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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한재준의 <붉은 한글>, 세상에 대한 외침

옛 집현전 터에 설치한 한글 조형 <붉은 한글>을 보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문화재청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재단과 대한황실문화원이 공동 주관한 제4회 궁중문화축전이 지난 4월 21일부터 5월 6일까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에서 열렸다. 그 가운데 경복궁 행사의 하나로 세종 즉위 600돌을 기념하는 [한글타이포전]이 경회루 앞 수정전 일원에서 있었다.

 

 

 

이 지역은 훈민정음 창제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낸 옛 집현전 터이기에 그 뜻이 더욱 깊다. 한재준, 김연희, 김현진 작가가 출품했는데, 한재준 작가는 <붉은 한글>과 <저 너머 한글>을 설치했다. <붉은 한글>은 한글자모를 이어서 만든 동물과 사람 형태의 조형물을 잔디밭에 늘어놓은 형태이며, <저 너머 한글>은 수정전 앞 매점 처마에, 한글 자모 조합의 특성을 살린 구성으로 육백년 묵은 세종대왕의 목소리에 염원을 담아 입체 형태로 설치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만난 한재준 작가는 자신이 창작한 작품 ‘한글 조형’ 곧 <붉은 한글>를 준비한 면수건으로 애지중지 닦아내고 있었다.

 

이날 멀리 여주에서 온 여주세종문화재단 남궁 희 팀장은 <붉은 한글> 가운데 <슈>와의 인연부터 지금 다시 본 <슈>에 대한 느낌 등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2012년 처음으로 만난 <슈>(‘ㄱ’이 2개, ‘ㅏ’가 1개)는 현재까지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한재준 교수님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귀한 친구 <슈>를 보고 딸아이의 처음 반음은 ‘시큰둥’이었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난 <슈>의 변신 시도했다. <슈>는 도대체 몇 개의 글자로 변신이 가능한 걸까? 어떤 모양으로 변신이 가능할걸까? 65개의 글자와 3가지의 모양으로 변신이 가능하다는걸 확인한 아이는 이제 <슈>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얼마 뒤 다시 경복궁에서 만난 <슈>는 크기가 커져서 아이들이 타고 놀 수 있는 친구 <슈>로 변신되어 있었다. 딸아이는 큰 <슈>를 보면서 행복해 했고, 함께 가까이서 사진을 찍고 만져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또 <슈>를 가까이 할 수 있다면 ‘한글 디자이너면서 과학자인 이도 곧 세종을 존경하고 한글을 사랑하게 될 텐데’라면서 많이 아쉬워했다. 나는 좀 더 많은 아이들이 <슈>를 알고 사랑하게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고 기원해 본다.“

 

남궁 팀장은 한 교수 못지않게 <슈> 사랑이 물씬 배어 있는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에 <슈>는 ‘레고’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지만 ‘레고’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란 생각이 든다. ‘레고‘는 단순한 놀잇감에 불과한 것이고, <슈>는 세계 으뜸 글자, 세계인의 글자인 ’한글‘의 과학성과 조형성을 몸으로 체득하게 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재준 교수의 한글 사랑이 담뿍 담긴 작품들을 조명해본다, 그리고 그의 속내를 더듬어 대담을 했다.

 

 

 

 

 

 

 

 

  세종 이도의 혁명적인 열정이 곧 <붉은 한글>이다

  <붉은 한글>을 설치한 한재준 교수와의 대담

 

이 전시에 참여하게 된 과정을 알고 싶다.

 

“지난 3월 초에 학교(서울여대) 후배 교수의 소개로, ‘(재)예술과인간’으로부터 제4회 궁중문화축전 부대행사 전시의 출품 의뢰를 받았다. 경복궁 옛 집현전 터가 설치 장소라 하여 조건을 묻지 않고 즉각 수락했다.

 

나는 2008년에 경복궁 수정전에서 <한글, 스승>(부제: 어머니 품으로 돌아온 훈민정음)이라는 주제 전시를 총감독한 경험이 있다. 그 때에 그 장소와 공간에 대한 역사와 상징성을 학습했기에, 10년 만에 돌아온 기적 같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10년 전에 이 공간에서 펼쳤던 <한글, 스승>전시의 반응으로, 바로 다음 해인 2009년에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학_글 관의 큐레이터로 초청 받았고, 그 전시에서 세종 이도를 한국의 대표적인 디자이너로 소개하기도 했다.

 

출품 수락 전화를 끊고 나니, 마치 그동안의 시간이 오늘을 위한 준비와 수련의 과정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2013년에는 서울시가 추진한 “한글숨바꼭질” 사업을 도왔고, 2016년에는 서울디자인재단이 의뢰한 “문자도시 한글서울 통합디자인 계획” 이라는 연구도 총괄 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경복궁 서측 세종 나신 터(준수방)의 가치와 경복궁의 가치를 재확인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이런 가치를 이어낼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런 내용을 더 잘 알리고 공감을 끌어내고 감동을 잘 전한다면, 이 지역은 서울의 문화 중심, 우리나라의 문화 중심 역할 뿐만 아니라, 세계 문자 중심의 상징공간으로까지 자리잡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 출품작의 의도가 궁금하다.

 

“작업 준비 기간이 매우 짧았기에, 그동안 진행했던 작업의 연장선에서 최대한 적절한 예산 투입과 공간의 상징성, 조건과 성격에 맞추면서 준비했다. 먼저 경회루 앞뜰 잔디밭에 그동안 진행해 왔던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친근한 성격의 “슈”, “유_유”, “네발 달린 동물” 등을 등장시켰다. 재료는 단단한 철판으로 용접하여, 열정의 붉은 빛깔로 마무리했다. 붉은 색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세종 이도의 생각과 태도, 혁명적인 열정, 고난을 극복했던 여러 상황과 궁궐의 품격을 고려한 것이다. 작품 제목은 기억하기 쉽게 <붉은 한글>이라 했다. 가까이에서 봐야 알 수 있지만, 특별하게 붉은 빛깔이다.

 

수정전 앞 매점 처마의 <저 너머 한글>은 처음엔 고려하지 않았으나, 진행 중에 마음이 바뀌었다. <붉은 한글>만으로도 기한을 맞추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임시로 지은 저 매점은 2008년 <한글, 스승>전시 때에는 없었다. 나는 그 전시 과정에서 수정전 내부나 앞마당에 작은 규모의 훈민정음 창제 또는 세종 이도를 기리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중국의 눈치를 보던 한자 문화권 시대에 세종 이도가 왜, 우리말에 어울리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려고 했고, 어떤 과정으로, 고난과 역경은 어떻게 이겨냈는지, 반포와 보급까지의 최소한의 정보라도 안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련된 분들에게 제안도 했었다. 그 때의 반응은 “경복궁 내에는 어떤 건물도 세울 수 없다” 였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엔가 우연히 와서 보니, 저 매점이 세워져 있었다. 창문은 온통 로마자 범벅이었다. 그로부터 7~8년 동안을 부끄럽고 속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 이야기도 함께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보는 것, 보여 주는 것, 체험의 힘을 확인하고 싶었다. 여전히 우린, 말로만 한글 한글, 외형으로만 세종 세종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 <붉은 한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무엇보다 <붉은 한글>의 주인공은 “슈”다. “슈”는 ㄱ자 두 개, ㅏ자 한 개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슈는 변신술의 천재다. 한글의 최소주의, 전환무궁함, 무한확장성을 보여준다. 다음은 내가 2013년 썼던 <슈>이야기다.

 

[‘슈’ 이야기]

제 이름은 ‘슈’입니다. 한글 지킴이, 변신술의 천재이지요. 간단한 재주넘기로 열두 가지 이상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눈 깜빡할 사이에 70개 이상의 글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ㄱ’자 두 개, ‘ㅏ’자 한 개의 조합만으로 가능하지요. 한글 자모 조합의 확장성을 응용했답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인 한글’의 특성이고, ‘최소주의 한글’의 신비함이 지요. 비밀인데요. 언젠가는 제 몸에서 날개가 솟아난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열심히 새로운 변신술을 익히고 있지요. 날개가 솟아나면 세상 곳곳을 마음대로 날아 다닐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는 세상의 모든 글자를 만나고 싶어요. 제가 배운 변신술을 알려주고 싶거든요. 한글과 한글을 만드신 세종 이도님 이야기도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지극 정성으로 만든 멋진 글자라고요. 제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분들도 아주 많이 응원해 주세요. 여러분, 고맙습니다. 슈슈슉~ 슈슈슝~ 2013년 3월 25일. 한글 지킴이 ‘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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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유_유”다.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 한 쌍인데. “유_유” 속에 “슈”가 숨어 있기도 하다. 세 개의 ㄱ, 두 개의 ㅏ, 한 개의 ㅇ으로 구성했다. “사랑” “서울” 이라는 글자를 만들 수 있다. “서울 사랑” “사랑 서울” 서울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다. 그 외 조합 가능한 낱말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한글을 지키는 “네 발 달린 동물” 한글지킴이 한 쌍이다. 한 마리는 서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엎드려 있다. 경복궁, 집현전 터를 지키는 형상이다. 수호신이다. ㄱ자 한 개, ㄷ자 한 개, 다섯 개의 ㅡ, 한 개의 ㅣ로 구성했다. 전체적으로는 훈민정음 제자해 기록에 밝힌 “이기불이(理旣不二)”철학을 나누고 싶었다.“

 

 

- ‘영추문’에 할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영추문은 경복궁 서측 문이다. 지금은 굳게 닫혀있다. 저 문이 열려야 한글길이 열린다. 이유? 짧게 설명하겠다. 경복궁은 훈민정음 창제의 중심 공간이며, 《훈민정음》 해례본을 집필한 곳이다. 또한 이를 주도한 세종 이도는 지금의 경복궁 서쪽 옛 준수방 터에서 태어났다. 경복궁에는 경회루 앞 수정전(옛 집현전 터)을 비롯하여 흠경각, 사정전, 강녕전 등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역사적인 공간이 곳곳에 있다. 이런 사실과 각 장소에 얽힌 사연을 잘 풀어내면 경복궁의 상징성은 더 높아진다. 따라서 한글의 가치도 더 실감나게 전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은 이런 노력이 없다. 관련 내용을 세세하게 밝히지도 못하고 있다. 아예 중요성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가 한글과 세종에 관련한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한글을 창제한 세종 이도와 한글이 창제된 경복궁의 가치를 연계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경복궁 서쪽 영추문의 활용이다.

 

이 문은 세종 이도와 한글과 경복궁과 통인동 일대의 역사 문화적인 가치를 자연스럽게 이어줄 중요한 통로이다. 한글길의 핵심 통로다. 닫혀 있는 이 문을 열기만 해도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질 것이다. 사람이 드나들면, 역사문화의 숨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지역에 얽힌 역사 문화의 실타래가 하나둘 풀릴 것이다. 경복궁이나 조선의 임금 세종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인왕산과 어진 사람의 이야기, 인왕산 기슭에서 뛰어놀던 소년 이도의 이야기까지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전통과 역사 문화 가치를 되살려낼 방법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파급효과 큰 성과를 끌어낼 수 있다. 영추문 개방이 그런 예다. 영추문을 그냥 열어주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국민들이 시민들이 알아서 한다. 부디 막대한 예산의 거창한 사업에만 매달리지 말고 쉬운 일부터 풀어가자. 역사적인 공간의 현장성과 상징 가치를 되살려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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