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2 (토)

  • 맑음동두천 21.6℃
  • 맑음강릉 24.2℃
  • 맑음서울 23.2℃
  • 맑음대전 23.5℃
  • 구름많음대구 24.5℃
  • 구름많음울산 23.6℃
  • 구름많음광주 23.9℃
  • 구름많음부산 23.8℃
  • 구름조금고창 22.1℃
  • 흐림제주 25.1℃
  • 맑음강화 18.9℃
  • 맑음보은 22.6℃
  • 맑음금산 21.8℃
  • 흐림강진군 22.6℃
  • 흐림경주시 22.4℃
  • 흐림거제 23.7℃
기상청 제공

사진 나들이

[화보] 수려한 산세 속의 천년고찰 문경 '김룡사'

문경 운달산 김룡사(金龍寺)를 찾아서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김룡사는 문경지역에 있는 꽤 큰 사찰이다. 문경지역은 주변에 산이 많아 옛날에는 교통이 무척이나 불편했던 곳이나, 그럼에도 불편한 교통은 장애요인이 아니라 수행처로는 오히려 더 좋은 조건이 되어왔고, 그런 이유로 문경에는 이름있는 절들이 여럿있다. 김룡사도 그런 사찰이다.

 

김룡사의 유래를 보면, 창건은 신라 진평왕 10년으로 서기 588년에 운달(雲達)스님이 창건했다고 하며, 처음의 절이름은 운봉사(雲峰寺)였다고 한다. 산이 높아 구름이 봉우리에 늘 서려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 운봉사에 대한 이야기는 전하는 바가 없다. 이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운봉사에 대한 많은 기록과 전각들이 모두 불타버림으로써 차츰 잊혀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이후 한동안 빈터였던 이곳에는 인조2년(1624), 김룡사가 다시 중건 되었고, 이후 여러 스님들이 피땀으로 중창불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김룡사의 절 이름에 대하여는 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옛날 문경의 부사로 김(金)씨 성을 가진 이가 있었는데, 그가 모함으로 누명을 쓰게 되어 이 산에 숨어 살게 되었는데, 혼자 숨어 사는 도중 운달산 속에서 선녀처럼 예쁜 처녀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김부사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용(龍)이 지었다고 한다.

 

그뒤 김씨는 가진 고생 끝에 산중 큰 부자가 되어, 이곳에서는 김장자로 일컬어졌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큰 태풍이 불어와 대궐 같았던 집도 사랑하는 처자도 모두 하루아침에 날아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후  김장자가 살았던 곳에는 주춧돌만이 남아있었는데, 스님들이 이곳에 절을 짓고 그 이름을 김용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창한 김룡사는 일제강점기에는 경상도 지역의 대찰로  전국의 사찰을 대표하는 31개 본사 중의 하나로, 50여개의 말사를 거느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본사 지위를 김천 직지사에 넘기고, 직지사의 말사로 남아 있다.

 

김룡사의 주변에는 뒤로 운달산을 주산으로 수려한 산세가 펼쳐져 있는데, 절의 뒤로는 소나무 숲이 잘 조성되었다. 절의 전각들은 산세에 따라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서 일주문이 있고, 일주문에서 100여 걸음 오르면 본격적으로 사찰권역이 나타나는데, 사찰의 건물로는 특이하게도 솟을삼문 형식의 금강문이 나타난다.

 

이곳 금강문으로부터 청정한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금강역사가 지키는 영역이고, 사찰의 전각들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사찰의 중심 전각은 그 어느 절이건 부처님이 모셔진 건물을 가장 신성한 곳으로 그곳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의 과정마다 세워진 문을 거치는데, 김룡사 또한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는데 마지막 단계에는 2층 누각인 보제루의 밑을 통과해서 계단으로 오르면 대웅전이 있는 정방형에 가까운 핵심공간이 나타나게 계획되었다. 이 대웅전이 있는 공간이 바로 부처님이 계신 극락세계요 불국토임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불교 사찰건축의 보편적 특징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절들은 그런 보편성 속에 잘 살펴보면 각각의 절마다 나름대로 특징들이 있어서,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이절 저절 그 차이점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기자도 전국의 절들을 찾아나서는 것이고, 각각의 절에서 단 한가지라도 다른 점을 발견하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눈으로 살펴본 결과, 김룡사에서도 김룡사만의 특이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룡사는 사찰의 통과문 중 두번째 문으로 금강문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 금강문은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대문처럼 솟을대문으로 되었다는 것이며, 그리고 그 옆에는 옛날식 화장실(해우소)가 남아있었다. 금강문을 지나서 주불전과 축을 맞추기 위하여 왼쪽으로 돌아서면, 부처님의 세계를 오르는데 삿된 잡귀들의 접근을 차단하고자 갑옷으로 무장한 사천왕이 있는 사천왕문이 있는데,  사천왕문의 양편에는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사천왕이 있는데, 이 사천왕은 모두가 돌로 조성되어, 지금까지 보아온 한국의 어느 절에서도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점이었다.

 

사천왕문을 지나서 대웅전에 이르는 부처님의 세계로 오르다 보면 많은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의 중간에는 마지막 관문인 보제루가 세워져 있었다. 그 보제루 1층은 기둥만으로 세워져 있고, 기둥들의 가운데에 설치된 계단을 오르면 방정한 대웅전 구역이 나타나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제루가 있어서 대웅전은 금강문이나 천왕문에서도 보이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대웅전과 부처님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더 크게 만든 것이다.

 

보제루의 중심으로 올라서면 그 중앙에 높고 반듯한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고, 대웅전 앞으로는 정방형의 마당이 있는데, 그 마당에 이른 것은 극락세계에 이른 것임을 뜻한다. 김룡사 대웅전의 뒤로는 운달산을 주봉으로 수려한 산세가 감싸고 있으며 구릉지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가득하였다.  이곳 또한 부처님의 나라인 또 하나의 불국토임을 느끼게 하는 절이었다.

 

그런데 김룡사를 둘러보면서 한가지 큰 의문점이 생겼다. 왜 금(金)이라 써놓고 '금'이라고 읽지 않고 '김'이라고 읽는 것일까?? 그런 예는 전국의 지명에 많이 나타나 있다. 예를 들면 김해(金海), 김포(金浦), 김제(金堤), 김천(金泉), 김화(金化), 등.

기자정보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프로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