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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열아홉 나이로 순국한 김용창 지사 추모제 열려

어제 경기도 화성 향남면 김용창 지사 선영서 전통제례로

[신한국문화신문=양인선 기자 ] 

 

“조선은 독립의 때가 곧 온다고

힘을 모으자 동포에게 외치던 몸

왜놈에 잡혀 모진 고문으로

옥중 순국하던 날

산천초목도 울고

하늘도 울었어라“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펴낸 이윤옥 시인은 이렇게 김용창 지사를 노래했다.

 

 

 

 

어제(6월 11일) 경기도 화성 향남면 김용창 지사 선영에서는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복회 화성시지회(지회장 안소헌) 주관으로 독립운동가 김용창 지사의 추모제가 열렸다. 전통제례로 치러진 추모제는 초헌관에 김용창 지사의 동생 김용무 선생이, 아헌관에 채인석 화성시장이, 종헌관에는 안소헌 광복회지회장이 맡았다.

 

열아홉 청년 김용창(金容昶, 1926.8.3.~1945.4.3.) 지사는 경기도 향남면 출신으로 열다섯에 상경하여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사환을 거쳐 체신국 경성보험관리소 직원으로 근무하는 한편, 야간에는 덕수공립상업학교(德壽公立商業學校)에서 미래를 꿈꾸며 학업에 정진했다.

 

그러다 1944년 보험관리소 판자벽에 연필로 "반도 2천 6백만 동포여. 자 일어서라! 조선 독립의 때가 왔다. 지금 와서 지원병이니 징병이니 하고 있다. 아아! 가련하도다."라고 써 붙이는 등 저항정신을 실천하다 그만 치안 방해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고 같은 해 12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김용창 지사는 고문 속에서 옥고를 지르던 중 이듬해인 1945년 4월 3일 옥중 순국하였다. 9형제의 맏이였던 김용창 지사의 순국 이후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열흘 만에 숨졌고 어머니 혼자 올망졸망한 여덟 자식을 거두어야 했으니 그 비참한 삶의 여정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김용창 애국지사의 순국은 역사 속에 묻혀 있다가 1995년에서야 정부로부터 뒤늦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