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이 글에 앞서 서이초등학교 교사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학교 교보재 준비실에서 지난 7월 18일 아침 10시 30분 안타까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또다시 날 선 대립을 하고 있다. 무너진 교권 앞에서, 앞으로 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방황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지만, 현재 교단에 서기까지 18개월 아이들부터 88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던 사람으로서, 지난날 경험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신입 강사 시절, 한 유명 사립유치원에서 단체 수업을 하고 있는데, 유난히 말썽꾸러기였던 아이가 문밖에서 계속 수업을 안 들어오겠다며 장난을 쳤다. 그 아이만 신경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한 필자는 수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행히 아이는 교실에 들어와서 수업에 참여하였지만, 학부모 민원으로 이어져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다. 원장님은 그런 곤란한 상황에서는 다른 교사들이나 원장님께 도움을 청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필자는 돌발상황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알게 되어 하나를 더 배웠
[우리문화신문=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서양말 ‘에듀케이션(education)’을 한국말로 뭐라 옮기면 좋을까?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보듯이 ‘敎育’을 '교육'이라 읽고 쓰는데 이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흔히 맹자의 '得天下永才而敎育之(천하 영재를 모아 가르치고 기른다)'에서 유래했다지만 과연 그럴까? 일본은 오쿠보 도시미치, 후쿠자와 유키치, 모리 아리노리 세 사람이 ‘education’을 ‘敎育’으로 뒤쳤다.(번역) 모리 아리노리(森有禮-초대 일본 문부대신)가 활약한 메이로쿠사(明六社, 메이지 시대 초기에 설립된 일본 최초의 근대적 계몽 학술단체)에서 한 일이다. ‘교화’(敎化)를 내세운 오쿠보와 ‘발육’(發育)을 말한 후쿠자와 말을 듣고서 모리가 교화와 발육에서 한 자씩을 따 와 ‘교육(敎育)’이라 제안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새로 만든 ‘교육’은 조선에서 썼던 ‘학부(學部)’의 ‘학’과 견주어 볼 수 있다. 조선은 6부 가운데 하나였던 ‘예조(禮曹)’를 학부라 바꾸고 대한제국(1897~1910) ‘학부령’에서 보듯이 ‘배움(학)’을 써 왔으나 누에가 뽕을 먹듯 ‘학(부)’이란 말 대신 일본말 ‘교육’이 똬리를 틀었다. 교육강령이라고도 부르는 조서(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