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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화려하게 문화를 꽃피웠던 가야를 찾아서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한국 동남쪽 해안에서 문화의 꽃을 피운 가야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가야는 그 지배층이 북방의 유목민족이며 그 초기에 남방의 해양민족과 흉합된 문화를 꽃피웠다. 현재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가야는 서력기원 후 42년 북방 유목민인 김수로왕을 비롯한 6명의 수장들이 한반도 동남부 해안가를 중심으로 국가를 세웠다. 이후 6년 뒤 인도의 해양문화를 가지고 온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하여 대륙문화와 해양문화가 결합한 복합문화를 꽃피웠다.

 

가야는 당시로서는 최첨단무기인 철기를 제작하는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어, 노천철광석을 가공하여 각종 철제무기를 만들었고, 전투에서 사람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철갑옷과 투구, 철재 비늘갑옷 그리고 말에도 갑옷과 투구 등 다양한 철기문화를 꽃피웠다. 가야는 철을 가공하여 덩어리 또는 납작한 철정을 만들어 이를 수출하였다.

 

또, 생활용품으로는 각종 토기를 만들어 썼는데, 이는 가야지역에서 발굴된 귀족 왕족의 무덤안에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 때 만든 토기로는 그릇의 받침이 매우 크고 길어 특이하다. 가야의 철기는 신라 백제를 비롯한 일본(왜)에 중요 무역품으로 거래가 되었으며, 그 중에는 중국의 고대 화폐와 유리그릇도 출토된 것으로 보아 배를 이용한 국제무역도 매우 활발하게 한 것으로 판단된다.

 

가야는 기원후 42년부터 시작하여 562년 신라에 병합됨으로 없어졌지만 그 생존기간이 500년이 넘는 매우 긴 기간이었으며, 신라에 귀화한 가야인으로 신라의 통일기 대장군으로 활약한 김유신장군이 있다. 한국인의 성씨로 가장 많은 인구수를 보유한 성씨는 김씨인데, 그 중에서도 김수로왕을 시조로 삼는 김해김씨가 가장 많다. 그리고 김해허씨 또한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면서도, 그의 왕비인 허황옥의 성씨를 이어받은 김해허씨가 있다. 지금도 김해김씨와 김해허씨는 서로 동본이성으로 결혼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한국의 고대사를 논할 때, 주로 고구려 백제 신라만을 고대국가로 생각하나, 남부지방에 가야가 562년까지 존재하였고, 북부 만주지역에는 북부여가 494년 고구려 문자왕 때까지 존재하였기에 이 두나라를 합한다면 한국의 고대국가는 3국이 아닌 5국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고구려와 백제는 바로 부여에서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 5개국가가 고조선의 후예로 한민족의 주류를 이루어 왔음을 부인한다면 한민족의 역사는 단군이 세운 기원전 2333을 처음으로 볼 수 없다. 고대 한반도 동남쪽에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운 가야문물전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우리민족의 기원을 생각해 본다.

 

이번 가야본전은 특별전시실에서 하고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 본관 1층 고대관에는 또다른 가야관이 별도로 있음으로, 이도 함께 돌아보는 것이 좋다. 위 사진은 가야본전과 가야관에서 담은 사진들이 섞여있다.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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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