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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풍운의 장 77회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누르하치는 스스로 반문하는 형국이 되었다. 방금 전만 하여도 김충선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여진을 방문한 목적을 사적인 행위로 규정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졸렬한 짓이며 비겁한 짓인가?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 변절하는 것은 군자답지 못한 행위로 소인배나 하는 일로 여기는 누르하치였다. 누르하치는 자신의 직감을 확신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웬 일인가? 이번에는 오히려 김충선이 누르하치의 견해를 반발하고 나서지 않는가. 이 작자는 당연히 누르하치의 생각에 백 번이고 동조해야 마땅한 노릇이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언제든지 교활하게 간이고 쓸개고, 어디든지 달라붙을 위인으로만 생각 했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번에는 누르하치를 상대로 배짱을 부린다.

분명히 대답 올릴 수 있습니다. 조선은 정복하기가 진정 불가능한 나라이옵니다. 여진이 조선을 주적으로 삼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옵니다. 굽어 살피옵소서.”

감히 여진의 칸에게 맞서려는 것이냐?”

칸이시지요. 암요, 당연히 칸이 되어야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경솔한 행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고약한 위인이었다. 어설프게 측정 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의 인물이었다. 이때서야 비로소 누르하치는 김충선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내릴 수가 있었다.

단순한 위인이 아니다. 목숨을 구걸하고 연명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행위, 그 이상이다.’

누르하치는 건주여진의 족장으로 내부적으로는 스스로 칸이라 자청하고 있었으나 아직도 여진의 다른 부족을 완전 통일하지는 못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김충선의 일침이 누르하치의 급소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칸이라 불려 질 자격이 없다는 것이냐?”

그 이상, 황제에 오르실 옥체이시옵니다.”

누르하치의 미간이 요동하였다.

어허, 그대가 날 농락하는 것이냐?”

감히 소신의 목숨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인데 그런 무모한 짓을 자행할 수 있겠나이까. 만일 여진이 칸의 발아래 통합 된다면 그 다음 수순은 조선이 아니옵고 마땅히 명나라가 아니겠습니까!”

명나라? 설마 대국 명나라?’

누르하치는 김충선이 이정도로 강심장에 정국을 분석하는 통찰력이 예리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늑골을 타고 흘렀다. 누르하치와 김충선의 이 기기묘묘한 논쟁을 곁에서 바라보는 일패공주는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을 오르내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맨 처음 김충선을 당장 죽이라던 누르하치의 준엄한 명령은 많이 수그러진 느낌이어서 다소 안심이 되었다.

그대를 부마로 삼게 된다면 예단으로 명나라를 도모한다? 그래서 장차 내가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황제가 된다는 뜻 인 것인가?”

감충선은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바로 그러하옵니다.”

조선은 어찌 되는 것이냐? 그대는 이순신의 나라를 꿈꾸고 있다고 들었다.”

한 순간 김충선의 얼굴에 결연한 긴장의 빛이 머물다가 사라졌다.

명을 도모하는 것이 조선의 대업을 성취하는 길이며, 조선에 개벽이 발생해야만 명나라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황제의 나라를 건국할 수 있다면 칸께옵서는 이 부분에 동조하시겠습니까?”

누르하치의 눈에서 또 다시 섬뜩한 신광이 스쳐갔다. 그의 입가에 경이로운 미소가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