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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튼튼하게 하는 궁중 한방음료 제호탕

[한의학으로 바라본 한식 2

[그린경제=지명순 교수]  만사가 귀찮다. 속이 울렁거리고 답답하다. 밥맛도 없다. 그런데 물은 자꾸 들이킨다. 이런 증상을 흔히 '더위 먹었다'라고 민간에서 말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서증(暑證)이라 한다. 동의보감을 비롯해 의방유취(醫方類聚), 방약합편(方藥合編) 등 여러 의서에서 서증(暑證) 치료에 제호탕을 처방하고 있는데 "비위를 도와 음식의 소화를 돕고 더위를 풀어주고 갈증을 멈추게 한다."고 쓰여 있다. '제호'의 의미는 불가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극히 맛이 좋은 음료의 대명사로 쓰인다. 

제호탕에 들어가는 약재는 오매(烏梅), 초과(草果), 사인(砂仁), 백단향(白檀香), 꿀(蜜)이다. 오매(烏梅)는 덜 익은 매실을 짚불에 그을려 건조한 것으로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시다. 담을 삭이고, 구토와 갈증을 멎게 하고 노열(勞熱)과 골증(骨蒸)을 치료하며, 술독을 풀어 준다. 사인(砂仁)은 건위(健胃)작용이 뛰어나서 소화력을 올려주고, 식욕을 증진시킨다. 초과(草果)와 백단향(白檀香)은 방향이 강한 재료로 열을 풀어주고 목마름을 그치게 한다. 

   
▲ 장 튼튼하게 하는 궁중 한방음료 제호탕

제호탕은 여름철 서증의 치료약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귀하고 맛이 좋은 음료로 쓰임새가 다양했다. 우리나라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단오에 임금님이 정2품 이상의 문관 벼슬을 지내고 70살이 넘어야 들어갈 수 있었던 기로소(耆老所) 신하에게 노인공경의 의미로 제호탕을 하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또 ≪조선왕조실록≫에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에 제사(祭祀) 지낸 제관(祭官)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하사하고, 동몽(童蒙)교관과 성적이 우수한 유생들에게 제호탕을 한 대접씩 대접하기도 했다. 제호탕의 제조와 관리가 엄격하여 중전에게 올리는 것도 왕명을 받아야만 가능했으며, 내의원에서 제호탕에 사용된 근거가 확실하지 않을 때는 왕법(王法)으로 죄를 다스렸다. 

제호탕은 조선 후기에 유행해 일반 사대부 집안에서도 자유로이 제호탕을 만들어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예로 제호탕을 대접하고 소박맞은 이덕형의 애첩 일화가 전한다. 이덕형이 영의정으로서 창덕궁 중수(重修)의 도제조(覩提調)를 겸해 주야로 분주할 때였다. 

어느 여름날 더위에 허덕이며 '시원한 제호탕 한 그릇 마시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집에 가니 눈치 빠른 애첩이 얼음을 동동 띠운 제호탕을 내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 감동하여 마시고는 잠시 후 "내가 너를 내칠 것이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훗날 그는 애첩을 내친 이유를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 그 순간 애첩이 어찌나 예뻐 보였던지 여색에 빠져 국사를 그르칠까' 염려해 그리 한 것이라고 했다. 

제호탕은 수분 22.4%, 조단백질 1.31%, 조지방 1.24%, 회분 0.80%이며 pH는 3.2로 산미가 매우 높다. 오매에 함유된 유기산은 식욕을 자극하고 살균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장내세균 중 유익균의 활성을 도와 장 면역 기능성을 높여 장을 건강하게 한다고 연구·보고되어 제호탕의 약효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제호탕 만드는 방법은 오매 간 것 1근(600g), 초과 1냥(37.5g), 사인·백단향 곱게 간 것 각 5돈(각 18.7g), 연밀 5근(3kg)을 합하여 은근한 상태에서 고(膏)상태가 될 때까지 중탕하여 끓이는 방법이 있고, 오매에 물을 넣어 반으로 줄 때까지 끓여 오매수를 만들고 여기에 나머지 약재와 꿀을 넣어 붉은 빛이 돌 때까지 은근히 끓이는 방법이 있다. 완성된 제호탕은 도자기에 담아 보관하면서 5배의 찬물에 타고 얼음 동동 띄워내면 더위 먹은 것쯤은 금방 씻은 듯이 나을 것이다. 

무심코 쉽게 사 먹는 청량음료수는 중성지방을 늘리고, 기억력을 감소시키며, 심장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번거롭고 수고스럽지만 조상의 지혜가 담긴 제호탕으로 더위도 물리치고 장도 튼튼하게 하여 배탈 설사 없이 건강하게 여름 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