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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 훈련 위해 캐나다로 가는 김연아


<전지> 훈련 위해 캐나다로 가는 김연아

 

'피겨 퀸' 김연아(20. 고려대)가 다시 본연의 자리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복귀한다. 지난 3월 귀국해 두 달 동안 한국에 머물렀던 김연아는 오는 31일 전지훈련을 위해 캐나다로 떠난다고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는 밝혔다. 어머니 박미희씨와 로드 매니저, 새 트레이너와 함께 캐나다로 출국하는 김연아는 토론토 도착 후 정상적인 컨디션 회복을 위해 곧바로 훈련에 나선다. 김연아는 브라이언 오서 등 코칭스태프들과 함께 향후 일정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스비트]  

어디를 가나 ‘연아 아씨’는 최고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되는 것은 예사고 요즈음은 그의 어머니도 연아엄마가 아니라 스포츠회사의 사장님이 되어 ‘연아주식회사’를 가꿔가는 것 같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러운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연아가 이번에 캐나다로 전지훈련 간다는데 흔히 듣는 ‘전지훈련’은 운동선수들이 주로 쓰는 말이다. 국어대사전에 보면, ‘전지-훈련(轉地訓鍊) : 신체의 적응력을 개발ㆍ향상하기 위하여 환경 조건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하는 훈련’으로 나와 있다. 여기서 덴치(전지,轉地)는 일본말이다. 일본국어대사전<大辞泉>에 보면, ‘てん‐ち【転地】:療養などのために他の土地に移り住むこと。【転地療養】’ 번역은 요양 등을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재미난 것인지 슬픈 것인지, ≪조선왕조실록≫에도 ‘전지요양’이 나온다. 원문에 모두 4건이 나오는데 4건 모두 구한말 위태로운 나라 사정으로 일본에 끌려간 왕실가와 관련된 말이다. 

왕세자는 미시마의 별저에서 전지휴양을 하여 여름휴가로 보내다 十八日。 王世子轉地休養于三島別邸。 以暑暇也 --순종실록,1913- 

여기서 왕세자라하면 비운의 왕세자 영친왕 이은(李垠1897-1970)을 말하며 그는 풍전등화의 구한말에 태어나 차기 왕으로 점지되지만 11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간다. 끌려가서 무슨 고통을 받았길래 영친왕(미주 설명 참조)이 미시마섬으로 ‘전지휴양’을 간 것일까? 끌려간 뒤 2년째인 13살의 일이라고 순종실록은 쓰고 있으나 ‘전지휴양’간 이유는 적고 있지 않다. 

차기 황제로 내정된 영친왕이 일본에 끌려간 전후 사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영친왕은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뒤 명성황후의 시위상궁이던 엄귀비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엄귀비는 1854년 평민 출신인 엄진삼의 큰딸로 태어나, 8살에 궁에 들어와서 명성황후를 가까이서 모시다가 32살 때 고종의 승은을 입었지만 명성황후의 시기로 궐 밖으로 쫓겨난다.  

이후 명성황후 시해 사건 뒤에 다시 궁에 들어와 위기에 빠진 고종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시키는 기지를 발휘했으며 이곳에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을 낳는다. 고종 나이 45살이고 엄귀비는 43살 때 일이다. 여자나이 43살이면 지금도 늦둥이 낳기를 망설이는데 당시로는 정말 늦은 출산이다. 그런 만큼 영친왕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것이다. 순종과는 이복 형제간으로 영친왕은 열 살 때인 1907년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이 자행된 뒤 1907년 12월 이토 히로부미는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영친왕을 인질로 일본에 보낸다. 이어 1910년 8월29일 대한제국의 국권은 일제에 강탈되는데 융희황제(隆熙皇帝:순종)는 이왕(李王)으로 폐위되고, 영친왕도 황태자에서 단순한 왕의 동생 왕세제(王世弟)가 되고 만다. 1920년 일본의 흡수정책에 따라 일본 왕족 나시모토노미야[梨本宮]의 딸 마사코[方子, 한국이름 이방자]와 정략결혼을 시켰으며, 1926년 순종이 죽자 형식상으로 왕위계승자가 되어 이왕이라고 불렸다.  

일본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일본 육군사관학교·육군대학을 거쳐 육군중장을 지냈으며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귀국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뒤 1963년까지 일본에 머물다가 1963년 국적을 회복하고 귀국했으나 그때는 이미 뇌혈전증으로 인한 실어증에 걸려 있는 상태로 비운의 왕자 영친왕은 조선의 마지막 왕자로 쓸쓸히 죽어갔던 것이다.  

‘전지훈련’을 설명하다 말이 길어졌다. 일본에서는 전지훈련보다는 ‘전지요양’이란 말이 더 많이 쓰인다. 그렇담 '전지'란 말이 일제에 의해 들어오기 전에는 뭐라 썼을까? 

중종실록 16년 기사를 보면 <피접>으로 쓰이고 있다. 한 예를 보자.

“조서관상감 판관(觀象監判官) 송사련(宋祀連)·학생(學生) 정상(鄭瑺)이 고변(告變) 하자, 정원이 입계(入啓)하니, 전교하기를,“자세히 물어보아 아뢰라.” 하매, 사련이 아뢰기를, “안처겸(安處謙)이 전일에 언제나 말하기를 ‘간신(奸臣)이 조정에 오랫동안 있게해서는 안 되니, 마땅히 먼저 제거한 다음 주문(奏聞)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이런 말을 듣고서 지난 8월 10일 이후에 배천(白川)의 농가로 갔을 때, 안당(安瑭)이 피접(避接)한 곳으로 가서 처함(處諴)에게 말하기를 ‘자네도 처겸의 뜻을 알고 있는가?’ 하니, 처함이 ‘형이 비록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하였고, 신이 ‘그렇다면 장차 어떻게 하려는가?’ 하니, 처함이 ‘제생원(濟生院) 동리에 한 사람이 있으니 내가 마땅히 가서 보고 그만두게 하겠다.’고 하였으며, 신이 ‘누구인가?’ 물으니 듣고 처함이 ‘ 시산정(詩山正) 이라.’고 했습니다.” 

위 문장 중에, '피접(避接)' 이란 부분이 있는데 ‘피접’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는지 국역한 사람이 단어 설명에서 ‘피접(避接) : 요양(療養) 또는 병 치료를 위해 전지(轉地)하는 것’ 곧, ‘피접=전지(轉地’로 풀이해두고 있다. 일본말이 깊숙이 왕조실록까지 침투되고 있다. 연아 아씨의 전지훈련은 현지훈련으로 바꿔 써도 크게 문제 될 게 없는 말이다.


★ 영친왕 : 순종실록에 보면 1907년 8월 7일 이은(李垠)을 황태자 영왕(英王)에 책봉하라는 기사가 보이는데 보통 황제의 아들에게는 친왕(親王)이라는 호칭을 붙이는데 영왕(英王)이라 한 것은 일본의 개입이 있지 않았나 의심스럽다. 고종황제 때부터 조선은 황제국이므로 명성왕후가 아니라 명성황후로 부르듯 고종의 아들은 의당 영친왕(英親王)이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왕실에서 아들은 ‘친왕(親王)’ 딸은 ‘내친왕(內親王)으로 부르는데 당시 일본의 마수의 손길이 퍼진 상태라 ‘영친왕’의 ‘친왕’을쓰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