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아직 남은 일제 찌꺼기 ‘한자 섞어 쓰기’ / 이대로

아직 남은 일제 찌꺼기 ‘한자 섞어 쓰기’ 일본인이 퍼뜨린 식민지배의 수단 - 이제 끝내야 할 때 이대로 참말로 논설위원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운 뒤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한글만 쓸 것인가, 한자를 섞어 쓸 것인가 싸움을 치열하게 했다. 한글 전용이 우리의 국어 정책이었는데 일본식 한자혼용에 길든 일제 지식인들이 끈질기게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싸움을 끝내고 미국말 침투를 막아야 할 때이기에 한자 혼용 말글살이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뿌리내리게 되었으며 왜 버려야 할 말글살이인지 내 생각을 정리해 여러 사람에게 밝히련다. 1443년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뒤부터 1886년 고종 때까지 우리말글살이는 한문만 쓰던가 한글만 쓰는 말글살이였다. 고려시대처럼 공문서와 학술서적은 한문만 쓰고, 아녀자와 일반인 편지나 소설에서 한글만 썼다. 일반인도 한자만 쓰던가 한글만 쓰는 말글살이였다. 한자 혼용 말글살이는 1886년 일본인 이노우에가 한성주보란 신문에 처음 쓰기 시작해 퍼트린 일본식 말글살이다. 최근에 경기도에서 발견된 파평 윤씨 무덤에서 나온 편지나, 경상도에서 발견된 이태용 부인의 무덤에서 나온 한글 편지를 보면 1500년대에 모두 한글만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1800년 대 추사나 흥선대원군, 명성왕후가 쓴 편지도 한글만으로 글을 썼고, 1500년 대 허균이 쓴 소설이나 1830년에 익종이 쓴 문집을 보면 우리말로 된 글은 한글로만 글을 썼지 한자를 섞어서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일제가 이 땅에서 들어와 세력을 퍼뜨리는 대한제국 때부터 한자를 섞어 쓰는 말글살이가 보인다. 1894년 고종 칙령과 1895년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기가 한자혼용 글체이다. 그런데 그 한자혼용 글체는 그보다 10년 전에 나온 신문 한성주보(1895.12.21) 가 퍼트려서 10년 동안에 자리잡은 것이다. 한자 섞어 쓰기 시작은 한성주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유길준이 1895년에 쓴 서유견문기가 가장 먼저 쓴 한자혼용 글이고 그가 한자혼용 글쓰기를 만들어 퍼트린 사람으로 아는데 그렇지 않다. 유길준이 쓴 글보다 10년 전에 나온 한성주보가 한자혼용으로 가장 처음 나온 글쓰기다. 한성주보는 1883년 박문국에서 만들던 한성순보가 갑신정변으로 문을 닫았다가 그 3년 뒤에 다시 내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나온 주보인데 일본인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고문으로 있으며 낸 신문이다. 한성순보는 신문과 잡지를 만들던 정부기관인 박문국에서 냈는데, 박문국은 1883년(고종 20) 8월 김옥균(金玉均) ․서광범(徐光範) ․박영효(朴泳孝) 등의 노력으로 설치되었으며, 민영목(閔泳穆) ․김만식(金晩植) 등을 당상관(堂上官)으로 하고, 일본인 이노우에 가쿠고로 [井上角五郞]가 고문이었다. 그 때 조선은 신문을 만든 경험이 없었기에 실제론 일본인 이노우에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하면서 박문국도 문을 닫고 이노우에는 일본으로 피신했다가 1886년에 다시 돌아와 한성주보란 한자혼용 신문을 만든다. 1885년에 일본인이 만든 ‘한성신보’가 있었는데 그 신문도 한자전용으로 하다가 한자혼용으로 신문을 냈다고 한다. 한자혼용 글쓰기는 본래 우리말글살이가 아니고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는 한 수단과 방법으로 시작한 말글살이었다. 우리말을 없애려는 한 과정, 한 점령 절차에 따라 처음에 저항을 줄이려고 한자전용이 아니고 일본처럼 한자혼용 말글살이를 한 것이다. 일본 한자말에 토씨만 한글로 쓰다가 다음에 한글로 된 토씨를 일본글자인 가나로 바꾸면 큰 저항과 불편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자 섞어 쓰기는 일본의 한국 지배 정책의 하나 한자혼용이 일본이 이 땅을 지배하고 우리말을 말살하려는 한 수단이었고 일본인 이누우에가 만든 작품임을 허재영님이 쓴 ‘국어교육과 말글운동(1994. 서광학술자료사)’ 34 쪽과 38쪽에 자세하게 쓰고 있어 그 내용 일부를 옮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자 섞어 쓰기는 유길준이 처음 만든 게 아니다. 자세히 밝힌다면, 섞어 쓰기 문제는 일본인 이노우에(井上角五郞)가 만든 것이다. 이노우에는 일본 근대화의 일등공신 후꾸자와유끼끼의 제자였다. 그는 후꾸자와의 주선으로 한국에 건너와 한성순보(1883.10.1)를 만들었다. 이 신문은 한문으로 말들었는데 갑신정변으로 말미암아 신문사가 불타버리고 이노우에는 일본으로 도피했다. 그 뒤 후꾸자와의 주선으로 다시 이 땅에 돌아와 한성주보(1885.12.21)를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섞어 쓰기 문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이노우에가 이 땅에 한자 섞어 쓰기 문제를 퍼트린 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이 땅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뜻에서 일본말을 쉽게 심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행한 침략행위임이 이노우에가 1936년 조선신문사 ‘조선통치의 회고와 비판’란 제목으로 쓴 글에서 보인다. “나는 조선의 언문을 써서 우리나라(일본)의 가나와 통하는 글과 같은 문제를 창시했는데, 이를 보급하여 조선인이 사용하게 되면, 피아 양국이 동일한 문체가 되고, 이로서 문명 지식을 함께 할 수 있으며, 일본에서 고래의 고루한 사상을 일변시키려 한 후꾸자와 선생의 뜻을 중시하여, 한문이 언문을 받아들인 문체로 신문을 발행하였다”고 쓰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이 교묘하게 일본 문화침략과 언어동화를 통해 우리를 완전히 먹으려는 속셈으로 한자 섞어 쓰기 문체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이 이 땅을 먹은 뒤 처음엔 조선글을 학교에서 가르치다가 조금씩 줄이고 창씨개명을 하고 조선말 죽이기 정책을 쓰다가 조선어학회 학자들을 반란죄로 감옥에 가두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일제가 물러가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도 일본식 한자 섞어 쓰기를 버리지 못했다. 글을 아는 사람들, 공무원과 학교 선생, 신문기자들이 모두 일제시대 한자혼용 말글살이에 길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인으로 태어나 일본말을 국어로 알고 일제식 한자혼용에 길든 이들이 한글만 쓰는 말글살이가 불편했다.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쓴 글이 우리 토박이말을 한글로 쓴 글보다 읽기가 쉽고 이해가 빨랐다. 교수나 교사가 한글 맞춤법도 모르고 한글 글씨가 지렁이 기어가는 꼴이었다. 일제시대 어렵게 배운 걸 내세우고 써먹기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말 도로찾기와 한글만 쓰기를 방해해서 지난 50년 동안 우리 말글살이가 혼란스러웠다. 근본 정책은 한글전용인데 교과서에서 한자를 혼용하기도 하고 병용하기도 해서 학생들만 피해를 봤다. 사회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배운 사람들이 반성해야 이제 세계 으뜸가는 한글만으로 얼마든지 말글살이를 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되었다. 책방에 가면 한글로만 쓴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신문도 한글만 쓰고 있고 한글만 쓴 논문과 학술서적이 많이 나온다. 전에는 한글로만 논문이나 학술서적도 없고 신문도 모두 한자 혼용이고 한글보다 한자를 잘 알고 잘 쓰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 한글을 잘 알고 잘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아직 정부와 신문사와 기업과 대학에 일제 지식인과 그 제자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한글만 쓰는 걸 가로막고 있어 완전한 한글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완전한 한글세상으로 가려면 풀어야 할 문제도 많고 넘어야할 고개도 많다. 1000년 동안 중국 한문만으로 쓴 옛 책과 일제 때 한자를 섞어 쓴 책을 빨리 한글로 번역해야 한다. 어려운 일제 한자말은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 새말은 우리 토박이말로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일제식, 영어식 문장과 말투도 버려야 한다. 쉬운 우리말글로 된 전문 서적과 문학 작품을 많이 내야 한다. 이름도 중국식이 아닌 우리 토박이말로 짓는 연구와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이제 일제 지식인과 그 제자들은 일제식 한자혼용을 고집하지 말고 한글만 쓰는 말글살이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고 나라에서도 힘써야 한다. 자연환경을 지키고 살리는 데, 외국말 배우고 쓰는 데 드는 비용보다 우리말글 살리고 빛내는 데 쓰는 예산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말글로만 말글살이를 하는 편리한 세상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5000년 역사가 있다지만 제대로 된 우리 문학과 철학이 없고 중국 문학과 철학 속에 사는 부끄러움을 씻어내야 한다. 그래서 학문도 중국 책, 일본 책, 미국 책을 베끼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학문 책을 많이 내서 학문이 독립해야 한다. 한문과 영문으로부터 독립하고 우리말이 바로 설 때 나라가 바로 서고 겨레의 앞날이 밝아질 것이다. 아직도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한자혼용을 하는 일본이 잘살고 있다, 우리도 일본처럼 한자를 많이 배우고 혼용하자”고 자주 떠드는 데 참으로 안타깝다. <필자 소개> 필자 이대로 선생은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1967년 동국대 국어운동학생회 창립 초대 회장 1990년 한말글사랑겨레모임 공동대표 1994년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 조직위윈장 1997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2000년 한글세계화추진본부 상임이사(현) 2004년 한글날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사무총장 2005년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사무총장 참말로 200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