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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조선의 마지막 시서화삼절 이정직의 세계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선비, 전북 서화계를 이끌다-석정 이정직”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격동의 시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을 살았던 전북 지역의 선비,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는 4살 때 천자문 수십 자를 하루 만에 익혔고, 5살 때 엽전을 종이에 똑같이 옮겨 그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9살에 《통감(通鑑)》을 모두 읽었으며, 어려서부터 남달랐던 재능을 타고났던 그는 남다른 성품까지 겸비하게 되었으니, 동네에 다투는 이들이 있으면 부드러운 말로 달래어 감복했고, 아픈 사람이 있다고 들으면 반드시 가서 돌봐주었다. 한편, 계단에 신발이 가득할 정도로 제자가 되고자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학문과 예술로 후학을 기르는 한편,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선비였던 것이다.

 

천문, 지리, 의학, 수학, 서화 등 두루두루 통달한 유학자, ‘통유(通儒)’라 부를 수 있는 조선시대 선비는 많지 않다. 이정직에 대해 이번 전시는 통유로서의 면모를 조명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전북을 대표하는 융합형 인재, 이정직이 전통을 계승하면서 무엇을 고민했고, 지향하며 살았는지 살펴보면서, 그의 예술 활동을 통해 과거의 이정직과 소통해보자.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되었다. 프롤로그에서는 이정직이 다방면에 능통했던 통유로서의 면모를 먼저 소개한다. 황현은 이정직에 대해 “모르는 바 없고, 통달하지 못한 바가 없는, 향후 몇 백 년 동안 없을 인재”라고 하였다. 풍수, 천문, 의약, 음악 등 문장과 서화 외에도 능통했던 그의 인재상을 볼 수 있는 자료를 선보인다.

 

1부에서는, 조선에서 근대로, 전통을 배우고 끊임없이 수련하여 후학들에게 전했던, 법첩 연구의 대가로서의 이정직을 조명한다. 글씨뿐 아니라, 그림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수련 과정을 거쳤다. 추사(秋史) 김정희 (金正喜, 1786~1856)를 배워 썼던 <완당재현첩阮堂再現帖>에서부터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 그림을 보고 배운 <오원재현첩吾園再現帖> 등 유명 서화가의 작품을 통해 배우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중국 서예의 맥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단순히 모양을 베껴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 및 조선 명필가의 글씨를 수없이 베껴 쓰면서 골자를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정직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대가들의 필적을 보는 또 다른 재미와 함께, 끊임없이 서체, 화풍 연구에 매진했던 이정직의 수련 과정을 볼 수 있다.

 

 

 

2부에서는, 조선의 ‘마지막 시서화삼절(詩書畫三絶)’로서 일구어간 회화 작품을 살펴본다. 사군자와 괴석(怪石) 등 그가 주력했던 회화의 소재를 통해 필력과 상징성을 추구한 깊은 내공을 지닌 문인화 세계를 보게 된다. 이정직은 실제 매화보다 매화 그림이 훨씬 좋다고 한 바 있다. 붓끝으로 재탄생한 매화를 통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지조와 절개, 선비정신 바로 그것이다.

 

3부에서는, 이정직을 계승한 후학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송기면(宋基冕, 1882∼1956), 조주승(趙周昇, 1854~1935) 등의 활동은 전북 서화계를 풍요롭게 하였으며 이 지역이 19세기 후반 이후 전북은 근현대 서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전북은 언제나 예향이라고 불렸으며 그만큼 예술 문화가 발전하였다. 바로 그 시작점에 이정직이 있으며, 근대 서화에서 이정직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특히 이정직이 호남 서단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고,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인사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국적으로 성장하였다. 전통과 근대 사이의 변화 접경의 한가운데, 선비 이정직이 있었다. 이정직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수많은 인재들은 김제로 모였다. 스승의 모습 그대로 학문과 예술에 매진한 인재들은 전북에서 근대를 열었다. 이러한 문예 활동 양상을 선보인다.

 

이번 특별전과 연계하여 두 차례의 연계 강연회를 마련하였다.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도우며 다양하고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자세한 정보는 누리집 http://jeonju.museum.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