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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김구 주석 편지를 받은 하와이 박신애 애국지사

박신애 지사는 김구 자서전에도 이름이 올랐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자랑스러운 점을 들라하면 제 자신의 뿌리가 한국인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부모님이 한국의 독립을 위해 큰 노력을 했다는 것이 가슴 뿌듯하며 실제로 그러한 노력의 결과 독립을 실천했다는 사실은 자손으로서 영광스러운 일이지요박신애 애국지사의 따님인 에스더 천 씨는 2015년 항일영상역사재단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와이로 건너가 하와이 대한부인구제회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박신애(1889~1979) 지사는 1920년대 말 임시정부 주석 김구로부터 재정부족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당시 사탕수수 노동자로 하와이 땅을 밟은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넉넉하고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임시정부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박신애 지사를 비롯한 여성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독립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준 하와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고마움을 백범 김구는 그의 자서전에 잊지 않고 그 이름 석 자를 남겼다.

 

나의 통신(하와이 동포들에게 쓴 편지)이 진실성이 있는데서 점차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하와이의 안창호 (여기 안창호((安昌鎬)는 도산 안창호(安昌浩)와는 다른 인물로 하와이 국민회 계통 인물이다.), 가와이, 현순, 김상호, 이홍기, 임성우, 박종수, 문인화, 조병요, 김현구, 안원규, 황인환, 김윤배, 박신애, 심영신 등 제씨가 나와 (임시)정부에 정성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 백범일지, 도진순 주해, 돌베개. 320

 

박신애 지사를 비롯한 하와이 여성독립운동가들은 1919315일 하와이 각 지방 부녀대표 41명이 호놀룰루에서 모여 조국 독립운동을 후원할 것을 결의했다. 이에 3292차대회에서 대한부인구제회를 결성하였으며(회장 황마리아) 이들은 임시정부의 외교선전사업에 동참하여 조선이 독립국임을 국외에 선전하였을 뿐 아니라 3·1만세 운동 때 순국하거나 부상당한 고국의 가족들을 돕는 구제사업을 지속하였다. 그 한가운데 박신애 지사도 당당히 회원으로 활동하였던 것이다.

 

 

박신애 지사가 속한 하와이 대한부인구제회 회원들의 임시정부 후원사업은 일시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를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 백범 김구의 편지다. 이 편지를 통해 임시정부 후원이 1919년부터 1941년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박신애 지사에게 김구 선생이 보낸 편지로 이때 박신애 지사 나이는 52살이었다.(아래 편지글은 1941년 당시 표기임)

 

박신애 누이 보시요. 그간에 편지를 하랴고 하엿지만 먼전에 알튼 각기가 발작이 되여서 고생을 하고 둘제로는 중경에 공습이 심하여서 방공동으로 피란하러 다니고 또는 더위가 백여도까지 더워서 잇때까지 집필을 못하엿소. 그간 집안식구들은 다 무고하신지요. 성경에 이르는 말과 갓치 이 세상은 끝날이 도달한 것 갓소. 사람의 죽엄이 산갓치 쌘다는 글은 봣지만 지난 류월 오일에 중경에서 큰 불행 사건인 수도에서 숨이 맷켜 죽은 시체 수쳔명의 송장뎅이를 나는 친히봣소. 그때에 우리 동포들도 각각 나노아 몃곤대 방공동의 피란을 햇지만 한사람도 상한 사람이 없으니 만행이라 하겟소. 이제 미국이 참전하는 날이면 세게대전장이 이러나는 날인데 세게락원에서 살던 하와이 동포들도 필경은 우리와 갓치 방공동 생활을 하시리라 생각하오. 한가지 부탁할 것은 공습피란하라는 명령이 날 때에는 명녕대로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꼭 피하기를 바라오. 전 집안 평안하시기를 바라오.”

                                                                            - 1941725일 오라비 김구 -

      

길지 않은 편지글이지만 이 편지를 통해 당시 일제가 저지른 중일전쟁(中日戰爭, 193777일 일본의 중국 대륙 침략으로 시작되어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일어난 전쟁)으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임시정부 요인과 동포들의 어려움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구 선생은 중경의 공습 등을 겪으면서 하와이 동포들을 걱정하는 편지를 박신애 지사를 통해 남겼다. 지도자로서 남의 나라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동포들의 생활을 걱정하는 모습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임시정부는 본국뿐만 아니라 만주와의 연락이 모두 끊겨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황해도 봉산(鳳山) 출신인 박신애 지사는 하와이의 대한부인구제회에서 중심 역할을 하던 박중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국 독립의 기회로 포착하고 중국 관내지역에서 활동하던 임시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중국에서는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조선혁명당 등 중국 관내 독립운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을 결성하였는데 여기에는 미주지역의 6개 단체들도 참가하였다. 박신애 지사는 대한부인구제회 대표로 광복진선에 참가하였다.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은 중일전쟁을 한·중 민족의 생사존망이 걸린 최후의 관건으로 여기고, 중국과 함께 항일전선에 참가할 것을 결의하는 등 한중연대를 강조하던 단체였다.

 

어머님께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국의 공동체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상해 임시정부를 적극 도왔던 일은 후손으로서 더 없이 자랑스러운 일입니다박신애 지사의 따님인 에스더 천 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여성들의 활약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헌신에 큰 손뼉을 쳐야할 것이다.

 

사탕수수 농장의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피땀을 흘리며 조국 독립을 위해 독립자금을 모았던 하와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필자는 지난 419(현지시각), 하와이 와이파후에 있는 하와이 플랜테이션 빌리지(Hawaii's Plantaion Village)를 찾았다.


 이곳은 한국, 중국, 하와이, 일본, 필리핀, 오키나와, 포르투갈, 푸에르토리칸 8개 소수민족의 이민 선조들의 삶을 한 곳에 엿볼 수 있는 민속박물관으로 한국인 노동자들의 숙소는 조선인 가옥으로 소개해 놓고 있다.

 

 



노동자 숙소라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좁은 공간이나마 조선인 노동자들은 울밑에 봉숭아를 심고 집안에는 고운 자수로 조선의 지도를 수놓아 걸어두는 등 언제나 마음은 두고 온 고향을 그리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코끝이 찡했다. 100여 년 전 하와이로 진출한 동포들이 조국의 국난에 눈감지 않고 독립자금을 모아 조국 광복에 초석을 놓았던 역사적 사실을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와이 플랜테이션 빌리지(Hawaii's Plantaion Village)와 사탕수수 농장이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특히 이번 취재에서는 박신애 지사를 비롯하여, 황마리아, 전수산, 심영신 지사 등  하와이 이민사에서 영원히 새겨야할 인물 중심으로 그 발자취를 돌아 보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필자의 책 <서간도에 들꽃 피다> (7권, 7월 발간)에 실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