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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고 떠나야만 했던 이민 생활 이야기

한국국학진흥원, “이민자” 주제로 웹진 《담(談)》 6월호 펴내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은 “이민자”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6월호를 펴냈다. 현충일과 6.25 전쟁일이 있는 6월을 맞이하여, 망국의 한을 품고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야만 했던 우리 선현들의 이민 생활 이야기에서부터 이 시대의 이민자 이야기까지 이민에 대한 주제를 폭넓게 다루었다.

 

이민(移民)은 크게는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작게는 지역을 옮겨 사는 것을 의미하며, 이민자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혹은 상황에 따라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른 나라에 이주하여 산다는 것은 전쟁의 결과로 포로로 잡혀가거나 불의의 사고가 아니고는 자발적인 이민을 선택하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전쟁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다 한들 환영은커녕 오히려 조롱을 받았건만,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원했다. 귀소 본능은 민족의 뿌리 깊은 정서였다. 심지어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이주하는 일조차 우리 선조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향에서 태어나 문전옥답을 지키며 고향에서 평생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었다.

 

더욱이 전란이 잦았고 변화가 많았던 조선 초기와는 달리 이른바 태평성대가 이어지자 조선 사람들에게 있어서 평화는 당연한 것이 되었고, 전쟁준비란 쓸데없는 낭비에 불과하였다. 바다 건너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였다는 소문이 스멀스멀 전해져 와도, 그것을 냉정하게 예측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1592년 일본이 수많은 병선과 군대를 앞장세워 바다를 건너와 조선을 침략하고 유린하게 되자,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백성들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적을 피해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그 피난민들의 이야기는 오희문의 일기인 《쇄미록》에 남겨져 있다. 피난민들은 배고픔에 처자식을 길에 버렸고, 부잣집도 하루아침에 굶주린 피난객이 되었다.

 

안동을 떠나 간도에서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던

독립운동가 백하 김대락이 일기에 남긴 이민의 기록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차례로 겪으면서도 조선은 변화하지 못했고, 강한 쇄국정책으로 일관하였으나 결국 1876년 2월 강화도 조약을 일본과 맺음으로써 국운은 점차 기울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조선의 백성들은 재해와 흉년으로 인해 고향을 버리고 압록강을 넘어 간도로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1910년 일제 식민지 통치가 시작된 이후에는 이민자들은 급속히 증가하여 1910년에는 22만 명이 되었고 1930년에는 60만 명이 이주하였다.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한 민족성을 가진 우리 선조들이 집안의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대대손손 살아온 정든 집을 버리고 일가족이 압록강 저편으로 이주하는 디아스포라가 벌어진 것이다.

 

안동 독립운동의 주역이자 간도의 항일투쟁에서도 선구자로 꼽히는 김대락의 《백하일기(白下日記)》에는 그의 일가가 만주로 길을 떠났던 1911년으로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13년까지의 이민 생활이 기록되어 있다.

 

백하 김대락(1845~1914)은 석주 이상룡(1858~1932)의 아내인 김우락의 큰 오빠이다. 본래 유가적 선비의 삶을 살았고, 그의 집안은 경제력과 학문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망국의 그림자가 깊이 드리워진 1909년 독립운동을 결심하였으며,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1911년에는 석주 이상룡 가문과 함께 일가친척이 간도로 이주하였다. 간도에 도착해서는 이주민의 경제적 문제와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흥강습소 및 경학사를 설립하고 운영하고자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간도에서 겪어야 했던 경험은 혹독했다. 빼앗긴 나라에서 미래를 찾을 수 없었기에 간도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자 먼 길을 떠나왔지만, 정작 그들을 좌절케 하는 것은 이민자로서 겪어야 하는 삶의 처절함이었다. 조선에서는 부족한 것 없이 갑부로 살았던 그들이었지만 집 지을 돈이 없을 정도로 쇠락하였으며, 세 들어 사는 집에서 쫓겨나기가 일쑤였다.

 

웹진 《담》 6월호에 실린 소설가 손서은의 <조선인 디아스포라>는 백하 김대락과 손자인 김창로를 주인공으로 하여 당시 간도로 간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백하일기에 기록된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창작물이다. 만화가 정용연은 <이달의 일기>에서 웹툰으로 백하일기를 소개하였다.

 

 

평화 없는 세상에서 겪어야 할 고통스러운 삶의 이야기

그 시대를 유랑했던 이민자들의 기록들이 새로운 창작물 되기를

 

평화를 잃어버린 세상, 나라를 잃어버린 백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의 이야기들은 선현들의 일기 속 생생한 기록으로 남겨져 있으며, ‘스토리테마파크’에서 창작 소재들로 찾아볼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 시대 일기류 244권을 기반으로 4,872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매월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여 웹진 《담》을 펴내고 있는데, 전통적인 일기류를 소재로 하지만 주제의 선정은 지금의 일상과 늘 맞닿아 있다.

 

나라 잃은 슬픔을 딛고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타국을 떠도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난민들의 삶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에 들어왔을 때 많은 논란이 있었고 20만 명이 넘는 난민반대청원이 있었다. 백여 년 전에 망국의 백성으로 타국을 떠돌던 이민자 신세였던 우리 국민이 토착민의 입장에서 서게 된 것이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피터(김용진)는 “코스모폴리탄, 글로벌리스트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지점 바로 그 이면에 난민이 있고 결국은 고향을 떠나 디아스포라가 되는 삶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면서, “평화 없는 시기를 살아가며 그 시대를 유랑했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에도 전 세계에서 반복되는 고민의 역사들을 담아내고 전 세계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창작콘텐츠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