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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나 스포츠에서 자주 쓰는 ‘석패’라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42)]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가)  참! 처량도 하지 민주당. 잠시 수꼴들 트윗 보니까 거기서도 까이고, 진보적 시각이 다수인 내 탐라인에서도 줄창 까이네. 대선에서 석패한 야당의 길이란게 서럽고 거친 길일거라는건 예상했지만 사후 의원들의 행태는 선거에 진 사람들 같지 않아.완전 귀족들. -다음-

(나) 이영표는 9일(이하 한국시간) 오후 센추리링크필드에서 열린 미국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 시애틀 선더스와 원정 경기서 풀타임 활약을 펼쳤다. 소속팀은 아쉽게 2-3으로 석패했다 -다음-

 위 예문 (가)(나)에서 보듯이 석패란 말은 거의 선거나 스포츠 경기에서 약속 하듯이 쓰고 있다. 선거에서 패배하고 스포츠 경기에서 패배하는 사람들의 심정이야 ‘분함’ 그 자체겠지만 이러한 분함을 표현하는 ‘석패’라는 말은 예전에 쓰지 않던 말이다.

 

   
▲ 석패라는 말을 많이 쓰는 스포츠 경기

그도 그럴 것이 왕조시대에는 선거가 있을 리 없었고 오늘날 열광하는 각종 스포츠도 한국에 들어 온지 1세기도 채 안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석패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이겨서 안타깝다”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 말을 쓰는 사람이 누구 편에 서서 하는 말인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만큼 조심스러운 말이 ‘석패’라는 말이다.

 이 말은 ‘세키하이’라는 일본한자말에서 온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풀이를 보면, “석패(惜敗) : 경기나 경쟁에서 약간의 점수 차이로 아깝게 짐”으로 나와 있지만 말밑(어원)은 입 다물고 있다. 일본어국어대사전 《大辞泉》에 보면 “せき‐はい【惜敗】競技や試合などで、わずかの差で負けること”로 나온다. 번역할 필요는 없다. 국어사전에 그대로 베껴다 쓰고 있으니까. 

이렇게 한자음을 빌어다 쓰는 일본말은, 물류(物流, 부츠류, 유통의 뜻), 하상(河床, 카쇼우, 강바닥), 도정(搗精, 도세이, 방아찧기), 택배(宅配, 타쿠하이), 달인(達人, 다츠진)...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전에 오른 한국어 낱말 가운데 70%가 한자어라는 말이 돌던데 이런 일본식 한자어가 지대한(?) 공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석패’를 ‘아깝게 지다’라는 우리 토박이말로 바꿔 쓰고 국어사전에서 몰아낸다면 한자말 70% 운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국어사전에서 한자말 퍼센트를 세느라 아까운 시간을 쏟지 말고 ‘석패’ 같은 말들을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본다.

 

**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요즈음은 한 분야에 입문하여 10년만 공부해도 “전문인”이 되는 세상이다. 일본어 공부 35년째인 글쓴이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도 글쓰기가 두렵고 망설여진다. 그러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풀어내는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그거 좋다”고 하여 ‘국어사전 속 숨은 일본말 찾기’라는 부제의 책《사쿠라 훈민정음》을 2010년에 세상에 내어 놓았다. 이 책 반응이 좋아 후속편으로 2편이 곧 나올 예정이다. 내친김에 일반인을 위한 신문연재를 하게 되었다. ‘말글을 잃으면 영혼을 잃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애정을 갖고 이 분야에 정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