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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3

의리의 장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준사의 일신이 무섭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일본 수병 여덟 명이 달려들어서 준사의 몸을 움쩍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 이것은 작두이다. 앞으로 날 마주치게 될 조선의 장수들은 나의 예법을 거쳐야 한다. 준사, 그대가 처음으로 나의 예법에 감동하는 영광을 갖게 될 줄은 몰랐다.”

준사는 이를 악물었다.

진작 죽어야 했다. 지독히도 운이 나빴다.”

무슨 소리냐, 굉장히 운이 좋은 것이다. 구루시마의 첫 제물이니.”


구루시마는 잔인한 미소를 머금으며 손바닥을 펼쳐서 자신의 절단 되어버린 다리를 재고 있었다.

날 그냥 죽여 다오.”

준사가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다리는 작두 아래로 놓이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애초부터 구루시마가 준비해둔 저주였다.

두 다리를 자른다. 나와 똑같은 부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더 많아도 아니 되고, 적어도 안 된다. 정확히 무릎 아래 두 치다. 시작해라.”


일본 수병들은 구루시마의 명령에 따라서 작두날 위에 준사의 다리를 올려두고는 절단 시킬 부위를 겨누었다. 준사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하지만 그는 결코 애원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눈가에는 생사의 맹서를 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 둘 빠르게 스쳐갔다. 그 중에서도 사야가 김충선이 유독 절실하게 맴돌았다. 준사는 본래 천애 고아로 자라났다. 부모의 기억이 전혀 없는 그에게 유일한 가족이 되어준 것이 바로 사야가 김충선의 부모님들이었다. 그래서 김충선은 친구 이전의 형제였으며 그가 조선을 선택 했을 때 준사는 무조건 그를 따라서 항왜가 되었던 것이다.


절단!”

구루시마의 입에서 지옥의 저주가 뱉어지는 순간에 날카롭게 번뜩이는 작두날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준사의 두 다리를 내리 찍었다. 준사는 그 고통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무섭게 튕겨졌다. 그 순간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준사를 붙들고 있던 장정 여덟 명이 모조리 나가자빠질 정도였다.

!”

준사는 외마디 비명을 삼키면서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크하하핫, 크하핫!”

미친 듯이 웃음을 토해내는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악귀 같은 얼굴이 바다에 가득 떠올랐다. 그의 광소가 파도에 휘감기며 자꾸만 출렁댔다. 잔혹함 끝에 짙은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 * *

 

물줄기가 돌연 바다위에서 뿜어져 올랐다. 마치 고래가 숨구멍으로 호흡하는 것처럼 물이 아래서 위로 치솟았다. 작은 분수처럼 물기둥이 형성되는 모습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보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한동안 수면위로 뿜어지던 물기둥이 사라지면서 뾰족한 철갑의 형상이 두둥실 떠올랐다. 바로 귀선이었다. 왜적의 눈을 피해서 잠수하였고 이제 선체의 무게를 유지 시켰던 물을 역류하여 뿜어냄으로써 귀선이 다시 떠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상판을 덮고 있던 철갑이 열려지며 사야가 김충선을 비롯한 서아지와 군관, 수병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비교적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