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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천년 신목(神木) 은행나무 있는 양평 용문사에 가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양평 용문사는 오래된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이 나무는 수령 1100년이 넘는 나무로, 그 높이가 42m 에 이르고, 둘레길이는 14m(반지름이 4.0m정도임) 에 이른다. 지금으로부터 1100년 이전이란 800년대 후반으로 신라의 말기에 해당한다.

 

용문사 창건에 대하여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나무는 신라 경순왕의 세자였던 마의태자가 천년사직이 망하는 슬픔에 전국을 떠돌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일설에는 의상대사가 지팡이로 쓰던 것을 꽂았는데 그것이 살아나 거목이 되었다고도 한다. 의상대사의 지팡이라면 그 수령은 1300년이 넘는다.

 

이 나무가 살아오는 동안 이 땅에는 여러 차례 큰 전란이 있었다. 크게만 보아도 고려시대 거란족의 침략과 몽골의 침략이 있었고, 조선조에는 임진왜란이 있었으며, 근세에는 일제강점기 의병투쟁과 1950년 한국전쟁이 있었다. 그런 전란에 용문사 내 전각들은 불타버려 여러 차례 전각들은 중건이 되었지만, 이 은행나무는 굳게 살아서 그 광경을 다 지켜보았다. 

 

이 은행나무는 현재 사천왕문 바로 위에 있어, 천왕문이 없을 때에도  절을 지키는 천왕목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이 나무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에는 소리내어 그 변고를 미리 알렸다고 하여 신령스러운 나무로 여겨져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조선 세종 때에는 이 은행나무에 정삼품보다도 더 높은 '당상작첩'을 하사하여 신목으로의 명성을 드날렸다.

 

사지의 기록에 따르면 용문사의 창건연대는 신라 신덕왕 2년(913)으로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신라말 경순왕이 재위시 행차하여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용문사는 고려말 우왕 4년 개풍 경천사의 고려대장경을 옮겨와 봉안하기도 하였으며, 조선 세종때에는 수양대군이 모후인 소헌왕후 심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다. 이런 사찰이었지만, 대장전에 모셨던 고려대장경도, 소헌왕후의 복을 빌던 보전도, 조선 말에 이르러 나라를 되찾겠다고 일어선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하자 일본군들이 사찰내 모든 전각을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그런 후 1909년 취운스님이 요사채를 짓고 다시 중창불사를 시작하였으며, 이후 1928년 태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등을 재건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중건한 전각들도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불타버렸다. 이후 용문사를 재건한 것은 1982년부터 하나씩 중건한 것들이다. 이제는 양평군 내 가장 당당한 사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전란으로 소실되어버린 전각들과 수많은 보물들을 생각하면 마음 아프기 그지없다.

 

많은 전란 속에서도 살아남은 보물로는 경내에서 200m쯤 떨어진 언덕 위에 정지국사부도와 비가 보물제531호로 있고, 경내 1100년 수령의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그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생물로 1100년의 생을 살고 있는 신목 은행나무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1100년의 세월 속에 단 한 해도 빼지 않고, 수많은 열매를 맺어, 매년 10여가마의 은행을 내려주어 절 살림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 대접만 받는 나무가 아니라, 무수한 은혜를 베풀어 생명을 구한 신목중의 신목이 아닐 수 없다.

 

오랜 역사속에서 그 전란의 상처를 온몸으로 이겨낸 은행나무와, 무너지고 불타바린 그 자리에 또 다시 절을 지어 역사를 이어온 용문사가 다시는 깊은 상처없이 오래도록 후세에 이어지길 기원해 본다.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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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