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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한국 차(茶)의 성지 해남 일지암(一枝庵)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확립한 초의선사의 향기를 만나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가을도 저무는 11월 말, 해남 땅끝마을 근처에 있는 고찰 대흥사에서도 1.6km를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일지암을 찾았다. 일지암(一枝庵)은 조선조 후기 한국의 차문화를 정리한 초의 선사가 39살이었던 1824년(순조24)에 중건하여 1866년 (고종3) 81세로 입적할 때까지 40여년간 이곳에 살았던 암자다. 일지암이란 이름은 어디서 유래한 걸까?  


중국 당나라 때 시에 달관했던 스님이 있었는데, 그의 법명은 한산(寒山)스님이다. 그가 지은 많은 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시구'(詩句)'가 있었다.  "뱁새는 언제나 한 마음이기에 나무 끝 한 가지(一枝)에 살아도 편안하다."  일지암은 여기서 따온 말이다. 마치 자신을 뱁새에 견준 것만 같다.


초의 선사는 남해 바다가 굽어보이는 두륜산 중턱에 작은 암자를 짓고 고려때 까지 융성했던 한국의 차문화를 찾고자 각종 문헌을 찾고, 선인들이 즐겼던 한국차의 명소들을 찾아 보며, 한국에도 훌륭한 차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온몸을 던져 증명하고자 하였다. 초의선사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당시 근처로 귀양왔던 정약용을 만나 그와 더불어 조상들이 즐기던 차의 멋을 함께 나누며 한국의 차문화를 마음껏 즐기며 살았다. 초의는 차를 통하여 불교의 깨달음의 경지를 느끼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확립하였고 그 결과 동다송(東茶頌)으로 한국 차의 멋을 시로 읇었고, 다신전(茶神傳)을 통하여 차를 즐기며 신선의 경지에 이른 조상들의 계보를 알리기도 하였다.


초의선사는 시서화(詩書畵)에도 능하여 당시 이곳에서 가까운 진도에 살던 어린 허련(鍊)의 재주를 발견하여 추사 김정희에게 소개하여 제자로 기르도록 하였다. 허련은 그런 인연으로 한국 문인화를 되살린 인물로 성장했다.


그런데 초의선사가 타계한 이후 조선의 국운마져 기울자 그가 남겼던 책들만이 조선의 이곳 저곳을 떠돌았고, 그가 거처하던 일지암도 일제감점기를 거치면서 비바람을 맞고 돌볼 사람이 없어진데다 화재를 만나 불타버렸다. 그뒤  1979년 한국의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국다인회'를 조직하고, 유서깊은 한국차의 성지인 일지암을 복원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되살아나게 되었다.


서울에서 땅끝마을 해남까지 밤을 새워 운전하며 먼 길을 가는 것은 참으로 힘든일이다. 그래서 대부분 명찰을 찾는 탐방객들은 대흥사만 둘러보고 오기 쉽다. 하지만 기자는 조선 후기 한국에도 아름다운 차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던 초의선사를 그리며 두륜산 중턱 남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일지암까지 올라가 보았다. 힘은 들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초의선사가 아니었으면 한국에도 훌륭한 차문화가 있었고, 또 한국의 차나무가 중국이나 일본의 차나무와 다를 뿐 아니라, 독특하다는 것을 누가 알려주었으랴 싶다.


그런데 최근 어렵게 되살아나던 차문화가 다시금 침체기를 맞이한 듯 하다. 도시나 시골을 막론하고, 우후 죽순처럼 들어서는 다양한 커피전문점들이 성황을 이루면서 차문화는 고사위기에 처한 현실이고보니, 어렵게 찾은 일지암에 초의선사의 영정을 보면서 면목이 없다. 


기자도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차보다 커피를 즐겨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능한 차를 즐겨마시는 습관을 갖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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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