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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일본에 있던 조선 분청사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돼

밀매단이 빼나간 <분청사기 이선제 묘지(粉靑沙器李先齊墓誌)>

[신한국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분청사기 이선제 묘지(粉靑沙器李先齊墓誌)> 1점을 기증받았다. 이 묘지는 일본인 소장자 고(도도로키 구니에(力孝志,1938-2016) 유족으로부터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 이하 재단’)이 우선 기증을 받아 2017824일 국내에 들어왔으며, 마지막으로 9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 묘지는 조15세기 집현전 학사 필문(蓽門) 이선제(李先齊, 本官 光州)의 묘지(죽은 사람의 이름, 신분, 행적 따위를 기록한 글로, 사기 판이나 돌에 새겨 무덤 옆에 묻은 것) 19986월 국내 문화재밀매단에 의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어 오랫동안 행방을 찾을 수 없었으나, 2014년 재단의 노력으로 묘지의 소재를 알게 되었다. 불법 반출품임을 모르고 구입했던 일본인 소장자와 재단의 면담이 이어졌고, 201611월 소장자가 죽은 뒤 유족 도도로키 구니에(力邦枝) 여사가 고인의 뜻에 따라 기증이 이루어졌다. 이선제 후손인 광산이씨도문중(光山李氏都門中)도 기증에 동참하였다.

 

이 묘지에는 이선제(李先齊, 1390-1453) 태어나고 죽은 해와 행적, 가계 관련 내용을 담은 모두 248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묘지의 앞면, 옆면, 뒷면 세 면에 글자를 오목새김(음각)으로 새기고 백상감토를 발라 긁어낸 후 마감하는 상감기법으로 표현했다. 이묘지는 이선제의 태어나고 죽은 해를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제작년도가 분명한 분청사기 기준작이라는 점에서 특히 의의가 있다.


 

이선제는 본관은 광주(光州, 光山으로도 칭함), 1419(세종 1) 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부교리(集賢殿副校理), 강원도관찰사,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2)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사후 이조판서와 예문관 대제학에 추증되었다. 그러나 그의 5대손 이발(李潑,1544-1589)이 동인의 지도자로 서인의 지도자 정철(鄭澈, 1536-1593)과 대립하였는데, 1589(선조 22)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그와 일가족은 죽음을 맞이했다. 이 때 이선제의 관직도 삭탈당하고 저술도 소실되어 그와 관련 기록을 주로 실록에서 찾을 수 있었으나, 이 묘지가 발견되어 이선제 태어나고 죽은 해를 명확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묘지를 만드는 데 사용한 태토(胎土)와 유약의 색 또한 15세기 중반 제작 분청사기의 특징을 잘 반영하며, 제작연대가 분명하고 위패(位牌)’ 형태라는 기형이 희소하다는 점에서 이 분청사기 묘지의 가치가 높다. 또한 국내 소재 15세기 분청사기 묘지 4점이 보물(577·1428·1459·1830)로 지정되어 있어서 이선제 묘지의 희소성을 가늠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X-선 촬영으로 과학적 분석 과정을 통해 묘지는 여러 개의 태토 덩어리를 합쳐 두드려서 편편하게 만든 판으로 제작한 것이며, 묘지 태토의 조밀도와 공기층의 치밀도를 검토한 결과 조선시대 도자기의 일반적인 양상과 동일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선제 묘지를 919일 기증식에서 언론에 처음 공개하며, 이 행사에 일본 유족 도도로키 구니에(力邦枝) 여사도 참여할 예정이다. 기증식 다음날인 920일부터 1031일까지 중근세관 조선실에서 특별 전시를 진행한다. 이후 이선제 무덤과 부조묘(不祧廟,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가 있는 광주 지역의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이선제 묘지를 이관하여 호남의 중요 인물 관련 문화재로 활용도를 높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