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실로 해괴한 일이 아닌가. 이순신에 대한 선조의 변덕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지평 강두명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선조의 따가운 눈총을 느끼면서 천천히 자신의 소신을 이어나갔다. 이순신에 대하여 이중적 감정을 지니고 계신 것이옵니다. 이중적 감정이라? 예. 그의 무용(武勇)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지니고 계시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미운 것입니다. 싫은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이순신은 백성과 군사들에게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과인이 시기한다는 것이냐? 선조는 무감동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찌 들어보면 아예 관심이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듣는 사람들의 착각이었다. 선조의 눈빛은 맹수의 잔인함으로 표독스럽게 번뜩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강두명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그것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감히 임금과 신하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나이까. 시기란 말은 적절하지 않고, 다만 그것은 이순신이 애초에 자초하여 자신을 겸허(謙虛)하게 돌보지 못함이 아닐까 사료되옵니다. 이순신이 잘난 척을 하긴 했지. 그러하옵니다. 스스로 망친 것으로 누구를 탓할 수 있겠사옵니까. 몇 번의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선조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은 왜 김충선, 그 자가 여진으로 떠나갔느냐는 것이다. 어떤 목적을 지니고. 강두명이 은근한 어조를 던지며 선조의 용안을 살폈다. 혹시 망명(亡命)을 요청하려는 의도가 아니겠는지요. 망명이라고? 누가 말인가? 강두명은 직설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들이지요. 이순신과 김충선! 그런가? 강두명은 의혹을 떠올리고 있는 선조에게 자신의 견해를 떠벌렸다. 아니라면 딱히 다른 정황이 보이지 않습니다. 백의종군 신분이 된 이순신은 자신이 처한 위기를 누구보다도 잘 간파하고 있을 겁니다. 김충선 역시 무모하게 이순신 구하기에 뛰어들어서 전하의 진노를 사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 터이고요. 그들이 이 조선에서 살아갈 생존의 길은 사실 막막할 것입니다. 따라서 여진이나 왜적을 떠올리게 된 것이지요. 명나라 역시 조선의 상국이니 그들이 망명할 장소로는 마땅치 않을 것입니다. 여진으로의 망명을 타진하기 위해서 김충선이 먼저 떠나간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정국에는 변화가 심하였다. 우선 이순신은 원균의 칠천량 대패로 인하여 조선 수군의 통제사로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임금의 면전이라 말은 그렇게 했어도 좌의정 육두성은 명나라 장수와의 만남을 회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명나라 장수들의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인 태도도 문제였지만 근자에 들어서는 조선의 대신들을 상대로 무례한 폭력을 사용하는 사건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였던 것이다. 전란 당시 군량을 담당했던 지중추부사 김응남이 명군에게 군량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장형에 처해졌고, 의주목사 황진이나 호조참판 민여경, 경상우수사 박진 등도 치욕을 당했다. 명나라 장수들은 조선을 구하기 위해 파견 되었다는 명분으로 횡포를 일삼았지만 조선 조정에서는 감히 반박의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신이 비록 언어가 유창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소통은 가능하오니 제독을 접견 하도록 하겠나이다. 서애 유성룡이 명나라 장수 마귀를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좁혀졌다. 그러나 심기가 남다른 선조는 그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영상과 이순신의 관계는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좌상이 역관을 대동하여 명나라 장수 마귀를 만나도록 하시오. 좌의정 육두성은 원하지 않는 임무를 맡게 되었으나 불평을 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퇴청 즉시 행장을 수습하여 도원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선조는 직설적으로 어심을 드러냈다. 서애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일단 입 밖으로 내뱉어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 만전을 기해야 했다. 서애 유성룡은 현자(賢者)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했다. 반드시 그러한 내용이 아니옵니다. 명나라의 마귀는 본래 육전의 장수이므로 수군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조선 수군은 고려 때부터 왜구를 대상으로 해상의 명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임진년에는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비록 이번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를 하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원균장군이었고 통제사 이순신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사옵니다. 선조가 날카롭게 반문했다. 그래서 이순신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요? 그러하옵니다. 참혹한 수군의 현실이지만 우리 조선 수군을 통설하는 전방의 장수에게 수군폐지에 대한 견해를 물으시어 의당 참고하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육두성의 코가 벌렁거렸다. 흥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영상은 이순신을 편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오! 일개 장수의 변론을 듣고 어전의 방침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요? 그것이 얼마나 무례한 도발인지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사태가 급박한지라 유성룡은 선조의 진노가 담겨 있음을 알면서도 반대 의견을 꺼내 놓았다. 이에 힘을 얻은 병조의 신임 수장 이덕형이 목청을 높였다. 전하, 영상의 말씀이 옳은 줄 아옵니다. 전시에는 장수를 문초하는 법이 아니온 데, 하물며 수군을 폐하는 조치는 어떤 사료에도 찾아볼 수 없는, 명백히 잘못된 처방이 될 것이옵니다. 엎드려 바라옵니다. 명나라 장수의 품의(稟議)를 고려하지 마옵소서. 이번에는 좌의정 육두성이 병조판서와 영의정의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상감마마의 혜안을 신들이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니 그 죄가 참으로 무겁나이다. 이제 수군의 참패로 사기가 엉망인데 보다 새롭게 일신하고자 하는 계기가 필요한 법이 아니옵니까? 수군의 보직을 변경하여 육군으로 편입하는 것이 매우 지당한 줄 아뢰옵니다. 좌의정의 말씀이 백 번 마땅한 줄 아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선조의 판단대로 신하들은 양분되어 각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수군폐지는 사실상 선조 역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소득이었다. 바다를 수호하는 영웅으로의 이순신은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진작 이런 방안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선조는 내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수군을 폐지하는 것이 어떻겠소? 선조의 어조에는 이미 당연한 결과를 내포하고 있었다. 중신들에게 의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를 은근히 드러내어 교묘하게 자신을 방어하는 수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미 신하들에게도 익숙한 행동이었다. 조선 수군을 폐하라는 말씀이시옵니까? 상감마마, 그것은 어인 하명이시옵니까? 왕의 발언에 경악한 대신들이 저마다 놀란 시선을 가늠하지 못하며 전전긍긍 하였다. 선조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머물렀다. 명나라 장수 마귀가 내게 장계를 올렸소이다. 대신들의 눈빛이 일제히 도승지 오억령에게 몰려들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는 시선들이었다. 도승지는 고개를 가볍게 숙임으로 왕의 발언을 입증하였다. 그 내용이 조선 수군의 폐지를 주청하였사옵니까? 신임 병조판서로 임명 된 이덕형이 조심스럽게 질의를 하였고 왕 선조가 답변하였다. 우리 수군은 이미 완전 궤멸 당하였소. 산산이 조각난 파편 쪼가리로 변했소. 그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소? 도원수의 장계에 의하면 우리 판옥선은 고작 12척 뿐이라 하오. 남해바다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뱃놀이 뿐이오. 적은 500 척이 넘는 군단을 이루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정도령의 행동은 역시 빨랐다. 수고했소. 지금쯤 도달해 있을 것입니다. 나가 봅시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순신은 상대방의 제지에 몸을 반쯤 일으키다가 멈추었다. 무슨 일이오? 정도령의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약속해 주십시오. 실망하지 않겠노라고. 이순신은 대범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얼마나 더 실망을 하겠소? 염려마시고 앞장서시오. 정도령의 뒤를 따라 나가는 이순신은 사실 마음 한 구석이 상당히 불안하였다. 칠천량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병사들이 소집이 절대적이었다. 남아있는 판옥선 13척에 탑승하기 위한 병사의 숫자는 격군을 제외 하고 칠 백 여명 가량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수영의 뜰에는 고작 70명의 병사가 도열해 있을 뿐이었다. 허! 이순신은 탄식이 토해졌다. 정도령은 이미 이런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의 얼굴 표정은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첨사 이순신이 매우 송구한 듯 고개를 조아렸다. 장군, 수영에 남아있던 수군 병사들은 일본의 기습을 받아서 죽었고, 나머지는 탈영(脫營)를 감행 했습니다. 그래서 겨우 여기 남아있는 수군들만 모아봤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70명의 병사들을 가지고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그럽시다. 이순신은 마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정도령이 가볍게 고개 숙여 사례를 표하자 이순신이 되물었다. 뭐가요? 정도령은 해맑은 동공으로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소생을 믿어 주셔서 말입니다. 믿음이 있으시기에 대답이 가벼운 것 아닙니까. 그렇소. 정도령이 이미 나에게 언질해 주지 않았소. 적들을 분쇄(粉碎)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노라고. 일본 본토라도 공격할 자신이 있다고 말이요! 그걸 믿어 주셔서 감복할 따름입니다. 정도령을 신뢰하지 못하면 서애 대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요? 서애 대감이 천거한 도령에게 신선의 도도한 향기가 느껴지는 걸 어쩌겠소. 아주 짧은 순간에 정도령의 눈빛에 이채가 반짝이다가 사라졌다. 역시 대업을 성취할 수 있는 안목과 자질을 지니고 계십니다. 주군(主君)께옵선. 주군이라? 이 호칭은 이순신의 가슴을 몹시 설레게 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내색하지 않았다. 그건 날 칭찬하는 것이지요? 비꼬는 것은 아니지요? 이순신이 반갑게 웃었다. 정도령은 그러나 웃지 않았다. 아부하는 겁니다. 절대 아부용입니다. 정도령의 아부라면 그냥 받겠소이다. 하지만 누구를 막론하고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날 설득하러 온다고요? 그렇습니다. 장군을 만류할 것입니다. 홍의장군은 신념이 대단한 분입니다. 장군의 혁명을 절대 지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정도령은 이순신의 안색을 살피면서 곽재우의 동향에 대하여 설명했다. 이순신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알고 있소. 망우당은 그런 분이요. 망우당 곽재우를 이순신이 어찌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의 인품과 충성심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순신의 뇌리에 각인(刻印)되어 있었다. 설득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아니요. 자신은 없소. 이순신은 희미한 미소를 던졌다. 조선 최고의 의병대장 홍의장군 곽재우의 애국적 항변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곽장군에게 설득 당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 분을 설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반드시 필요한 분입니다. 정도령은 나지막한 음성으로 주문했다. 이순신은 즉답을 피하였으나 상대방의 의도는 충분히 공감을 하고 있었다. 조선에 대한 곽재우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그것은 이순신의 행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명성만으로도 적지 않은 의병들을 모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아버님에 관한 소식을 혹여 들으셨는지요? 다행스럽게도 통제사에 복귀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지. 얼마나 가슴이 놓이던지 그 날 술을 거하게 마셨네. 흥이 올라서 말일세. 소생도 이리로 오기 직전에 아버님의 재임용에 관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원균장군의 패전에 대해서도 역시 알고 계시겠지요? 곽재우의 시름이 깊어졌다. 물론일세. 적의 함정에 빠져서 참담한 일을 당했다고. 수군의 전 함대가 몰살당했습니다. 아버님이 다시금 수군 지휘에 올랐으나 이미 조선의 수군은 예전의 수군이 아닙니다. 병사들은 사기가 땅에 떨어졌으며 함대를 운용할 병선의 숫자는 십 여 척에 불과합니다. 그때의 강력했던 조선 수군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관절 아버님이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적들을 상대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현실임이랴 어찌할 것인가? 나 또한 답답하지만 방도가 없구나. 아니옵니다. 장군, 방법이 있습니다. 곽재우의 눈에서 이번에는 신광이 번뜩였다. 방도가 있다고? 사용해 보시겠습니까. 이장군에게 필요한 것을 내게서 찾고자 하는 것인가. 옳으신 판단입니다만 곽장군의 도움이 절대적이라 하셨습니다. 곽재우는 잠시 상념에 잠기는 모습이었다가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