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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제주 갓전시관에서 만난 장인의 예술혼

중요무형문화재 공개행사, 양태(갓일) 장순자 장인

[한국문화신문 = 이한영 기자]  “대나무실을 뽑을 때 한 번에 쭉 칼로 밀어야 하지 도중에 멈추면 마디가 생기고, 울퉁불퉁해져 버리기 때문에 실로 쓰지 못해요. 한꺼번에 쭉 실을 빼내되, 얇아야하고 또 끊어지지 않게 그리고 단단하게 해야 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 올 한 올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갓일은 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중요무형문화재 갓일 제4호인 제주의 장순자 장인의 말이다.

 

   
▲ 한올 한올 대나무실을 엮어가는 장순자 장인

 

   
▲ 수십년 예술혼을 불태운 장인의 거친 손

제주의 갓전시관으로 장순자 장인을 찾아 나선 것은 중요무형문화재 공개행사 마지막 날인 어제 5월 10일 오후 3시 무렵이었다. 한 무리의 관람객들이 갓 전시장을 둘러보고 막 떠난 뒤에야 장인과 함께 차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재 공개행사는 중요무형문화재의 대중화와 보존, 전승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2월부터 매월 열리고 있는데 특히 5월에는 제주 갓일(양태)을 비롯하여 총 27종목의 공개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이제는 텔레비전 사극 드라마에서나 갓 쓴 선비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갓은 일찍이 조선시대 성인 남자들이 외출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복 가운데 하나로 원래는 햇볕, 비, 바람을 가리기 위한 실용적인 머리쓰개였으나 주로 양반의 사회적인 신분을 반영하는 쓰임새로 바뀌었다.  

영정조 때의 갓은 양태가 비교적 넓었고 호박(장식물을 만드는 광물) 따위로 만든 갓끈을 가슴 밑으로 길게 늘어 뜨려 그 멋을 한층 더했다. 그러던 것이 순조 말기에는 양태가 더욱 넓어져서 종전의 어깨를 덮을 정도에서 앉은 사람을 완전히 덮을 정도가 되었는데 흥선대원군 집정 이후에는 갓의 폭이 좁아졌다.

 

   
▲ 실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자르는 장인

   
▲ 장인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갓전시관 내부

   
▲ 공개행사를 둘러보고 있는 관람객들

장순자 장인의 외할머니(강군일)는 당시 제주 갓일(양태)의 손꼽히는 명인이었고 어머니(고정생) 역시 6살 때부터 갓일을 배워 솜씨가 빼어나기로 소문나 있었다. 오죽했으면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죽더라도 손은 두고 가라”고 할 정도인 집안에서 자연스레 갓일과 친해졌다. 어머니 고정생 장인은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제1대 양태장’으로 지정을 받았다. 갓일로 한 평생을 바친 어머니에 이어 장순자 장인이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것은 2000년 7월의 일로 60살 때의 일이니 장인의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알 수 있다. 

갓일은 총모자, 양태, 입자로 나뉜다. 총모자는 컵을 뒤집어 놓은 듯한 우뚝 솟은 원통 모양 부분을 말꼬리털 또는 목덜미털을 사용해 만드는 것이고, 양태는 대나무를 머리카락보다 잘게 쪼개서 레코드판처럼 얽어내 챙을 만드는 과정을 말하며, 입자는 이들 총모자와 양태를 결합하여 명주를 입히고 옻칠을 해서 제품을 완성시키는 일을 일컫는다. 이 세 가지 과정은 서로 재료가 다르고 솜씨의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생산지를 달리하고 무형문화재 보유자도 분명히 구분이 되어 있다.  

이 가운데 장순자 장인은 중요무형문화재 갓일(양태) 보유자로 일흔다섯이라는 나이도 잊은 채 오늘도 쉬지 않고 한 올 한 올 갓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번 중요무형문화재 공개행사는 5월 1일부터 10일까지 끝이 났지만 상설 <갓전시관>에서는 장순자 장인이 걸어온 갓일의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장순자 장인은 전시관을 나서는 기자의 손을 꼭 잡으며 ‘우리의 전통 문화를 알리기 위해 먼 곳에서 와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억척스런 장인의 거친 손이 중요무형문화재의 험난했던 지난 세월을 말해주는 듯 하여 뭉클했다.

 

   
▲ 제주 조촌 교래리에 있는 갓전시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