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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나들이

[화보] 호두나무가 처음 시집 온 천안 광덕사(廣德寺)

 

 

 

 

 

 

 

 

 

 

 

 

 

 

 

 

 

 

 

 

 

 

[신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천안하면 누구나 호두과자를 떠올린다. 그만큼 천안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어, 고속도로로 근처를 지날 때면 누구나 휴게소에서 호두과자 한봉지는 사먹고 오르내리지만, 그 호두나무가 처음 자리한 곳이 광덕사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

 

호두나무는 한국 토종나무가 아니고, 외국에서 전래된 나무이다. 호도(胡桃)라는 나무의 이름속에 이미 이 나무가 토착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으나, 사람들은 나무의 이름이 호두나무인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는 호두가 표준어지만 원래 호도(胡桃)란 말 그대로 '북방 오랑캐 나라의 복숭아'라는 뜻이다. 호두와 복숭아씨를 비교해서 살펴보면, 호두는 주름진 열매가 공처럼 둥글고, 복숭아씨는 타원형에 납작하다. 그러나 그 형태가 비슷하여, 비슷한 나무의 일종이기에 사람들은 본래 이땅에 없던 복숭아 종류의 나무로 오랑캐 나라에서 왔다고 호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호두나무가 한국땅에 전래된 시기는 몽골 징기스칸이 세계를 휩쓸던 고려 후기로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원나라로부터 많은 문물이 들어올 때였다. 그 때 류청신이란 사람이 충렬왕 16년 (1290) 원나라에서 호두나무 묘목과 종자를 가져와 묘목은 이곳 광덕사에 심고, 씨는 자기집에 심어 그 이후 고려에 호두나무가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광덕사 대웅전에 오르는 계단 옆에는 보화루가 있는데, 누각인 보화루 계단 옆에는 지금도 몇 백년는 되어 보이는 호두나무가 거목이 되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무 앞에는 이곳이 호두나무가 처음 심어진 곳이라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그러나 광덕사의 유래는 이 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광덕사 사적지에 따르면, 이곳에 처음 절을 세운 스님은 신라 진덕여왕 6년(652) 자장율사이다. 이후 흥덕왕 7년(832) 진산(珍山)이라는 스님이 중수하였으며, 1344년 충혜왕 복위5년 크게 중창하였다; 그런데  자장율사가 당에서 가지고 온 불사리를 이곳에 모시고 새 도량을 열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현재 전하는 자장율사 사리는 통도사를 비롯한 전국의 5대적멸보궁으로 광덕사는 들어있지 않아 그 진실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창건 이후 많은 스님들의 수많은 행적과 기록을 남겼을 것이나, 안타깝게 이후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고, 조선 초 세조10년(1464), 세조가 피부병 치료차 근처 온양온천에 왔다가 이곳 광덕사에 들러 불전에 기도하고 전지(傳旨)를 써주며 사찰에 많은 전답를 내리고, 승려들의 부역(賦役)을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

 

그 뒤 광덕사는 조선조임에도 사세가 커져 부속암자가 89개에 이르렀고, 절안에는 부처님을 모신 금당이 9개에 이르며, 절안에는 80칸에 이르는 전각을 지어 대장경을 모신 만장각(萬藏閣)도 있었다고 하며, 현재 김제 금산사 미륵전처럼 3층으로 된 천불전이 있어, 전국의 불자들이 찾고 싶은 충청일대 최고의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광덕사 또한 1592년 몰아닥친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불타버리고, 말았으며, 이후 그 이름만을 유지한 채 근근이 내려오다 최근에 이르러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전하기로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나, 본래의 웅장했을 모습은 볼 수 없어 아쉽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스님들을 통해 전해진 고려시대 금으로 직접 쓴 사경 법화경 6책이 전해져 보물 제390호로 지정되었으며, 천불전에 모셔져있던 후불탱화와 금물로 쓴 경전사경집과 세조가 전답을 내리며 써준 어첩도 남아있어, 광덕사의 찬란했던 역사는 아쉬움이 큰 가운데에도 다소나마 그 깊은 역사를 느끼게 한다.

 

광덕사를 둘러보고 새로 중건하는 전각들에 있어서 건물들의 규모와 장엄이 다소 아쉬워 보였다. 대웅전은 절의 가장 중요한 주 전각으로 절 안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게 자리해야하지만, 중건 당시 재정적 이유 때문인지 규모도 작고, 지붕의 형식도 한옥 건물 가운데 가장 단순한 맞배집으로 지어져 있었으며, 대웅전 앞 삼층석탑은 그 양식은 불국사 석가탑에 견줘 형식이나 크기도 작고 그 위치도 대웅전 앞에서 정중앙이 아닌 한쪽으로 치우쳐 자리하고 있어, 불사리를 모신 탑이라기 보다는 대웅전 앞을 꾸미는 장식탑처럼 보였다.

 

또, 얼마전 새로 세운 오층석탑은 대웅전 권역과는 별도로 천불전 가는 길목에 세워져 있어, 그 조성의의미를 알 수 없었고,  바로 옆에 조성된 지장보살상 또한 명부전과는 떨어져 따로 세워져있어 사찰배치계획상 통일성과 정제성을 느끼지 못하고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오래도록 전해 내려가야할 광덕사가 되려면, 이제부터라도 절의 전각배치에 있어 보다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전각을 짓고, 차츰 수정하고 보완해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 안의 건물과 석물은 어느 하나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안에 피어난 하나의 불국토이기 때문이다.

 

기자정보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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