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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경주 쪽샘지구와 월성지구 문화재 발굴 현장을 가다

[우리문화신문=조판형 기자] 경주 쪽샘지구 고분 발굴 현장과 월성지구 왕궁 발굴 현장을 살펴 보았다.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은 사적 제512호인 경주 대릉원 일원에 소재한다.

     
 
   
▲ 44호분 1
     
 
   
▲ 44호분 2

경주시는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의 하나로 쪽샘지구(대릉원동쪽) 일대를 정비하여 고분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기초자료 확보를 위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발굴조사를 의뢰하였다.

이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최근까지 조사된 쪽샘지구 일대의 발굴조사 성과를 참조하여 조사범위를 설정하고 2007년부터 발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쪽샘 44호분은 삼국시대 신라의 무덤으로 적석 목곽분으로 발굴 현장 모습이다.

 

   
▲ 44호분 3

   
▲ 쪽샘 유적 발굴관

경주월성(月城)은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왕궁으로 자연적인 지세를 최대한 활용하여 흙과 돌로 쌓은 성이다. 모양이 반달과 같아서 반월성(半月城), 또는 신월성(新月城)이라 부르기도 하며, 왕이 있는 곳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 하기도 한다.
 
이 월성은 원래 신라의 중신 호공(瓠公)이란 사람의 거주지였는데, 땅의 지세가 좋은 것을 보고 탈해(脫解)가 꾀를 부려 차지하였다는 설화가 있다. 석탈해가 임금이 된 이후부터 월성은 궁성의 역할을 하게 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파사왕(婆娑王) 22년인 101년에 성을 쌓았으며, 문무왕 대에 이르러 안압지(雁鴨池)와 임해전(臨海殿), 첨성대 일대가 편입되면서 크게 확장되는 등 신라의 중심지가 되었다.

 

 

 

 

 
▲ 월성지구 1
 


 
 
▲ 월성지구 2
 
   
▲ 월성지구 3

원래 월성 안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었으나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만든 석빙고만 남아 있다. 월성의 동서 길이는 약 900m, 남북 길이는 약 250m이며, 성 안의 면적은 약 19만 8,000㎡에 이른다.

사적 제16호이며, 경주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월성 내부 발굴조사는 작년 12월 시작됐다. 조사 대상지는 경주시 인왕동 387-1번지 일대로 성벽 9만9천㎡와 성내 10만8천㎡를 합쳐 전체 면적이 20만7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