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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우리 겨레의 소나무, 재선충에 쓰러진다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4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나무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나무는 소나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의 산과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 서울 도심의 가로수도 소나무가 많아졌다. 소나무는 대표적인 침엽수로서 잎이 뾰족한데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산에서 볼 수 있는 잎이 뾰족한 침엽수로서 전나무, 소나무,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등이 있다. 이들 4가지 침엽수를 구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뭉쳐나는 잎의 수를 세는 것이다. 필자는 “1전 2송 3리 5잣”이라고 외우는데, 전나무는 잎이 하나이고, 소나무는 잎이 2개로 갈라져 있고, 리기다소나무는 3개로, 잣나무는 잎이 5개로 갈라져 있다.

 

솔방울, 솔잎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어로 소나무는 원래 ‘솔’로 불리었는데, 솔나무 또는 소오리나무라고도 한다. 소나무란 말은 솔+나무가 합성될 때에 ㄹ이 탈락되어 소나무가 되었다. ‘솔’의 뜻은 나무 중에 우두머리란 뜻인 수리에서 시작되어 이후 수리->술->솔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소나무는 한자로는 송(松)이다. 松의 어원을 살펴보면, 중국의 진시황이 말을 타고 가던 중에 비를 만나 잠시 피신한 장소가 소나무 밑이었다. 그래서 진시황이 “나무(木)의 공(公)을 생각한다.”라고 하여 소나무를 松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소나무는 황제를 위한 나무였다. 중국에서 소나무는 황제에게 걸맞은 나무라고 해서 황제의 능 주위를 송림으로 둘렀다. 이러한 풍습은 우리나라에 전래하여 왕릉 주변에는 송림을 조성하였다.

 

생태학적으로 보면 소나무는 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며 따뜻한 기후와 적당한 햇빛을 좋아한다. 나무 높이는 35m까지도 자란다. 소나무의 뿌리와 잎에는 페놀류의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타감물질이라는 천연 제초제가 들어있어서 진달래와 철쭉 말고는 소나무 숲에서 함께 자랄 수 있는 식물이 거의 없다. 심지어 자신의 동족도 타감물질에 중독되기 때문에 소나무 숲에서는 소나무 묘목조차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선조는 소나무를 다양한 용도로 썼다.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고, 태어난 아기를 위해 솔가지를 매단 금줄을 쳤다. 소나무 장작불로 밥을 해 먹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방을 따뜻하게 하였다. 소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솔잎으로 송편을 해 먹었으며, 솔잎주와 송화주, 송순주를 빚어 술로 마셨다. 송홧가루로는 차나 다식을 만들어 먹고 솔방울은 기름을 많이 머금었기 때문에 불쏘시게로 사용하였다.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은 귀한 약제로 쓰였고, 소나무 숲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은 좋은 먹거리였다. 심지어 끈적끈적한 송진까지 한약재로 사용하였다. 옛날 보릿고개 무렵에 가난한 사람들은 솔잎이나 소나무 껍질을 먹기도 했다. 소나무 껍질에는 섬유질과 송진이 있어서 소나무 껍질을 먹으면 뱃속에서 소화되지 않고 굳어서 변비나 치열에 걸리기 쉽다. 그래서 나온 말이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소나무를 귀히 여기고 보호하였다. 신라의 화랑도에 의한 식송(植松)은 조림 역사의 효시라고 보고 있다. 고려시대에 소나무는 귀중한 임산자원으로 인정되어 보호되었고 조선시대에 내려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기록을 보면 태종 떄인 1411년에 서울 남산에 소나무를 심기 위해서 장정 3,000명을 동원하였으며 20일에 걸쳐 작업이 되었다.

 

 

세종 떄인 1424년에는 제사 업무를 맡은 예조에서 공문을 내려 모든 제단 주변에는 소나무를 심도록 지시한 적도 있다. 정조 떄인 1788년에는 소나무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하여 『송금절목(松禁節目)』이라는 규정집이 만들어졌다. 근래에는 2005년 11월 11일 산림청과 문화재청은 금강송이 대량으로 자생하는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 현지에서 향후 150년 동안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함부로 벌채할 수 없도록 하는 `금강송 보호림 업무 협약식'을 열고 이곳의 소나무를 특별 관리하기로 했다.

 

우리 겨레의 이러한 소나무 사랑은 노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애국가 제2절에서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고 표현하여 소나무의 푸르름을 칭찬하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즐겨 불렀던 선구자 노래의 첫 구절은 “일송정 푸른 솔은”이라고 시작하는데, 소나무의 변함 없는 기개를 칭찬하고 있다. 이처럼 귀하게 여겼던 소나무가 1980년대부터 소나무재선충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다니 걱정이 된다.

 

재선충은 수억 년 전부터 식물, 동물, 토양 등에 기생해 온 실처럼 가느다란 기생충인 선충의 일종이다. 재선충의 크기는 0.6~1mm 정도로 육안으로 식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작다. 스스로 이동이 불가능한 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를 매개체로 하여 다른 소나무로 이동한다. 재선충이 소나무에 침입하면 개체수가 엄청나게 불어나면서 물관을 막아 영양분의 공급을 막아 소나무는 죽게 된다.

 

재선충은 빠른 속도로 증식한다. 한 마리의 재선충은 5일 만에 다 자라서 성충이 되고 3주일 만에 20만 마리로 증식한다니 매우 무서운 녀석이다. 소나무 재선충이 발생하면 치료할 방법이 없다. 소나무재선충은 소나무 에이즈라고도 부르는데, 일단 감염되면 치료약이 없어서 100% 죽는다.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되면 6일째부터 잎이 아래로 처지고, 20일이 되면 잎이 시들기 시작하여 30일 뒤 잎이 붉은색으로 변하며 말라 죽는다. 재선충이 발생하면 감염된 소나무 주변에 있는 반경 200m 내의 소나무를 모두 베어내야 한다. 벌채한 나무는 태우거나 직경 2.5cm 미만 크기로 파쇄하여 톱밥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무뿌리에도 재선충이 남아 있으므로 그루터기에 약제를 뿌린 후 비닐로 덮어 박멸시켜야 한다.

 

재선충은 1900년대 초에 미국의 루이지애나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그곳의 자생 소나무들은 저항력이 있어서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아시아와 유럽의 소나무들은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 대만의 유구송은 거의 전멸을 했고, 일본의 경우 소나무 면적이 전체 숲의 7%에서 3%로 줄었다고 한다.

 

중국도 재선충으로 많은 소나무가 피해를 보았지만, 유명한 관광지인 황산은 지켜냈다. 중국 당국은 황산 인근 70km 지점에 재선충이 발발하자 황산 풍경구 주변 폭 4km, 길이 100km 지역의 소나무를 모두 베어내는 극약 처방을 내려 이른바 무송벨트를 만들었다. 솔수염하늘소는 4km 이상을 이동하지 못하는 약점을 이용한 산림보호 방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부산 금정산 금강공원에 일본원숭이를 들여올 때 사육상자 송판을 통하여 전해졌다고 한다. 목재로 쓴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후 재선충은 서서히 북상하더니, 구미 포항을 거쳐 강릉은 물론 2014년에는 서울 근교에서도 재선충이 발생하였다. 산림청에서는 2005년에 제정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특별법’에 근거하여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발견하여 처음 신고하거나 재선충병 감염목을 무단으로 이동시킨 사실을 신고하면 많게는 200만 원까지 포상금을 주고 있다.

 

재선충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520만 그루의 소나무가 피해를 보았으며 완전한 박멸에는 실패하였다. 방제 예산도 엄청나서 재선충이 국내에 상륙한 1988년 이후 30년 동안 1조 3000억 원이 투입되었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천적을 이용한 재선충 방제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데, 2016년에 가시고치벌이 솔수염하늘소의 애벌레를 공격하는 것을 확인하고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2020년부터 경남 김해시에서는 정보무늬(QR코드)를 활용하여 현장에서 입력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고사목에 대한 업무별 이력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사망자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인간과 바이러스와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이면에서, 소나무를 지키기 위한 인간과 재선충과의 싸움 역시 치열하게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