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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기후위기는 ‘공유지 비극’이 빚은 사례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44] 코로나보다 위험한 기후 위기 (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21세기 지구촌의 국가들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환경 문제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다. 기후 위기는 ‘공유지의 비극’ (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경제학적인 원리가 적용되는 좋은 사례다. 1833년 영국의 경제학자 로이드(W. F. Lloyd)는 목장을 예로 들어 공유지의 비극을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한 마을이 비옥한 풀밭을 공유하고 있는데 10명의 농부는 각각 10마리의 소를 풀밭에 방목하고 있었다. 100마리의 소들은 충분히 풀을 먹고 잘 자랄 수 있었다. 어느 날 농부1은 소를 한 마리 더 기르면 이익이 증가한다는 것을 알고, 소 한 마리를 추가로 방목했다. 이제 소는 101마리가 되어 한 마리가 먹을 수 있는 풀의 양이 조금 줄었다.

 

그러자 농부1은 한 마리를 더 추가하면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모두에게 분배되는 손해보다 크다고 생각하여 한 마리를 더 추가하였다. 그러자 농부2도 같은 생각에서 소를 추가하고, 이어서 10명의 농부 모두 소를 계속해서 추가했다. 시간이 지나자 풀밭은 황폐해졌고 농부들은 더는 소를 기를 수가 없는 비극을 맞게 되었다.

 

 

농부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했지만, 목초지는 황폐해지고 공동체는 파멸되었다. 이러한 비극의 원인은 무엇일까? 목초지가 공유지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목초지에 소를 방목할 때에 돈을 받았더라면 이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방목이 공짜였기 때문에, 곧 목초지가 공유지였기 때문에 농부들은 소를 계속해서 추가해 나간 것이다. 이러한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공유지를 사유지로 바꾸어 소를 추가할 때에 돈을 받으면 된다.

 

공유지의 비극이 잘 적용되는 다른 예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업이다. 바다의 물고기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으므로 어족은 공유 자원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어부는 바다로 나가서 고기를 최대한으로 잡는다. 모든 어부가 고기를 제한 없이 잡다 보면 머지않아 어족은 고갈되고 어업은 붕괴한다. 산림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숲에 주인이 없고 누구나 나무를 베어갈 수 있다고 하면, 얼마 가지 않아 숲에서 나무는 사라질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이익은 나에게, 손해는 모두에게”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합리적인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1968년에 미국의 생태학자 하딘(Garrett Hardin)은 공유지의 비극 이론을 환경문제에 적용한 논문을 《Science》지에 발표했다. 목초지의 예에서는 공유하는 풀밭에 소를 추가하여 문제가 발생했는데, 환경 오염은 공유지인 강이나 대기 또는 바다에 해로운 물질을 투입하여 발생하는 문제라고 하딘은 지적하였다. 강과 대기 그리고 바다의 이용에 대해서 비용을 물리지 않으면 공유지는 남용되고 공유지의 비극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하딘 주장의 핵심이다.

 

수질오염을 예로 들어보자. 시골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이 있다. 각 가정에서 쌀 씻은 물, 설거지한 물, 세탁한 물을 내보내면 도랑을 통하여 하천으로 흘러든다. 마을에 가구 수가 많지 않을 때는 오염물질이 하천에 들어와도 흐르는 물에 희석되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장이 마을에 들어와서 다량의 폐수를 방류하면 수질오염이 나타난다. 물에서 냄새가 나고 물고기가 죽고, 아랫마을에서 상수도로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국가가 개입하여야 한다. 수질환경보전법을 만들어 공장주인이 비용을 들여 폐수를 처리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각 가정에서는 정화조를 만들어 하수를 처리한 뒤에 방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수질오염 물질을 배출하기 위하여 하천을 이용하는 것은 더는 공짜가 아니며 이를 위반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대기오염도 마찬가지이다. 대기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대기는 공유지다. 공장에서 소량의 배기가스를 대기로 배출하면 희석되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화력발전소 등에서 대량으로 독성 가스를 발생시켜 대기를 오염시키면 주민과 주변 생태계에 피해를 주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오염물질을 각 공장에서 처리한 뒤 배출하도록 대기환경 기준을 만들어서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대기오염은 수질오염 달리 그 피해가 주변 사람은 물론 국경을 넘어서 이웃 나라에도 미친다는 점이 독특하다. 대기는 바람을 따라 순환하므로 중국에서 발생한 대기오염물질이 서해를 넘어서 우리나라에까지 날아와서 피해를 주게 된다. 국경을 넘는 오염물질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국가 간의 협력은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느 정도 책임을 질 것인가를 두고서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기후 위기의 원인 물질로 알려진 이산화탄소는 그 자체로서는 냄새도 없고, 맛도 없고, 해로운 기체라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잎에서 일어나는 광합성의 원료이므로 식물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체이다. 그렇다면 이산화탄소는 대기오염물질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과학자들이 결정하지 않고,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판사들이 결정하였다.

 

이산화탄소의 가장 큰 배출원은 화력발전소지만, 휘발유나 경유 또는 천연가스를 태워서 움직이는 자동차들에서도 매우 많은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미국의 환경청에서는 새로 제작하는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도록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자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이산화탄소는 오염물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환경청의 규제를 거부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루한 소송 끝에 2007년 4월 미국 연방 대법원은 이산화탄소는 대기오염방지법이 규정한 대기오염물질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서 미국 환경청은 새로이 제작되는 자동차로부터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규제할 법적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이산화탄소는 대기오염물질이라는 유권해석이 법원으로부터 내려진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하여서 어느 한 나라가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인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서 협력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모든 나라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줄여야 기후 위기라는 ‘공유지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모든 국가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UN이 나설수 밖에 없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154개국이 참가하여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기후변화협약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리우회의에서 세계 여러 국가들는 “앞으로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자”라는 원칙의 선언에 합의했을 뿐이다. 구체적인 실천 계획은 추후 논의하기로 미루었다.

 

몇 번의 UN 회의를 거친 후에, 2015년에 파리에서 195개 나라가 모여 기후변화협약을 만들었다.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중요한 목표를 확인하였다. 산업화 이후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 축적되어서 계속해서 기온을 높이는 작용을 하므로,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감소하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 나라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자발적으로 감축해서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한 나라의 영토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이산화탄소를 산림으로 흡수시켜서 순수 발생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탄소중립(Net Zero)’이라고 한다. 파리기후협약 회원국들은 탄소 중립을 포함한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을 2020년 말까지 UN에 보고해야 한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은 2019년 11월에 가장 먼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2월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중국은 2020년 9월에 2060년을 제시했고, 이어서 일본은 10월에 2050년을 선언했다. 우리나라는 머뭇거리다가 뒤늦게 지난 11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재계의 반대를 뿌리치고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국제 사회에서 탄소중립선언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정치가가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하기는 쉽다. 그렇지만 탄소중립을 실천하기는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2050년이라면 30년 뒤인데 4년이나 5년 임기인 대통령이나 수상이 30년 뒤를 얼마나 심각하게 고려할까? 세계 제1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중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10년이나 늦은 2060년을 제시했는데, 이것을 UN에서 용인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저개발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포기하면서 탄소중립을 선언할 수는 없다”라고 끝까지 버틴다면 어떻게 할까?

 

지구온난화로 인한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모든 나라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는 탄소 중립을 위반할 때 어떤 형태로든지 규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몰래 소 한 마리를 추가하는 농부를 벌하지 않으면 공유지인 풀밭은 황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