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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황산대첩

황산대첩과 지역 축제




고려 1380(우왕 6)년 9월에 이성계가 삼도 도순찰사로서
전라북도 남원 황산(荒山)에서 왜구를 크게쳐부순 싸움.
 



 


남원시 운봉읍에서 오는 15일 황산대첩축제가 성대히 개최된다. 남원시와 운봉애향회에서는 고려말 왜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혼란에 처해있을 때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장군이 이곳 황산에서 왜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군 2만명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 전적을 기리는 황산대첩축제를 8. 15일 광복절을 맞이하여 당시 전쟁 터인 남원시 운봉읍에서 연다고 밝혔다.

고남산(태조봉)

[그린경제=가람 기자] 백두대간의 거대한 산줄기가 백두산 장군봉을 출발하여 지리산 천왕봉까지 남으로 1,621,5km를 뻗어간다. 전북지역의 백두대간 산줄기는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시작되어 대덕산·삼봉산·덕유산향적봉 어깨·육십령·깃대봉을 지나 장수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금남호남정맥을 나누어 놓고, 백운산·봉화산을 지나 고남산을 솟구쳐 놓고, 지리산 방향으로 뻗어간다. 고남산 남동쪽의 물줄기는 광천을 통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북서쪽은 요천을 통하여 섬진강으로 합수된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산동면 중절리·운봉읍에 위치해 있다.
남원에서 동북쪽으로 바라보면 운봉 여원재에서 북쪽 끝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바로 이산이다. 그리고 남원에서 88고속도로를 달리다 지리산휴게소 중간쯤이나 남원에서 운봉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정상 부근에 거대한 중계탑이 서 있는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이 산은 또 운봉평야에 우뚝 솟아올라서 예부터 전쟁터와 격전지의 방어선이 되곤했다. 지역 주민들은 고남산을 태조봉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화합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19회 인월제

달을 끌어올려 승전한데서 인월(引月) 유래


인월이라는 지명을 갖게 된 역사를 되새기고, 인월면의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19회 인월제가 오는 8. 14일 인월면체육소공원 상징탑 일원에서 개최된다.

인월제는 인월면발전협의회(김문현)와 인월면(면장 오재태)에서 공동 주관하며 인월제례와 체육행사인 윷놀이, 면민 노래자랑 등으로 다채롭게 열리며 면민의 화합과 단합을 이루는 뜻 깊고 정이 넘치는 한마당이 될 예정이다.

인월제는 고려 우왕 6년(1380) 이성계 장군이 이끄는 왜구 토벌군의 싸움에서 날이 어두워지자 기도로 밝은 달을 끌어올려 황산대첩을 이루었었으며, 그로 인해 끌인(引) 달월(月)을 써서 인월(引月)이라고 부르게 된 지명 유래를 기념하는 제사이다.

인월제에는 이환주남원시장, 강동원국회의원, 이상현도의원, 배갑문 재경인월향우회장 등이 참석 하였이며, 오재태 인월면장은 “인월제를 통해 조상들의 민족정신을 이어 받아 유서 깊은 인월문화와 전통을 계승 보전하고, 화합과 단결로 한마음 한뜻으로 인월면 발전을 위해 단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성계장군과 황산대첩

고려말 우왕 6년(1380)에 왜구 2천명을 이끌고 인월면 인월리에 본진을 둔 왜장 아지발도에 맞선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변안렬을 참모로 삼고, 퉁두란을 아장으로 삼아 1천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한양을 출발하여 전주 한벽당에 잠시 쉬었다가 대오를 정비한 뒤, 남원에 도착하였다. 이때 멀리 운봉쪽을 바라보니 고남산이 유난히 뾰족하여 이곳에 올라 제단을 쌓고 서쪽 기슭에 있는 창덕암 약수터에서 목욕재계하고 3일간의 산신제를 올려 천지신명께 승리를 기원하고, 황산(荒山)에서 대승을 거두고 왜장 아지발도를 사살하였다. 왜장 아지발도는 일본에서 출발할 때 애첩이 조선 황산의 산신이 크게 노하여 불길하다 하여 출정을 만류하였으나 애첩의 목을 단칼에 베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아지발도가 황산에서 죄 값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 뒤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건국한 뒤, 이 산의 이름을 태조봉 또는 제왕봉으로 불렀다. 고남산 아래에 주둔할 때 군사와 말들의 식수로 썼던 샘터 주변에 터를 잡은 권씨 마을은 권세가 하늘에 닿도록 끊임이 없다 하여 권포리(權布里)라 하였다.
그리고 여원재에서 고남산 초입에 있는 마을의 지형을 이성계를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지형을 살펴보니 고남산의 산줄기가 이 마을까지 뻗어내린 모양이 마치 긴 다리를 놓은 것 같아 '장교리(長橋里)'라 지었고 이씨와 김씨가 번성할 것으로 예언했는데 오늘날 이씨와 김씨가 평화롭게 살고 있다.


황산대첩비와 어휘각


 

황산에서의 뜻 깊은 전승을 기리기위해 이성계는 다음해인 1381년 이곳을 찾아와 암벽에다가 전투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두었다. 그리고 황산대첩이 있는지 약200여년이 지난 1577년 (선조10)에는 전라도 관찰사 박계현(朴啓賢: 1524-1580)의 건의로 지금의 운봉읍화수리에 환산대첩비가 세워졌다.


일제는 민족혼을 말살시키기위해 400여년 동안 보존되어온 암벽과 비석을 폭파시켰다. 1945년 1월16일 밤에 술취한 남원경찰서 고등계형사들이 몰려와 비석을 폭파하고, 암벽의 글씨도 정으로 쪼아 뭉개 버린뒤 총질까지 해 글자를 식별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고 당시의 현장을 본 기록이 동아일보에 소개되었다.  1957년에는 파손된 부위를 짜 맞추어 옛모습을 되찾고자 하였으나 이미 심하게 파손되어 어찌할 수 없자, 검은대리석으로 원형과 똑 같은 비를 다시 만들어 대첩비각안에 모아놓았다. 황산대첩비에서 50여미터 쯤 올라가면 바위 한면에 기둥으로 삼은 어휘각이 있다. 이 어휘각은 이성계가 승전을 기념하여 자신의 이름과 전투에 참가한 장수의 이름을 새겨 놓았지만 일제가 모두 뭉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