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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다라이" 뜻이나 알고 쓰자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39)]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고무다라이를 사려고 합니다. 판매하는 곳 좀 알려주세요. 사이즈는 많이 컸으면 좋겠어요. 어머니를 목욕시킬 수 있는 큰 것이면 좋겠어요. -다음- ”

사람을 목욕 시킬 만한 큰 고무다라이를 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요즘은 벼라별 것을 다 인터넷에서 구하고 있지만  이 물건을 원하는 사람은 욕조 없는 집에 살거나 아니면 욕조가 있어도 다라이를 편한 곳에 두고 어머니를 목욕시켜드리고 싶어서 일게다. 어른이 통째로 들어가는 커다란 ‘고무다라이’는 ‘고무’와 ‘다라이’의 합성어이다.

어렸을 적 시골집 마당가 한켠에 펌프 물받이용으로 고무다라이(우리 어릴 땐 고무다라라고 했음)가 쓰였다. 얼지도 않고 좀처럼 깨지지도 않는 붉은 빛을 띠던 고무다라이는 마당 있던 집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면서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아파트 씽크대 꼭지에서 수돗물이 콸콸 나오고 화장실엔 커다란 욕조와 세면대가 붙박이로 설치되어 있어 더 이상 고무다라이는 그 옛날의 명성을 찾기 어렵다. 명성은커녕 꼭 필요한 경우에도 어디서 파는지를 모를 만큼 세상이 바뀌었다.

 

   
▲ 고무다라(이)가 들어 오기 전에 우리는 함지박을 썼다.

《표준국어대사전》에 고무다라이는 안 나오고 ‘다라이’만 나와있다. “다라이(<일>tarai[盥]): 금속이나 경질 비닐 따위로 만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둥글넓적한 그릇. ‘대야1’, ‘큰 대야’, ‘함지1’, ‘함지박’으로 순화” 하라고 되어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재질인 고무다라이는 빠지고 금속이나 경질비닐로 만든 그릇이라는 표현이 현실성이 떨어진다. ‘비닐다라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여자들이 알면 웃을 일이다. 아마도 사전 편찬에 고무다라이를 아는 여성이 관여 안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다라이’ 역사는 얼마나 될까? 먼저 ‘다라이’란 말의 유래가 재미나다. 《일본국어대사전》에는, ‘다라이’란 말의 유래를 ‘손을 씻다’라는 ‘데아라이(手洗い, tearai)’의 와전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데아라이→다라이’로 원뜻은 ‘손을 씻다’라는 말이다. 손을 씻는 것이니까 결국은 ‘손 씻는 그릇’ 곧 ‘대야’인 것이다.

 일본의 “다라이”는 2차 세계대전 후 알루미늄으로 만들거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다라이’ 등장 이전에 일본에는 오케(桶, oke)라는 나무통이 있었다. 나무로 만든 ‘오케’는 다라이보다 약간 깊숙한 함지박 같은 것으로 예전엔 일본여성들의 혼수품이었다.

 ‘오케’는 출산 후에 아기 목욕을 시키거나 부엌에 먹을 물을 저장했다. 조금 작게 만들어 설거지통이나 빨래하는 그릇, 세숫대야 등 그 용도는 무궁무진하였다. 그러나 집안으로 수돗물을 끌어 드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물을 받아쓰던 ‘오케’는 점점 사라지고 ‘손 씻는 그릇’인 ‘다라이’로 대신하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국은 세숫대야와 ‘고무다라이’를 구분하여 쓰고 있다. 그래서 위의 예문처럼 ‘고무다라이’는 거동이 어려운 늙으신 어머니를 목욕시킬 큰 함지그릇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식당 같은 곳에서는 여전히 김치 담글 때 요긴하게 쓰고 있는 것이 고무다라이다.

 그렇다면 고무다라이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 겨레는 어떤 그릇을 썼을까? 커다란 함지박이다. 함지박은 통나무를 파서 만든 것도 있고 나무를 덧댄 것도 있었다. 또한 옹기재료로 만들거나 질그릇 식으로 만든 것도 쓰였는데 스텐이나 고무다라이가 들어오면서 이 함지박들은 시나브로 사라졌다.

 오늘날 깨지지 않고 질기고 간편한 ‘고무다라이’를 능가하는 큰 그릇은 없지만 이 말은 고무+세숫대야(다라이)이므로 ‘고무함지(박)’이라 부르는 게 좋을 것이다. 만일 스텐으로 만든 것이라면 ‘스텐다라이’가 아니라 ‘스텐함지’가 좋지 않을까?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요즈음은 한 분야에 입문하여 10년만 공부해도 “전문인”이 되는 세상이다. 일본어 공부 35년째인 글쓴이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도 글쓰기가 두렵고 망설여진다. 그러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풀어내는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그거 좋다”고 하여 ‘국어사전 속 숨은 일본말 찾기’라는 부제의 책《사쿠라 훈민정음》을 2010년에 세상에 내어 놓았다. 이 책 반응이 좋아 후속편으로 2편이 곧 나올 예정이다. 내친김에 일반인을 위한 신문연재를 하게 되었다. ‘말글을 잃으면 영혼을 잃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애정을 갖고 이 분야에 정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