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대천덕 신부님의 부인(제인 그레이 토리, 한국이름: 현재인)은 그림을 공부했는데 학창 시절 대학의 메이퀸이었다고 한다. 제인은 1940년 여름 미국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 청소년 모임에서 아쳐를 처음 만났는데, 제인의 기억에 아쳐는 매우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쳐는 기독교인이면서도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고 그가 종종 보내온 편지에는 ‘제인과 함께 티베트로 건너가 천막촌 생활을 하면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다. 제인은 “아쳐가 나의 반려자일까 고민했었는데, 하나님이 어느 날 정말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화가로서의 꿈도 있었지만 아쳐와 함께 하는 삶이 더 소중하고 아름다울 것 같아서 아쳐와 결혼했다”라고 말했다. 그들 부부는 혼인하고 한 번도 싸우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하는데, 예수원에서 두 사람이 같은 방을 쓰면서도 서로 바빠서 오후 4시 반 차담 시간에나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고 한다. 숙소인 석송관에 도착하여 이층 침실로 올라가 보니 군대 내무반식으로 마루를 깔았고, 한쪽에 베개와 이불이 쌓여 있다. 베갯잇과 이불보에 베개와 이불을 넣어서 이틀 동안 사용할 침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망자(亡者)여, 하직하고 이승을 넘어가자 장가 못 가고 목메어 죽은 몽달귀신도 데려가고, 죽으나 사나 측간에 사는 측간 귀신도 거두어 가자. 빡빡 얽어라 곰보딱지 마마귀신도 데불고 가면 살아서 못 이룬 복록(福祿) 저승에서 누리리라 < 해설 > 이런 초상 치르고 나면 있는 집에선 으레 진혼굿을 한다. 저승 가지 못한 원혼 떠돌다 꿈에도 나타나고 되는 일도 없다고 무당은 한몫 잡을 궁리 한다. 하긴, 이런 풍습이 꼭 나쁘다 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혼령 달래어 산 사람 마음 편하다면 댓가지에 요령 흔들고 작두 타면 또 어떠랴. 기실 이런 광경은 하나의 축제처럼 볼거리도 제공한다. 원혼이여, 가시려거든 몽달귀신, 측간귀신, 곰보딱지 얽게 하는 마마귀신도 데불고 가소. 두런두런 이런 중얼거림을 중장에 늘여 써 사설시조 한 수로 엮어 보았다.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세종대왕은 그야말로 하늘이 낸 사람이었습니다. 세종임금 때의 일을 기록한 《세종실록》의 분량은 전체 조선왕조실록의 10분의 1을 차지하며 현재 400쪽짜리 40권으로 번역되어 있다고 하니 세종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업적 가운데 훈민정음 창제는 다른 모든 일을 합한 것보다 더 크고 더 중요했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해석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온갖 환난을 이기고 세계 유수의 부강한 나라로 발전한 것은 세종대왕이 닦아 놓은 기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글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이끌어갈 원동력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같이 위대한 훈민정음의 창제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전번 네 번째 이야기에서 우리 조상들이 1만여 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살면서 우리 말을 가꾸고 이를 글자로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과 정성을 들였는지를 엿보았습니다. 이 염원은 세종대왕으로 이어져 백성들이 글을 읽지 못해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알지도 못하는 법을 어겨 벌을 받게 되는 것을 세종대왕은 한없이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1418년 22살의 나이로 즉위한 세종은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만인이 공감하는 자녀에 대한 기본적인 욕망은 건강한 몸과 똑똑한 두뇌라 할 수 있다. 한의학은 기본적으로 정기신(精氣神)의 학문이며 정신(精神)개념부터 이를 기르고 보존하는 방법에 대하여 온전한 틀을 가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똑똑한 아이를 위하여 한의학적 개념에 대해 알아보고, 엄마와 아빠, 한의사가 거들어 주는 방법으로 어떠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다. 1. 총명과 청뇌의 정확한 뜻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떨칠 수 없는 욕심이 2가지 있을 수밖에 없다. 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 하나와 내 아이가 똑똑하게 자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정도(正道)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이때 도와줄 수 있는 부분,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부분을 한의학적 관점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총명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데 총명은 ‘이총명목(耳聰明目)’에서 유래된다. 곧, 이총명목이란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이총은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귀 밝아 정확하게 듣고, 남의 얘기를 잘 들을 줄 아는 것으로 귀가 얇거나 팔랑 귀를 벗어나 아부와 충언을 구분하고 감언이설에 현혹되지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돼지 잡고 전 부치니 동네잔치 따로 없다 원근 각설이들 떼 몰려 들어온다 조문은 나중 일이고 술 한 잔이 우선이다 발인이다 발인이야 소리꾼 괭쇠 소리 상주 백관 뒤따르고 꽃상여 길 떠나자 꽃잎은 난분분 지고 청산은 푸르러 온다 어이호, 어어이호 어화넘차 어이허호 앞소리꾼 매김 따라 상두꾼 상여 어를 때 명정대(銘旌帶) 용머리 얹고 붉은 깃발 요란하다 < 해설 > 큰어미 죽고, 갓난아이 죽어 쑥대밭 된 마을이지만 그래도 형식은 갖춰야 하니 발인하고 상여 메어 묏자리라도 봐야지. 상주 백관은 곡하고, 여기저기 문상객도 찾아와 그런대로 상갓집 분위기는 난다. 아무리 원통한 죽음이라도 마냥 슬픈 울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 복 누리고 오래 살다 떠난 사람이라 해도 호상(好喪)이란 없다. 이 상가는 어처구니없는 애사이니 문상객인들 뭐라 할 말 있겠는가. 어쩔거나. 이제 와 후회해도 무슨 소용이랴. 죽은 이는 죽어서 잊히고, 산자는 살아서 또 한 세상 사는 것을. 그래서 돼지도 잡고 전도 부친다. 이 가족에겐 슬픔이지만 각설이들에겐 거룩한 잔칫날이다. 이런 날 어찌 걸인이라고 내쫓을 수 있을 것인가. 지지고 볶은 음식일랑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연구 작업 도와 성삼문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크게 도왔다. 창제 시에도 도왔지만 세종 25년 청제 이후 언어학적인 구성체계를 확인하기 중국의 학자와 만나 음운 법칙을 검증하게 했다. 세종 27년(1445) : (집현전 부수찬 신숙주 등에게 요동에 가서 운서를 질문해 오게 하다)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와 성균관 주부(注簿) 성삼문(成三問)과 행사용(行司勇) 손수산(孫壽山)을 요동에 보내서 운서(韻書)를 질문하여 오게 하였다 (세종실록 27/ 1/ 7) 이런 작업은 그 활용에서도 오류가 없게 하려고 세종 28년 반포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세종 32년, 1450년 성삼문ㆍ신숙주ㆍ손수산 등에게 명하여 운서를 사신에게 묻게 하다) 직 집현전 성삼문(成三問)ㆍ응교 신숙주ㆍ봉례랑 손수산(孫壽山)에게 명하여 운서(韻書)를 사신에게 묻게 하였는데, 삼문 등이 관반(館伴)을 따라 뵈니, 정인지가 말하기를, "소방(小邦)이 멀리 나라 밖에 있어서 바른 음(音)을 바로 잡으려 해도 스승이 없어 배울 수 없고, 본국의 음(音)은 처음에 쌍기학사(雙冀學士)에게서 배웠는데, 그 역시 중국 복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차를 타기 전 대합실에 있는 책방에서 산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를 읽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칼슨이라는 심리 치료사인데 이 책은 1997년 저작으로 미국에서 55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사소한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내용의 짧은 글들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직면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당시에는 엄청나게 중요하고 그 일의 결과에 따라서 세상이 크게 변할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모두 사소한 일이고 세상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거나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며칠 전 아내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아내는 여섯 자매 가운데 둘째니까, 언니 하나에 여동생이 넷이나 된다. 자매가 많다 보니 여러 가지로 좋은 일 나쁜 일이 일어난다. 최근에는 둘째 여동생과 무슨 일로 서운했다고 이야기했었다. 자기가 동생을 생각하는 만큼 동생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는 3남 4녀의 장남인데, 역시 형제자매 간에 희로애락이 많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세상살이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우리는 매일 한글의 덕을 보며 살고 있습니다. 참 좋은 글자구나 하고 느끼고 이에 대한 자부심도 큽니다. 그러나 혹 외국인이라도 만나면 한글을 누가 어떻게 해서 만들었는지, 글자로서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소리를 표기하는 원리는 무엇인지 등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직접 서문을 쓴 《훈민정음해례》라는 책이 있어 이런 문제가 없는데 한글에 관해서는 마땅한 책도 없습니다. 앞에서 인류가 5,500년 동안 문자를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를 보았는데 이 글에서는 우리 조상들이 어떤 문자생활을 해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훌륭한 훈민정음을 갖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2만 년 전에 정점을 찍고 그 뒤 1만 년 동안 온도가 차차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간에 인류는 해를 쫓아 따뜻한 동쪽으로 이동하여 결국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주로 북쪽의 중앙아시아와 남쪽의 인도 남부로부터 왔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1만 년이 넘는 이 긴 세월을 더 이상 큰 이동 없이 한반도와 인근에서 농사나 수렵으로 살면서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어 살아 온 것입니다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우리의 생명활동은 낮의 활동과 밤 수면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정(精)에서 신(神)으로 가는 과정은 낮의 활동이며 신(神)에서 정(精)으로 가는 과정은 밤의 수면상태다. 이때 이를 조절하면서 중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한방에서 말하는 기(氣)의 작용이다. 이것은 육체적으로는 심장의 혈액순환이며 정서적으로는 마음의 작용이다. 정신(精神)이 정상적으로 순환이 이루어지면 낮의 활동도 왕성하며 밤의 숙면도 깊어지게 된다. 그런데 정신의 순환이 원만하지 못할 때는 이러한 순환을 조절하는 중간 매개자의 역할이 중요하게 된다. 이에 따라 양질의 수면은 의식과 무의식의 안정(安定)과 건강한 몸에서 이루어지는 정(精)의 튼실함에서 이루어진다. 반면에 수면이 온전치 못할 때는 이를 조절하는 심장의 튼튼함, 마음의 강약에 따라 불면을 겪거나 숙면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심장, 마음의 총칭을 심(心)이라 했을 때 심(心)의 상황에 따라 수면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면이 불안정해지는 상태, 곧 잠드는 것이 오래 걸리거나 수면 유지가 어렵거나 꿈을 많이 꾸거나 아침에 힘들게 일어나는 현상 등이 드러날 때 이를 도와주는 것도 심(心)이
[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잘 가소 훌훌 털고 다 잊고 떠나 가소 죄 있다면 이놈의 시상, 여자로 난 게 한 가지 죄요, 서방 복 못 타고난 게 두 번째 죄요, 대 이을 자식 바란 일이 죄라면 세 번째 죈데, 곰곰 생각하니 전부 사내가 엮고 사내가 비튼 여자의 운명이오. 다음 생엔 할멈이 맹글고 뚜르르 울리는 시상에 태어나 정승판서도 해 보고 꽃미남 기방에 불러 꺾고 만지고 빨아도 보소. 미련 둘 무엇도 없는 이승 하직 하구려 객사에 상주 없는 쓸쓸한 장례지만 발상(發喪) 고한 후에 만가(輓歌) 한 줄 지어 읽고 안동포 고운 수의하여 향나무관에 모시리다 < 해설 > 독자 여러분, 이제 슬슬 오광대놀이의 결말이 보입니다. 별사라니, 떠나는 이에게 보내는 노래를 부른다. 여자로 난 죄니 다음 세상에선 팔자나 바꿔 태어나라고, 그것도 마지막 고별사라고 고개 주억거리며 중얼댄다. 이 노래 같지 않은 노래가 혼령 위로하는 만가인가? 행랑에 든 엽전들 모두 긁어모아 안동포 수의 입히면 무엇하나. 향나무 관에 고이 누인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여자의 생이 이리 비극만 있을까. 난봉꾼 남편 만나는 순간, 여자 팔자 이러구 마는 것이지. 이제 곧 발인하여 상여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