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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광복회, 14살 최연소 독립유공자 주재년 열사 묘소 참배

주 열사 모교 여수 돌산초등학교 방문 기념식수도
김원웅 회장, 모교에 표지석 설치 제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광복회(회장 김원웅)는 오늘(26일) 전남 여수를 찾아 14살 최연소 독립유공자인 주재년 열사의 묘소를 참배했다. 광복회는 또한 김원웅 광복회장과 전라남도 여수교육지원청 김해룡 교육장, 여수 돌산초등학교 조재익 교장, 전남동부보훈지청 김영진 지청장, 김종원 돌산읍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최연소 독립운동가 주재년 열사의 모교인 여수 돌산초등학교 교정에 기념식수를 했다고 밝혔다.

 

 

 

이날 김 회장은 이날 주재년 열사의 모교인 여수 돌산초등학교에 열사의 공적을 기록한 표지석 설치를 제안했다.

 

한편 주재년 열사는 1살세의 소년으로 남다른 역사의식을 갖고 어른들도 하기 힘든 바위에 글자를 새겨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을 주창하였다. 일제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자, 스스로 자신의 정의감으로 감행했다고 밝혀 투옥되었고,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14살의 짧은 생을 마쳤다.

 

 

주재년 열사(1929.1.28~1945.11.14,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는 1943년 3월 여수군 돌산면 공립국민학교 제6학년을 졸업하고 집안일을 돕고 있었다. 그는 국민학교 재학시절부터 항일의식이 투철했다. 1942년 음력 12월 초순 무렵, 그의 형 재연(在淵)의 나병을 치료하기 위해 와 있던 일본인으로부터 '대동아전쟁이 장기화되면 일본이 패망하고, 한국은 미국 등의 힘을 빌려 독립해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1943년 9월 초순 무렵, 여수에서 조국독립의 실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을 유포하였다.

 

그리고 동년 9월 23, 24일 무렵, 나무하러 가는 도중 돌산면 율림리로 가는 도로 민가 목화밭 담장에 '조선과 일본은 다른 나라(朝鮮日本別國)', '일본은 패망한다(日本鹿島敗亡)', '조선만세(朝鮮萬歲)', '조선의 빛(朝鮮之光)'이라는 글자를 새겼다가 사흘 만에 여수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때 일제는 경비정 7~8척과 경찰 100여 명을 동원해 경적을 울리며 온 마을을 수색했으나 범인을 잡지 못하였다. 이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마을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자, 자수했다.

 

 

주재년 열사는 1944년 1월 21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아 풀려났으나, 4개월간의 복역 도중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이듬해에 순국했다. 주 열사의 항일운동 사실은 거의 8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항간에 구전되어 오다가 2006년 열사의 조카에 의해 관련 자료가 발굴되어 그해 8월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여수시는 2012년 5월, 여수시 돌산읍 금성리 작금마을의 주 열사 생가터에 기념관을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