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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구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울 역사, <서울과 역사> 97호 펴내

서울역사편찬원,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 ≪서울과 역사≫ 제97호 발간

[신한국문화신문= 이나미 기자] 서울역사편찬원(구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원장: 김우철)에서는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 서울과 역사97호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서울과 역사97호에는 구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울의 역사 관련 일반논문 7편이 실려 있는데, 고고학부터 현대사까지 여성사와 지역사 등 다양한 시기와 주제를 다룬 연구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주목해 볼 만한 연구에는 <조선시대 정업원(淨業院)의 위치에 관한 재검토-영조의 정업원구기비(淨業院舊基碑) 설치를 중심으로->(탁효정), <러일전쟁 이후 일본군 경리부(經理部)의 한반도 내 활동과 그 의미>(조건)가 있다<조선시대 정업원(淨業院)의 위치에 관한 재검토-영조의 정업원구기비(淨業院舊基碑) 설치를 중심으로->는 새로 발굴된 고문서를 바탕으로 정업원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다.




정업원은 조선전기 왕실의 기도처이자 비빈들의 출가처로 이용된 비구니사찰로, 여러 차례 폐지되었다가 복설된 곳이다. 조선전기 실록에 등장하는 정업원은 창덕궁 인근에 있었는데, 조선후기 영조는 단종의 비 정순왕후를 기리면서 정업원구기비를 현재 서울 종로구 숭인동 청룡사 옆에 세웠다. 따라서 조선시대 정업원이 어디에 있었는지?’ ‘왜 영조는 정업원구기비를 숭인동에 세웠는지?’는 일찍부터 학계에서 논란이 되어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탁효정 연구원은 최근 장서각으로 이관된 <해주정씨 고문서>를 중심으로 정업원을 둘러싼 논란을 재검토 하였다. 그 내용에 따르면, 연산군~중종 때 정업원이 철폐되자 숭인동 일대에 정업원의 비구니들의 집단 거주지가 마련되었고, 당시 정업원의 주지가 정순왕후였다.


영조는 정순왕후가 숭인동 일대에 살았고 정업원 주지를 역임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정순왕후의 옛 집터에 정업원구기비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기존 여러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문제점을 제시한 다음 새로 발견된 자료를 바탕으로 기존 정업원 관련 논의를 한 단계 높인 연구이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군 경리부의 한반도 내 활동과 그 의미>용산 기지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한국주차군 경리부를 깊이 있게 분석하였다. 일본은 러일전쟁을 도발한 직후 한국주차군(韓國駐箚軍)을 편성하고 그 사령부를 서울에 설치하였다. 한국주차군은 당시 전선부대의 지원과 후방의 안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을 군사점령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의 조건 교수는 일본 방위성 소장 자료들을 활용하면서, 일본군의 한국 군사침략점령의 전환점이 되는 러일전쟁기 주차군의 편성을 경리부를 통해 밀도 있게 규명하였다.

 

이 책은 서울 신청사 지하 1층에 자리한 서울책방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hitory.seoul.go.kr)에서 개별 논문을 다운로드 받거나 열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