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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북한산 의상봉 아래 흰눈에 싸인 국녕사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북한산은 서울의 서북쪽에 우뚝 솟아 있으면서 서울을 북쪽에서 불어로는 찬바람으로부터 막아주고 시각적으로 서울을 감싸고 있어 풍수적으로 서울지역을 명당으로 만들어주는 산이다. 북한산 줄기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볼때 인왕산이 뒤에서 중심을 잡고, 좌우로 뻗어내려 왼쪽으로 낙산과 오른쪽으로는 안산으로 감싸고 있는데, 그 안쪽의 명당터에 경복궁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그 뒤로 북한산이 솟아있으며, 북한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서울을 감싸고 있어, 서울을 큰 명당도시로 만들고 있는것이다. 그런 서울의 조산인 북한산은 산 자체가 크고 아름다운 바위들이 많이 있고, 높은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사계절 경치도 아름다운 곳이다. 뿐만아니라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자연적으로 국방의 요새가 되어 삼국시대에도 산성이 있었으며, 병자호란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북한산성을 축성하여 국난시에는 왕이 멀리 강화도로 가지 않고, 바로 북한산성 내 행궁으로 피하기 위하여 산성 안에는 왕의 임시 정무소인 행궁도 지었다.

 

그런 북한산에는 삼국시대부터 많은 절이 있는데, 숙종이 북한산성을 축성할 때 절의 스님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또한 성이 완성된 뒤에는 산성을 보수하고 지키는데 오랫동안 스님들이 동원되었다. 조선시대는 불교를 탄압하면서도 출가를 허락받지 못한 스님들이 국법을 어긴채 승려가 된 사실을 묵인하면서 무상 노역으로 매우 잘 써먹었다. 그런 이유로 억불의 조선시대에도 북한산성 주면에는 많은 절들이 유지될 수 있기도 하였다.

 

그 많은 북한산 주변의 절들 중에는 큰절들만 따져보아도 중흥사 진관사 삼천사 승가사 문수사 노적사 원각사 태고사 원효사 부용사 등등 유서깊은 절이 많이 있는데, 오늘은 그 중에 국녕사를 돌아보았다.

 

국녕사는 북한산의 서쪽에 험한 산세에 높이 솟은 의상봉 아래 북쪽경사면에 있는데, 이곳은 신라시대 의상스님께서 기도하였던 터로 전해지는 절터에 자리한 절이다. 그런 국녕사는 의상스님 이후로 수도 정진한 많은 고승들이 거쳐갔는데, 그 중에는 임진왜란 당시 승군 대장으로 이름이 높은 사명당대사도 수도했다. 사명당은 국녕사에서 기도를 마친 후 말하기를 "국녕사가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국녕사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말을 남기고 국녕사를 호국기도도량 승병양성도량으로 크게 중창하였다.

 

그렇게 국녕사가 중창 되어 86칸의 건물을 갖춘 큰 절이 되었으며, 이후로 병자호란을 겪은 뒤 한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면서 방어하기 쉬운 이곳에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이 축조되면서, 축성당시 그 책임을 맡았던 당시 팔도 도총섭인 성능스님과 청휘스님 등이 산성축조와 함께 국녕사의 부속 건물들을 중창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이 기울고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1925년 대홍수 때 북한산성 내 행궁을 비롯한 산내 많은 절들과 함께 국녕사도 소실된 이래 그 이름만 남긴채 땅속에 묻히게 되었다.

 

대 홍수 이후 이름만 남았던 이곳 주변에서 최근 고려마애불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전하는 이야기와 문헌기록과 현장의 건물 유적 등을 발굴조사 한 결과, 국녕사 절터를 확인하여 1998년 능인선원을 창건한 지광스님이 의상대사와 사명당의 뜻을 이어가고자 복원불사의 원력을 세운 뒤, 각고의 노력으로 하나 하나 건물과 청동불상을 세워 오늘의 국녕사가 되었다.

 

국녕사는 한민족의 정신적 기도도량으로 가꾸고자하는 큰 뜻으로 2004년 청동대불을 세워 중창불사를 마무리 하였으며, 이로써 의상대사의 원력을 다시 이어가는 뜻깊은 절로 다시 태어났다.

 

국녕사 앞에 이르면, 최근에 세운 청동대불이 찾는 사람을 반긴다. 청동대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으로 조성하였으나, 부처님이 합장한 모습으로는 국내 유일한 모습이다. 합장한 부처님의 모습은 근엄함 보다는 마치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듯한 친근감을 느낀다. 대불을 지나, 108계단을 오르면  대웅전 앞에 이르게 되며, 대웅전 앞 마당에서는 건너편 북한산의 모습이 펼쳐진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만경대 노적봉 염초봉 등 높고 험한 바위산들이 웅장하게 펼쳐져 언듯 깊은 설악산에 들어온 듯 착각을 느끼게도 한다. 건너편에는 노적봉 래 자리하고 있는 노적사도 아스라이 보인다.

 

오늘은 천년고찰 북한산 의상봉에 자리한 국녕사에도 오랫만에 눈이 내려 눈꽃나라에 온 듯 새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눈덮인 산길을 오르며 서산대사의 경구가 생각났다. "눈덮인 산길을 가는 사람은 그 발걸음을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네, 지금 걷는 그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한걸음 한걸음 작은 일이지만, 그것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는 가르침은 작은 일이지만 결코 소홀히 하지 말라는 깊은 뜻이 들어있는 말이다. 이는 꼭 수행하는 스님들만의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이 다른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미칠 영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결코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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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