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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항일독립 문화유산 「안규홍ㆍ박제현 가옥」 문화재 된다

「곡성 성륜사 안심당ㆍ육회당」 등 7건도 함께 문화재 등록 예고

[신한국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김종진)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 항일독립 문화유산 1건과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 곡성 성륜사 안심당육화당, 원주 모리스 선교사 사택, 원주 육민관고등학교 창육관, 원주 제1야전군사령부 구 청사, 태안 동문리 근대한옥,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제대 및 세례대 등 조두 7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하였다.

 

이번에 등록 예고된 보성 안규홍박제현 가옥일제에 항거하여 나라에 헌신한 공로로 머슴과 주인이 함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유일한 곳으로, 한말 호남의병의 대표적 머슴 의병장이었던 안규홍(安圭洪, 1879~1910)안규홍 의병부대의 군량관이었던 박제현(朴濟鉉, 18711909)이 살았던 보성군 법화마을에 있는 주거지이다.


   

안규홍 의병장이 약 20여 년간 담살이(머슴)를 했던 사랑채와 안규홍 의병부대에 군자금과 군수품을 지원했던 박제현의 안채가 원형대로 남아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한말 의병장들의 생가나 주거지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애국선열의 독립정신을 선양할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의 가치가 높은 곳이다.

* 독립운동가 생가: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등록문화재 제276), 예천 윤우식 생가(등록문화재 제571), 안동 임청각(보물 제182), 경주 최부자댁(국가민속문화재 제27)


 

안규홍(安圭洪, 1879. 4. 10.~1910. 6. 22.)

한말 대표적인 평민 의병장 안규홍은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며, 가세가 빈한하여 보성 법화마을의 먼 친척인 박제현의 집에서 담살이(머슴) 생활을 하며 모친을 극진히 봉양하였다 . 1907년 일제의 강제 군대 해산을 계기로 구국을 위해 은밀히 담살이 동지들 수십 명을 규합하여 일심계(一心契)를 조직하였으며, 19084월 전남 보성군 동소산에서 의병조직을 확대(지리에 밝고 지역은 보성출신의 머슴과 소작농의 토착농민과 전투경험이 풍부한 관동 의병, 전략 전술을 갖춘 해산군인 등으로 구성)하여 의병부대의 기치를 들어 일제와 친일세력, 탐관오리 제거를 위한 활동을 하였다.

 

의병을 일으킨 후 190910월까지 16개월 동안 일본군 헌병대수비대토벌대와 수십 차례의 항일투쟁을 전개하여 파청대첩(巴靑大捷)과 진산대첩(眞山大捷) 등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1909년 전남지역의 의병에 대한 대대적인 남한대토벌작전이 거세지자 후일의 거사를 기약하면서 의병을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보성 법화촌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광주감옥에 갇혔고 대구 감옥으로 옮겨져 1911622일 교수형으로 순국하신 한말 대표적인 담살이 평민 의병장이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박제현(朴濟鉉, 1871. 7. 25.~1934. 7. 15.)

박제현(朴濟鉉)은 안규홍 의병장이 구국을 도모하고자 의병을 일으켰을 때 군량과 자금 등 군사물자를 지원하였으며, 19082월 보성군(寶城郡) 동소산(桐巢山)을 근거지로 안규홍(安圭洪) 의병진의 군수장(軍需將)이 되어 소속대원 20여명과 함께 파청(巴靑)진산(眞山)원봉(圓峯) 등 전투에 참여하였던 그는 1909 7월 일제의 소위 남한대토벌작전을 위해 부석대위(富石大尉)가 이끄는 병력을 증원하여 포진함을 알고 전세가 불리하자 의병들을 해산시키고 은신하였다. 그 후 전남 순천(順天) 병산사의 양가쟁이 고개에서 적과 교전 끝에 일본기병에게 붙잡혔다. 이때 손발을 절단당하여 불구의 몸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곡성 성륜사 안심당육화당1920년 구례 지역의 상류가옥인 국포고택을 1987년 곡성으로 옮겨 지은 건축물이다. 전통한옥 건축형식을 기본으로 근대기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근대 건축기법을 부분 적용해 한옥의 시대적 변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근대기 활동 화가이자 남종화의 거장인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 1922~2014)의 전통문화예술 교육과 창작을 위한 전승공간으로서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 국포고택: 국포(菊圃) 김택균(金澤均,18721945)1920년대 근대기에 건립한 가옥

* 아산 조방원: 남농 허건((南農 許楗 1907~1987) 화백의 제자로서 남종화의 거장


   


원주 모리스 선교사 사택은 원주에 기독교가 전해지던 초기에 활동한 선교사 모리스(Charles David Morrs, 1869~1927)를 위해 1918년 세워졌으며, 서양식 주택의 특징이 잘 나타난 건물이다. 원주 기독교 선교의 발상지이자 서구식 의료, 교육, 생활, 건축 근대문명의 유입 통로였던 일산동 언덕 일대의 서구식 건축물들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근대문화유산으로서, 원형도 잘 유지되어 있다. 지역 개신교 선교활동의 역사를 증명해주는 유일한 현존 자료이기도 하다.

 

원주 육민관고등학교 창육관도 이번에 근대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1954년에 건축한 육민관고등학교는 국제연합 한국재건단(UNKRA)과 제1야전군사령부의 도움으로 건축한 역사적 의미가 있으며 건축 당시의 설계도면과 내역서까지 고스란히 잘 보전되어 있어 건축사적인 가치도 있다고 판단된다.

 

원주 제1야전군사령부 구 청사 한국군의 주요조직이던 제1야전군사령부가 사용하기 위해 1954년 세운 역사적인 건물이다. 중앙부 현관(porch)을 중심으로 항공기 날개와 유사한 독특한 대칭적 외관이 특징이고, 콘크리트 가장자리 보와 흉벽 다리(파라페트, parapet)를 크게 키워 시각적으로도 권위와 위엄이 잘 드러났다는 점에서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태안 동문리 근대한옥은 충남 태안읍의 전통적 중심지이자 과거 태안읍성의 중심부에 1930년 건축된 근대한옥이다. 전통주택 양식을 기반으로 근대적 생활양식과 주거기능을 갖추었고 평면구조와 공간구조, 건축재료 등에서 근대한옥의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제대 및 세례대는 사적 제424대항성공회 강화성당안에 있는 핵심적인 의례물로 1900년 건축 당시 강화도 지역의 화강암을 재료로 제작되었으며 세례대에는 修己洗心去惡作善(수기세심거악작선)’, ‘重生之泉(중생지천)’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개신교의 한국 토착화 사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 한국의 성공회 교단에서 최초로 제작된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내부 구조물과 조화를 이루는 단순하고 소박한 형상은 경건한 종교적 분위기를 띠고 있다. 또한, 유물의 위치와 모습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현재까지도 의례물로서 원래의 기능대로 사용되고 있다.

* 修己洗心去惡作善(수기세심거악작선): 자기를 수양하고 마음을 닦고 악을 멀리하며 선을 행하라

* 重生之泉(중생지천): 거듭나는 샘물

 

이번에 등록 예고된 보성 안규홍과 박제현의 가옥7건은 앞으로 30일간의 등록 예고를 거쳐 의견 수렴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로 등록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