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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병"보다는 "곱삿병"이라 쓰자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51)]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오페라 ‘라보엠’의 미미,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등 비극의 여주인공들은 꼭 폐병을 앓는다. 결핵 등 폐병은 그래서 ‘가난병’이라고 부른다.(중략) 야맹증·각기병·괴혈병·구루병 등도 여기에 속한다. 이 중 구루병은 비타민D가 부족해 뼈의 변형이 오는 질환이다. 우리가 못살던 시절엔 구루병에 걸려 ‘곱사등이’가 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중앙일보‘분수대’, 2011.3.12- " 

요즈음 부쩍 구루병 기사가 눈에 띈다. 구루병이란 무슨 병일까?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구루병(佝僂病) : 뼈의 발육이 좋지 못하여 척추가 구부러지거나, 뼈의 변형으로 안짱다리 등의 성장 장애가 나타나는 병. 비타민 디(D)의 부족으로 생기며, 유아에게 많다. ≒곱사병”이라고 해두었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 표시인데 이 표시는 같지 않고 비슷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루병=곱삿병이다. 

여기서 구루병=곱삿병이라고 보는 기사를 하나 소개하겠다. 기사제목은 “佝僂는 姙娠不可(구루는 임신불가)”이며 1926년 1월 31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평양 남정에 사는 오씨(19살)는 만삭이 되었으나 등곱새임으로 태반에 이상이 있어 해산치 못하고 고민하다가 평양 자혜의원에서 제왕절개수술을 받어 겨우 애를 끄집어냈는데 병원서는 다시는 아이를 못가지게 난소를 잘라 냈다더라.”하는 기사가 그것이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구루(병)=등곱새(곱삿병)로 보고 있다. 85년 전만 해도 구루병=곱삿병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 1929.4.12 동아일보 기사

그렇다면 구루병이란 말은 어디서 나온 말일까? 일본국어대사전 《大辞泉》에 보면 ‘くるびょう【佝僂病】: 乳幼児に発生する骨格異常で、脊椎および四肢骨の湾曲・変形を主徴とする病気。主にビタミン D 不足による、骨の石灰沈着障害が原因となる”이라고 되어 있는데 번역하면, “구루병(뵤-), 유아에게 발생하는 골격이상으로 척추 및 팔다리 부분이 굽고 변형을 가져오는 병, 주로 비타민 D 부족에 의하며 뼈의 석회침착장해가 원인이다.”이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구루병을 정리하면 두 가지 증상이 있는데 ① 등이 굽은 곱삿병과 ② 사지(四肢)가 굽는 안짱다리 병이 그것이다. 한국어는 이 둘을 구분 하는 말이 있으나 일본어에서는 이 둘을 싸잡아 구루병이라 한다. 

원래 이 말은 그리스말의 척추를 뜻하는 래키스(rhakhis)에서 유래하며 1945이전에 일본에서는 구루(佝僂)라고 써놓고 세무시(背虫)라고 발음 했다. 《이와나미 국어사전(国語辞典, 岩波 第4版)》풀이를 보면 예전에 일본에서는 등(背)에 나쁜 벌레(虫)가 살아 곱추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背虫, 세무시’ 이라 했고 이 말은 굽었다는 뜻의 ‘佝僂, 구루’라는 말과 함께 쓰이다가 지금은 ‘佝僂’의 일본발음 구루(くる)로 정착 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왕조실록에도 구루(佝僂)라는 말이 엿보인다. 선조실록 1598년 7월 7일자 기록에는,
“頃日臣與左右相, 同往見之, 提督見臣形容衰敗, 癃病佝僂提督見臣形容衰敗, 癃病佝僂, 語言不通” (전일 신이 좌·우상과 함께 가서 보았을 때, 제독은 신의 형용이 노쇠하고 허리가 굽은 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전장에서 믿고 의지하기가 어렵다고 여겼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의 구루(佝僂, 또는 傴僂)는 '허리가 굽거나, 늙고 보잘 것 없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데 쓰였다.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은 현재와 같이 “구루병(佝僂病): 뼈의 발육이 좋지 못하여 척추가 구부러지거나, 뼈의 변형으로 안짱다리 등의 성장 장애가 나타나는 병. 비타민 디(D)의 부족으로 생기며, 유아에게 많다. ≒곱사병”이라는 일본식 풀이로 끝내지 말고 그 유래를 밝혀야 할 것이다. 더불어 국민도 구루병이라는 어려운 말보다는 곱새, 곱사, 곱추, 꼽추, 안짱다리 같은 우리 토박이말을 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