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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병 군인의 가사집 발견

일제 강제징병 군인의 가사집 발견 백두현 경북대 교수, 해방 직후에 쓴 <춘풍감회록> 연구논문 내놔 ▲ <춘풍감회록>의 권두 부분, 한쪽에 쥐가 쏠은 부분이 훼손되어 있다. ⓒ 김영조 “갑신년(甲申年) 츄칠월(秋七月)에 남에 쌈에 칼을 빼여 부모(父母) 쳐자(妻子) 생별(生別)고 영문(營門)을 차져 드러 순일(十日)을 지난 후(後)에 평양셩 떠나가니“ 이 가사는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백두현 교수가 발견하여 소개한 <춘풍감회록>이란 가사집의 첫머리이다. ‘갑신년 츄칠월’ 즉, 1944년 9월 일제에 의한 강제 징병 제1기에 징발되어 부모와 처자식을 두고 떠나는 아픔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평양에 있는 일본군 군영에 머물다가 열흘이 지난 뒤 평양을 떠난다고 쓰였다. 이 춘풍감회록은 김중욱이란 사람이 쓴 것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에 징용되어 중국의 여러 지역을 전전하면서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고, 전투 중 일군(日軍)을 탈출한 뒤 중국군에 가담하여 싸우다가 해방을 맞이한 인물로 보인다. 해방 후 귀국하여 그간의 소회를 한글가사로 지어 읊은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백 교수는 여러 해 동안 한글 필사본 자료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 온 학자이다. 특히 한글 편지, 한글 고문서, 한글 음식조리서, 한글 여성교육서 등의 자료를 국어사적 관점에서 검토하면서 동시에 이 자료들을 통해서 관찰할 수 있는 문자 생활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하면서 간혹 일제강점기 때 애국지사들이 남긴 문필을 발견하기도 했다. 2002년도에 소개한 <대한군인애국가>가 그 중의 하나이고, 애국지사 김태린이 지은 <동몽수독천자문>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춘풍감회록>은 닥종이에 붓으로 쓴 한 권의 필사본이다. 이 책은 미끈하고 아름다운 필체의 한글로 쓴 것이며, 한글 묵서(墨書:먹물 글씨)에 뛰어난 솜씨를 보여 준다. 책의 크기는 가로 26.5㎝, 세로 19.2㎝이며 표지를 포함하여 전체가 14장 28쪽이다. 표지 왼쪽에 네 개의 구멍을 뚫고 두 개의 종이끈으로 각각 묶었다. 책의 오른쪽 가운데 일부분을 쥐가 쏠아서 제1장부터 제7장까지는 글자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이 부분의 글자를 읽을 수 없다. ▲ <춘풍감회록>의 권말 필사 기록 ⓒ 김영조 책의 마지막을 보면 “졍해(丁亥) 윤이월(閏二月) 김즁욱 씀”이라고 되어 있어 김중욱이 이 가사의 창작자로 보인다. 또 “김즁욱 씀”이라고 명기한 것으로 보아 김중욱은 이 가사의 창작자이면서 동시에 이 필사본을 직접 쓴 필서자라고 백두현 교수는 말한다. 이 책의 내용 일부를 보면 다음의 글이 보인다. “고국 떠나 반삭 만에 창주에 이르니 암야 삼경에 총검이 셔리 차고 원산에 포셩이 은은하다 잠만 깨면 총을 매고 총만 노면 잠을 자니 맹호 갓튼 남아 이쳔 북방으로 젹을 마져 젹젼에 임졉하니 사면포셩 ····포연탄우···· 반공애 작열하여 쳔붕지괴 수라장이 왼종일을 거치다가 우렁찬 함셩 속에 추젹원방 하고 파옥 발화 강탈하니 잔인포악이 극이라.” 고국을 떠난 지 반 달만에 창주에 도착하여 격렬한 전투에 투입되는데 이 전투는 중국군을 상대로 한 것이다. ‘사면포성(四面砲聲)’, ‘포연탄우 (砲煙彈雨)’, ‘천붕지괴(天崩地壞)’라고 표현한 한자 사자성어는 전투의 격렬함을 잘 드러낸 말이다. 특히 ‘발화강탈(發火强奪)’, ‘잔인포악 (殘忍暴惡)’ 따위는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글쓴이 김중욱은 이렇게 전투에 참여하다 탈출하여 무덤에 숨어 있다가 중국군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된다. 그 뒤 중국군 장교가 되어 선무조 (宣撫組:지방이나 점령지의 주민에게 정부 또는 본국의 뜻을 권하여 민심을 안정시키는 일)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을유년 팔월 보름에 일본이 항복한다.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들은 김중욱은 한 시라도 바삐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 “등불을 다시 발켜 파연의 먹을 가러 심즁 소회 그려 내여 우리 부모 게신 곳애 나의 임이 잇는 곳애 하로 밧비 보내고져* 촌개야 어셔 우러 지구를 빨니 돌여 날이 새게 하려무나 ...... 셔해에 배를 모니 ····· 한라산 놉흔 봉이 듕쳔에 웃둑 솟고 대소 어션이 다도해를 왕래하니 ···· 장부 소회 다 못하니 오호의히라 황해 바다 건너 와셔 내 여기 소리 친다.” 여기서 ‘촌개야 어서 울러 지구를 빨리 돌려 날이 새게 하려무나’라고 하는 표현에서 김중욱의 기쁨과 기다림을 읽을 수 있다. 또 ‘서해로 나아가니 한라산이 보이고 다도해가 보였다. 장부 소회를 다 못 적고 황해를 건너와 내 여기서 소리친다’라면서 끝을 맺었다. 이 가사를 지은 김중욱은 수려한 한글 필치로 보나 가사에 쓰인 문장으로 보나 상당한 학식을 가진 사람이 분명하다고 백 교수는 말한다. “상하사방 (上下四方)을 우(宇)라 하고 / 고왕금래(古往今來)를 주(宙)라 하니”라고 시작한 가사의 첫 부분처럼 한자어와 한문구가 적지 않게 들어간 것으로 미루어본 것이다. 그런데 백 교수는 이 가사의 창작자 김중욱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김중욱이 광복군으로서 활동했다면 독립투사 인명록 등에 올라갔을 것으로 생각하여 이런 인명록을 검색해 보았으나 그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가사의 마지막에 쓰인 ‘고 이슈호 고 김츈섭’ 두 사람도 역시 독립운동 인명록에 올라가 있지 않았다. 백 교수는 국어학자답게 이 가사집을 보면서 국어문법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그는 이 가사집이 창작 시기가 1947년임에도 아래아(촵)가 사용되었고, 각자병서가 주로 사용된 다 전통적 표기인 합용병서는 극히 드물며, 관형격 조사 ‘-의’가 ‘-에’로 표기된 예가 있음을 밝혔다. 또 모음 ‘ㅙ’가 ‘ㅚ’로 표기된 예가 나타나고, ㅐ와 ㅔ가 섞여 쓴 예가 발견되며, ㅢ가 ㅣ로 실현된 발음을 반영한 예가 나타나는 것과 함께 음절단축 현상이 표기에 그대로 반영된 구어적 요소가 발견된다고 얘기한다. 이는 해방 직후의 국어생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 논문은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하는 ‘영남학’ 9호에 게재될 예정이라고 하며, 영인본도 실을 예정이라고 백 교수는 밝혔다. 백 교수는 그동안 국어학 연구에 꾸준히 노력해왔다. 얼마 전엔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맹근다>란 제목의 경상도 사투리를 재미있게 소개한 책을 내기도 했다. "해방 직후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대담] <춘풍감회록>을 발굴, 연구한 백두현 교수 ▲ 논문을 쓴 백두현 교수 ⓒ백두현 - 어떤 과정으로 이 가사집을 손에 넣게 되었나? "최근 여러 해 동안 한글 필사본 자료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 왔다. 특히 한글 편지, 한글 고문서, 한글 음식조리서, 한글 여성교육서 등의 자료를 찾아내고, 그를 국어사적 관점에서 검토하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대구시 봉산동의 한 고서점에서 발견했다." - 글쓴이 김중욱이 중국군에서 복무했다면 독립투사 인명록보다는 중국군에 확인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론 글쓴이를 확인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대구시 광복회 회장 등 관련기관에 문의하였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중국군 문서 확인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 이 가사집을 통해본 해방 직후 국어생활에서의 가장 큰 어학적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해방 이후에도 전통적 표기법으로 가사를 창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1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공표한 한글맞춤법통일안(1933)의 영향이 병서(된소리) 표기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이 통일안이 널리 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까지도 여전히 아래아가 쓰이는 등 전통적 표기법의 영향이 남아있음과 ㅞ와 ㅚ의 음가가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한문구 사용이 매우 강하여 조선시대 지식인의 문자 생활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 김영조 ※ 이 기사는 <시골아이>, <대자보>, <참말로>에도 보냅니다. 2006-07-25 17:20 ⓒ 2006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