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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정조의 꿈이 서린 화성에서 생각하는 조선의 꿈

겨울 화성 답사 <1>


















[신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조선조 후기에 세웠지만 세계문화유산이 된 수원화성 가운데서 오늘은 화성 동쪽에 있는 연무대와 동북공심돈 그리고 창룡문을 소개해본다.


조선 후기 마지막 조선의 문화를 꽃피웠던 정조는 한양의 기득권 대신들이 옥죄고 있었기에 이를 벗어나 자신이 꿈꾸었던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신도시계획을 구상하였다. 정조는 할아버지에 의하여 억울하게 죽어간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화성의 융릉에 이장하고, 지금의 융릉 근처에 살던 화성주민들을 신도시 화성으로 이전하여 살도록 하였다.


그런 계획으로 신도시는 번개처럼 시작하여 번개처럼 끝났다. 시작부터 끝나는 날까지 그 기간은 단 2년 6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그 짧은 기간동안 성을 쌓고 행궁을 짓고, 성벽 주위에 문루를 세웠다. 화성의 남북으로는 2층의 성문누각을 세웠고, 동과 서에는 1층의 성문을 세웠다. 이 모든 공사를 2년 6개월에 미무리했고, 주민들까지 그 터전을 이전하게 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화성은 그렇게 완성되었지만, 나라가 쇠하고 망하게 되자, 서서히 허물어져 갔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벽도 허물어지고 건물들도 많이 훼손되었던 것을 다시금 복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가운데 오늘 소개하는 연무대, 동북공심돈 그리고 창룡문은 수원화성 가운데서도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난 정문의 이름은 창룡문(蒼龍門)인데 이는 푸른 용이 지킨다는 뜻이고, 푸른용은 동쪽의 용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각 방위를 뜻하는 색이 있었다. 그 가운데 동쪽은 언제나 푸른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연무대(鍊武臺)는 무술을 연마하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병사들이 각자 수련한 기술을 임금이 보는 앞에서 대련하여 승부를 겨루기도 하였을 것이다.


동북공심돈은 동쪽 창룡문에서 북쪽으로 약 10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전망돈대이다. 동북공심돈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벽돌로 외부를 감싸게 하였고, 내부는 목조로 건축하였다.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지만, 그가 계획했던 왕권확립이 제대로 실행되었더라면, 구한말 같은 나라가 멸망하는 세도정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임금보다도 힘센 외척들의 세도정치가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백성들의 고혈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동안 조선은 서서히 그 끝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정조의 꿈이 서린 화성에서 조선의 꿈을 생각해본다.


기자정보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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