내려고 ‘함바집’을 쓴다지만 멀쑥한 식당 건물을 차려 놓고 턱 하니 ‘함바집’ 간판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