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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가씨를 만난 것은 일어나기 어려운 일

무심거사의 단편소설 1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끔찍한 이야기로군!”

김 과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 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그 장로 이야기는 주인공이 바뀌어 자기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밀려왔다.

“여보, 빨리 잡시다.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그만두고.”

김 과장이 아내의 손을 살며시 쥐며 말했다.

 

그 이후로 아가씨에게서 연락은 없었고, 김 과장도 나목에는 더는 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살인하고 자살했다는 장로 이야기가 잊히지 않아서 가지를 못한 것이다. 아내도 더 이상 여자 문제로 추궁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나목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6달쯤 지난 어느 날, 뜻밖에도 사무실에서 김 과장은 미스 나의 전화를 받았다. 깜짝 놀라 웬일이냐고 묻자, 아가씨는 자기가 점심을 사겠다며 한번 만나자고 한다. 내일 당장 삼수갑산에 갈지언정 아가씨가 만나자는데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 평균의 남자라면 이런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을 것이다. 김 과장은 회사 근처의 다방에서 다음 날 열두 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막상 약속 장소에 나가려니 약간 불안한 생각이 들기는 해도, 그 옛날 연애하던 시절 데이트하러 가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지만 아내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김 과장은 이제는 승진한 박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을 같이하자고 요청했다. “셋이서 만나면 좀 안전하지 않을까?”라는 얕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니 이게 누구야? 미스 나 아냐! 김 과장이 여자 호리는 재주가 있구만.”

박 부장이 아가씨를 놀리면서 말했다. 김 과장이 혼자 나오리라고 예상했던 아가씨는 뜻밖이라는 듯 어색한 웃음을 띠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 과장이 변명하듯이 말했다.

“미스 나가 점심을 산다고 해서 박 부장님을 함께 모셨습니다. 미스 나가 돈을 많이 벌었나 본데 점심 한 번 얻어먹지요.”

 

세 사람은 근처에 있는 뷔페식당으로 갔다. 뷔페는 점심으로서는 값이 비쌌고 따라서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좋았다. 여러 가지 농담과 놀리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식사가 끝나고 1시가 가까워오자 박 부장이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김 이사님께 보고할 일이 있어서 지금 들어갈 테니까 두 분은 즐겁게 지내시오. 아니 김 과장은 아예 조퇴하지 그래요. 책상은 내가 치워줄 테니까.”

“먼저 가세요. 저는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가겠습니다.”

김 과장이 말했다.

 

두 사람은 다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과장은 이제 완전히 옛날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남녀관계란 참 묘한 것이다. 아내 아닌 여자를 만나더라도 남자는 그저 좋은가 보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한낮에 사무실 근처 다방에서 40대 유부남이 미혼의 젊은 여자와 소곤소곤 대화를 즐기는 것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닐 것이다.

 

 

“제가 김 과장님을 만난 것은 참 인연인가 봐요.”

“그래, 인연이 닿았나 보다. 인연으로 만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어느 스님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이렇게 설명하더군. 불교에서는 사람과 동물들은 서로 바꾸어 태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윤회라고 하지. 예를 들면 사람이 소가 되기도 하고, 소가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야. 윤회가 맞는다면 아가씨가 과거 어느 세상에서는 내 아내였을지도 모르고 또는 내 누이동생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이 세상에서 내가 아가씨를 만났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거야. 그 스님은 인연을 비유하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