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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신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때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대당평백제탑(大唐平百濟塔), 줄여서 '평제탑'이라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소정방이 전승기념으로 세운 탑으로 잘못 알려졌던 적이 있다.


그렇게 잘못 알려졌던 이유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4면에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이 자신의 공적을 자화자찬하며 그렇게 쓴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백제가 멸망한 뒤 부여는 7일 밤 낮으로 불탔다고 한다. 그리하여 목조로된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로지 돌로된 이 탑만이 부여 한 복판에 자리 잡았는데, 이 탑의 기단부에 소정방은 자신의 전공을 새겨넣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라져간 정림사는  오랫동안 잊혀진 절이ㅣ었다. 폐허가 된 채 오랜 세월이 지나자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다가 근래 발굴조사 결과 기와조각에서 정림사라는 문구가 발견되어 그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정림사는 백제시대 정형화된 1탑 1금당식의 정연한 가람배치 구조를 가진 사찰로 탑과 금당, 강당을 일직선상에 두고 주요 건물들을 감싸는 회랑(복도를 갖춘 궁궐의 구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탑은 돌로 된 것이나, 그 구조는 목조로 지은 탑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지붕돌이 넓고 길게 밖으로 나와있고, 지붕 아래 처마는 공포를 번안한 석재가 받치고 있다.


이런 석탑이 생기기 이전에는 목조로된 오층탑이 많이 있었으며, 오층 목조탑보다 훨씬 거대한 구층 목탑이 익산 미륵사에는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왕조가 멸망한 뒤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돌로된 석탑과 금당에 모셔져 있었던 석불의 일부만이 훼손된 채로 발굴되어 이를 금당이 아닌 강당에 모셔놓았다. 강당에 모셔진 석불의 상호는 우리가 보아오던 백제불상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과연 이러한 상호의 불상이 백제불상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정림사지에서 발굴된 불상이기에 부정할 수도 없다.


부여를 찾는 이라면 궁남지만 돌아볼 것이 아니라, 바로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여기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이 보관된 박물관을 꼭 돌아볼 일이다. 이를 보면 사라진 백제이지만 그 문화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기자정보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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