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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가야불교 초조 장유화상의 장유사를 찾아서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불교전래는 언제부터일까?

현재 한국의 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불교전래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 순도스님으로 공인하고 있으며, 이를 이어 백제 침류 1년(384년} 인도의 스님 마라난타로 인정하고 있다. 한편 신라는 그보다 늦은 400년 초기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신라 선산지역에 처음 전하였다고 하나, 공인받지 못하고 527년  법흥왕 때에 이르러 이차돈의 순교이후로 공인되었다.

 

그러나 기원 전후로 한반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외에 가야가 동남쪽의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가야연맹의 최강국이었던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과 깊은 관계가 있는 불교전래가 전해지고 있다.

 

인도의 공주였던 허황옥은 기원 후 45년 경 자신의 오빠와 함께 김해에 왔다고 하는데, 그는 이미 불교의 수행자였다. 보옥선인으로도 불렸던 허황옥의 오빠 장유화상은 가야에 도착하여 불교를 전하고, 김수로왕과 허황옥 사이에 태어난 왕자 가운데 7명의 왕자를 출가시켜 성불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허황옥이 낳은 10명의 왕자 가운데 큰아들은 거둥왕이 되었고, 2,3째 아들은 허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나머지 7왕자는 불교에 귀의하여 가야불교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렇게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출가하여 도를 이룬 절은 하동의 칠불사로 전하고 있으며, 일곱 왕자를 출가시킨 장유화상은 김해지역에 여러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가 창건한 절로는 김해에 장유사, 은하사, 동림사가 있다. 그런데 장유화상에 대한 이야기는 아쉽게도 삼국유사에도 빠져 있어 그 사실여부가 쉽게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옛날부터 전해오는 설화속에 여러 모습으로 전하고 있으며, 김해 은하사 취운루 중수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기록이 처음 쓰여진대로 전하지 않고, 전란으로 불탄 뒤 다시 쓰였기에 사람들은 의심을 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장유화상은 그렇게 불교를 전하였고, 김수로왕의 7왕자를 출가시켜 성불하게도 하였으며, 자신의 최후를 김해 장유사에 승탑으로 남겼다. 그런데 그의 승탑 또한 전란으로 불탔던 것을 후대에 다시 세웠다고 하여, 역사학자들은 믿으려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재 장유사에 있는 장유화상의 사리탑 설명문에 따르면, 장유화상의 사리탑은 가야국 제8대왕인 질지왕이 장유암(현재 장유사)를 재건하고 세운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 장유화상의 사리탑은 1,500여년의 오랜 세월 속에 전란으로 불타고 유물들도 없어졌는데, 이후 고려말 또는 조선초기에 옛 흔적을 찾아 다시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유사를 비롯한 역사책에는 여러 곳에 가야를 세운 김수로왕과 그의 왕비인 하황옥에 대한 기록이 있었지만, 얼마전 까지도 이들이 실제 인물이었는지 의심하였고, 모든 학자들이 이를 역사적 사실로는 인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만큼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제강점기에 왜곡된 식민사학의 범위에서 벋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다 최근 자신이 김해김씨이며 김수로왕을 시조로 모신 고고학자 김병모 교수가 자신의 뿌리가 되는 허황옥의 역사적 사실을 수십년 추적으로 증명함으로써 김수로왕도 허황옥도 실제 인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제 그 허황윽의 오빠인 장유화상도 그 흔적이 어렴풋하지만 여기 저기 파편처럼 남아있는 자료들이 발굴되어 맞추어진다면 새롭게 조명될 수 있지 않은까 기대해본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 또는 흐릿한 기록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각으로 늘 새롭게 볼 때에만 그 진실을 한꺼풀씩 밝혀줄 수 있는 현재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김해 불모산 장유사를 돌아보며 파편처럼 남아있는 장유화상과 김수로왕의 일곱왕자의 이야기는 언제쯤 역사의 사실로 밝혀질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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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