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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나들이

[화보] 분단의 경계에 자리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금강산 자락에는 불교가 신라에 공식적으로 승인되기 이전 법흥왕 15년(528년) 고구려의 스님이었던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 위하여 세웠다건봉사가 있다.  

 

아도화상은 고구려사람이나, 그는 당시 국제혼혈아이기도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 위나라의 사신이었던 아굴마이며, 그의 어머니는 고구려여인 도령이다. 아굴마가 사신으로 고구려에 왔을 때 도령을 만나게 되었고, 아도는 태어났다. 아도라는 이름은 아버지 아굴마와 어머니 도령에서 한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아도는 태어나 아버지 없는 아이로 많은 놀림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성장한 뒤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출생비밀을 듣고, 아버지를 찾아 위나라로 찾아가 위나라 대신이었던 아버지를 만나 불교를 알게 되고 부처님의 진리에 감동하여 위나라에서 출가하여 다시 고구려로 돌아와 불교를 모르는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하기 위하여 평생을 바쳤다고 한다.

 

그 아도화상이 세운절이 건봉사라는 것이다. 역사상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의 절로 가장 유명한 절은 경북 구미에 있는 도리사이다.  아도는 도리사 근처 모례의 집에 숨어살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많은 지식을 전해주고 불교를 전하기도 하였다고 하나, 금지된 불교를 전한 죄로 붙잡혀 많은 고초도 겪었다고 한다.

 

건봉사의 처음 창건당시 이름은 원각사였다. 아도는 원각사를 창건하고 부속암자인 보리암과 반야암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200여년이 지난 후 경덕왕 17년(758년) 발징스님이 중건하고, 정신, 양순스님 등이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베풀어 10,000일 동안 염불을 계속하여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모임의 효시를 열었다. 이때 신도 1,820명이 참여하였으며 그중 120명은 옷을, 1,700명은 음식을 마련하여 염불인들을 봉양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782년 염불만일회에 참여했던 31명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극락왕생하고, 그 뒤 참여헸던 모든 사람들도 차례로 극락왕생하였다고 한다.

 

이후 신라말 도선국사가 이곳에 들러 절을 중수하였는데, 이때 절의 서쪽에 봉황형의 돌이 있다고 하여, 절의 이름을 서봉사(西鳳寺)로 부르기도 하였으며, 고려말 공민왕 7년(1358년) 나옹화상이 중건하고 현재 이름인 건봉사라 이름하였다. 이 후 세조 10년(1464년) 이곳에 이르러 건봉사를 자신의 원당으로 삼아 소원을 비는 절로 지정하였으며, 절 한쪽에 어실각을 짓고 전답도 내리고, 친필로 동참믄을 써서 하사하기도 하였다.

 

이 때부터 조선왕실의 원당이 되었고, 후대 왕인 성종은 대신들을 파견하여 선왕의 원찰인 건봉사를 살피고, 사방 10리 안의 모든 것을 건봉사 소유로 하게 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일본이 도굴해갔던 통도사 금강계단의 부처님 진신사리를 사명대사가 찾아와, 통도사의 사리들을 국내 여러곳에 나누어 보시게 되었는데, 그 중 이곳 건봉사에도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를 봉안하여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보궁사찰이 되었다.

 

건봉사는 염불만일회를 여러처례 열어,  염불만일회 사찰로 유명하다. 그 기록을 보면 758년 신라때 시작하였으며, 이후 천년이 지난 뒤인 1802년 제2회, 1851년 제3회, 1881년 제4회를 개최하였다. 이를 통하여 많은 중생들을 교화하며,  모금으로 화재등으로 불탄 절의 전각들도 증축 개축하며 건봉사를 국내 대찰로 유지하였다. 최근 다시 염불만일회를 계획하여 극락왕생과 평화통일를 기원하고 있다.

 

건봉사는 일제강점기에 들어 1911년 조선사찰령에 따라 강원도내 본사로 지정되어 믾은 절들을 거느린 본사사찰로, 금강산의 대찰이었다. 당시에 있었던 전각들은 대웅전, 관음전, 사성전, 명부전, 독성각, 산신각, 단하각, 진영각, 법종각, 봉청루, 보제루, 대지전, 동지전, 서지전, 어실각, 어향각, 동고, 낙서암, 극락전, 만일원, 보안원, 선웡, 운적암, 종무소, 불이문, 여관, 장의고, 성황당, 수침실 등 총 642칸에 이르는 전각이 있었다.

 

그러나, 오랜 역사속에 고찰의 면모를 갖추었던 건봉사는 일제강점기가 지난후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에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다. 전쟁의 불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불이문과 석조로 된 십바라밀을 상징하는 기둥 2개, 무너져 내린 능파교의 홍예석들, 그리고 통도사에 있던 것을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탑과 스님들의 승탑뿐이었다. 목조로 된 것은 4개의 기둥으로 된 불이문이 유일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가볼 수 있는 것은, 38선 이북지역이기에 광복과 더불어 북한지역에 있던 이곳이, 한국전쟁으로 치열한 전투 끝에 한국군이 탈환한 덕분이다. 그 전쟁으로 조상들이 이룩했던 귀중하고 많았던 유물들을 대부분 잃어버려 아쉽기도 하지만, 오늘 우리가 가볼 수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지금도 건봉사 경내까지는 언제나 가볼 수 있지만, 염불만일회로 깨달음을 얻고 극락세계에 왕생했다는 등공대는 반드시 군부대의 허락을 받아야만 갈 수 있다. 건봉사 경내에서 등공대까지의 거리는 1.2km 의 산길이다.

 

비록 가파른 산길이지만 건봉사를 찾는 이라면 염불만일회의 역사적 자취가 남아있는 등공대까지 오르는 것이 보다 뜻깊은 건봉사 탐방이 될 것이다. 10,000일이라면 30년이다. 30년을 하루도 빼지 않고 일념으로 염불과 기도를 한다면 그 무엇인들 이루지 못할 것인가?  등공대에 올라 유서깊은 염불만일회의 승탑을 보며, 그원력에 염원을 담아 분단된 한민족의 평화통일과 이세상에 다시는 전쟁없는 중생계가 되길 빌어본다.

 

기자정보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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