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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강화해협의 최대국방유적 광성보를 찾아서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화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국방유적이 많이 있는 곳이다. 조선의 서울인 한양으로 들어오는 한강의 길목을 지키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기에, 강화도 해안가 돌출된 곳 언덕배기에는 모두 돈대가 들어서 있어 적의 침입을 막았다.

 

그 중에도 광성보는 김포와 강화 사이를 지나는 좁은 강화해협의  돌출된 돌산이다. 광성보가 처음으로 방어시설이 갖추어진 때는 고려시대 강화로 서울을 옮긴 고려무신정부가 몽골군을 방어하기 위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별 관심없이 세월이 가고 광성보가 국방요새로 본격적인 해안진지가 된 때는 조선조 후기인 효종 9년(1658년)이다. 효종은 정나라의 볼모로 다녀온 후 북벌계획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이를 실행하기에는 국력이 뒷받침되지 못하였지만 한양이 위급시 방어기지로 강화를 요새화 하였다. 이때 광성보와 함께 많은 돈대들이 축조 되었다.

 

이렇게 세워진 광성보 안에는 광성포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는데, 광성보에서는 신미양요(1871년)때 미군과 사투를 벌였다. 당시 이곳에는 조선군 500여명과 어재연장군이 지키고 있었다. 이땨 미군과 전투에서 300여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하고, 20여명은 포로가 되어 잡혀갔고 100여명은 스스로 자결하였다고 한다. 미군의 피해는 3명전사 9명 부상이었다. 미군은 대포 몇 방으로 일본을 개항시킨 경험으로 조선도 개항시키겠다며 이곳 광성보 인근에 이르러 최신 대포로 강화도에 포격을 하였다.

 

구식 대포와  소총 그리고 칼과 활로 무장한 조선군은 대포마져 사정거리가 너무 짧아 적군에게는 피해를 주지 못하였고, 속절없이 포격과 최신 소총의 사격을 받고 죽어갔던 것이다. 그나마 미군에 피해를 준 것은 상륙하는 미군과 육박전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게 죽어간 조선군의 무덤이 광성보 안에 있고, 그 때 죽어간 이들의 무덤이 신미순의총이 있고, 이들의 공적을 기려 신미순의전적비를 세웠다.

 

이제는 국방유적으로 공원이 된 광성보를 돌아보는 것은 세계사의 흐름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하는 것이다. 신미양요 이후 프랑스군의 병인양요로 강화도에서는 또 많은 군인과 백성들이 죽어갔고, 강화도 전등사사고에 보관되었던 조선왕조실록과 수백권과 각종 행사를 자세히 기록했던 왕실의궤도 도난당하였다. 그러나 그런 피해를 보고 조선왕실이 택한 것은 쇄국정책이었다.

 

그리고 1876년에는 일본이 해안축량선 운양호를 다시 보내왔고, 무단 측량을 실시하며 조선군의 포격을 유발시켰다. 그러자 일본은 민간선박에 포격을 가한 조선정부의 행위에 대항하여, 일본해군과 군함을 보내와 조선은 결국 강제로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항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맺은 조약은 강화도조약(병자수호조약)이 되었지만, 조선은 쇄국을 주장한 흥선대원군과 개화를 주장하는 개화파의 다툼으로 갈팡질팡하는 사이, 지방의 수령들은 정신차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사리사욕의 단맛에 빠져 백성들을 수탈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 수탈속에서 풀칠하며 살던 백성들은 결국 동학농민군들이 되어 일어나게 되었고, 지방 관군의 힘으로 동학농민군을 막지 못한 조선조정은 결국 남의 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제나라 백성을 토벌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고,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을 거쳐 결국 나라를 통째로 잃어버리는 절망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힘없는 나라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고, 그곳에 사는 백성들은 남의 나라 노예가 되어간 것이다.

 

올해는 그렇게 망해버린 나라를 백성들이 평화적으로 되찾겠다고 독립을 선언하고 일어난 3.1운동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지금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당리당략에 빠져있는 정치권을 보면, 너무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정권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의 진실을 알아버린 국민들이 추운 겨울동안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워 평화적으로 촛불을 켜들어 탄핵을 이루고, 그 힘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고 외친 국민들이었다. 현 정부는 그 힘에 들어선 정부이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국회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나 정치개혁 사법개혁 민생개혁이 이루어질 것인지 그저 초조한 마음뿐이다. 또 다시 국민이 일어서기 전에 썩은 정치 확실히 도려내는 적폐청산를 바란다면 아직도 이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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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