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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전란과 화마를 헤치고 남겨진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전남 구례는 지리산의 남쪽에 있다. 지리산에는 많은 옛절들이 있으며, 그 중 가장 큰 절은 화엄사다. 그 화엄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또 하나의 옛절로 연곡사가 있다. 연곡사는 신라시대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이땅에 불국토를 이룩하고자 창건한 절로 화엄사와 함께 연곡사가 있다.

 

연곡사는 신라말부터 고려초까지 선사들의 수행처로 이름 높은 고승들이 많이 있어, 그 자취가 지금도 남아있다. 지금 남은 자취는 연곡사의 본전인 대적광전 뒷편 오솔길에 있는 3기의 승탑이 남아 이를 증거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의 몸돌을 누군가 파괴하여 없애버려,  지금은 고승의 행적을 알 수가 없으며 사리를 모신 승탑과 승탑비의 이수와 귀부만이 남아있다.  천만 다행스럽게 승탑과 이수 귀부는 손상되지 않고 거의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연곡사는 선가의 수도도량으로 이름이 높아 전각들이 많이 있었고 임진왜란 때까지는 온전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임진왜란으로 전국의 절과 궁궐들이 불에 탈때 이곳 연곡사도 일본군의 방화로 불타버렸다. 그런 연곡사는 1600년도 중반 임진왜란 뒤에 태능스님이 중건하였다. 이후 명맥을 어렵게 이어오던 연곡사는 주변에 좋은 밤나무가 많아 1745년 왕실의 신주목을 만들어 납품하는 절로 뽑혔다.

 

그러던 절이 조선 말 의병장 고광순이 1907년 의병을 일으켜 이곳 연곡사에 집결하자, 일본군의 토벌작전으로 연곳사에 모여들었던 의병이 일본군에 의하여 모두 죽임을 당하고, 절은 방화로 어렵게 중건했던 전각들이 또다시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에 또 다시 중창하였다. 끈질긴 화마와의 악연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렵게 광복의 기쁨을 누릴 겨를도 없이 한국전쟁의 발발로, 지리산 피아골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또 다시 불타버리는 아픔을 겪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화와 전쟁의 아픔 속에서도 천만 다행인 것은 선사로 추앙받던 고승들을 모셨던 승탑들이 온전하고, 중요한 행적을 기록한 비석은 없어졌지만 이수와 귀부 만이라도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큰 상처의 아픔속에서도 소중한 유물로 남았다.

 

그렇게 남은 스님들의 유적은 동승탑은 국보 제53호, 북승탑은 국보제54호,  현각선사탑비는 보물 제152호, 동승탑비는 보물 제153호, 소요대사탑은 보물 제154호, 삼층석탑은 보물 제15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전란이 있을 때마다,불에 타는 화를 당하여, 비록 건물들은 새것이지만, 그나마 옛 선사들의 자취가 잘 남아있는 연곡사는 불교도 뿐 아니라, 한민족의 옛 문화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꼭 찾아보아야 할 옛절이었다.

 

기자정보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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