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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히말라야의 눈물, 카슈미르에도 봄은 온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76]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라 카페 갤러리에서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카슈미르의 봄>이 열리고 있습니다. ‘카슈미르’라면 요즘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영토 분쟁이 있는 곳 아닙니까?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할 때, 카슈미르 지도자 하리 싱이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들인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인도에 붙음으로써 분쟁이 시작되었지요.

그 동안 박 시인은 팔레스타인, 쿠르드, 인도네시아 아체 등 분쟁과 슬픔이 있는 땅을 찾아다니며 그곳에 평화와 나눔을 전해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삶을 사진에 담아 전시회도 여러 차례 열었는데, 이번에는 카슈미르를 사진에 담아오셨군요. 박 시인은 디지털이 대세인 요즘도 아날로그 사진에 시인의 감성을 담습니다. 그것도 주로 무채색의 흑백 사진으로 담아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박 시인의 무채색 아날로그 사진에서 시인의 감성을 읽어내고, 박 시인의 사진을 ‘빛으로 쓴 시’라고 부르곤 합니다.​

 

   
▲ 히말라야의 눈물, 카슈미르 (사진 박노해 시인)

 

시인은 무굴제국의 황제 제항기르가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카슈미르가 바로 그곳이다.”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땅이 인간의 욕심에 의해 슬픔의 땅으로 변해버린 것에 안타까워합니다. 그렇기에 사진집 맨 처음에 실은 사진에 <히말라야의 눈물, 카슈미르>라고 제목을 붙이고 이렇게 글을 붙였습니다.​

“만년설이 빛나는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한 카슈미르. 수천 년간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해온 문명의 교차로이자 서로 다른 인종과 종교와 문화가 어우러진 평화의 땅이었다. 그러나 지금 카슈미르는 수십만 명을 삼켜버린 전쟁의 땅. 영국 식민지배가 심어놓은 힌두와 이슬람의 갈등은 인도-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영토 분쟁으로 이어졌고, 인도군은 카슈미르인들의 독립 운동을 탄압해왔다. 그럼에도 이 땅을 일구고 아이를 기르며 살아온 사람들. 햇빛에 반짝이는 작은 집들은 히말라야의 눈물방울만 같다.”

시인은 저 계곡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집들을 보며 히말라야의 눈물방울을 떠올렸군요. 안타깝게도 지금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로 카슈미르를 양보할 생각이 없으므로, 저 히말라야의 눈물방울은 언제나 마를 것인지 기약이 없어 보입니다. 이런 눈물의 카슈미르에도 희망을 심는 사람이 있네요.​

‘천 그루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사진인데, 사진 속의 남자는 30년 동안 빈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왔답니다. 그 가운데 천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았답니다. 남자는 말합니다. “절반은 싹도 트지 않고 또 절반은 말라 죽고, 그중에 소수의 나무만이 기적처럼 자라났지요. 척박한 비탈에 심어진 나무들에게 미안하고, 이 엄혹한 땅에 살아갈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하지만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기만 한다면 이 얼어붙은 땅에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요.”​

 

   
▲ 천 그루의 나무를 심은 사람(사진 박노해 시인)

 

시인은 나무 심는 남자의 말에 감명을 받았는지, 사진에 대한 글에서 뿐만 아니라, 사진집 맨 앞에서 이렇게 읊습니다. ​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그래요! 우리는 보통 ‘내가 하는 작은 일이 무슨 효과가 있으랴?’ 하며 소극적인 경우가 많은데, 시인은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이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라고 힘주어 말하는군요. 사진전의 제목을 있게 한 사진 ‘카슈미르의 봄’도 황무지에 얼마 안 되는 앙상한 나무들이 있는 사진입니다.​

 

   
▲ 저 산등성이에 나무를 심으로 가는 아이들이 보인다.(사진 박노해 시인)

 

사진 위 산등성이에 사람 2명이 보이지요? 나무 심으러 가는 카슈미르의 아이들입니다. 시인은 아이들이 가난과 공포와 총칼의 공기를 가르며 자신들이 살아갈 희망의 나무를 심으러 간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3월의 빈 가지에 첫 아몬드 꽃이 필 때 시인은 새로운 세상이 걸어오는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합니다.

<카슈미르의 봄> 사진집을 계속 넘겨봅니다. 사진 하나 하나가 저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어느 것 하나 그냥 눈길을 넘기기에 아까운 사진들이지만 마지막으로 사진 하나만 보여드리겠습니다. ‘굳은 땅에 숨결을 불어넣다’는 사진으로 사진 속에서 여인들은 달 호수에서 건져 올린 진흙과 수초로 천연비료를 만들어 땅 힘을 북돋고 있습니다.​

이 여인들은 남편의 생사를 모른답니다. 1990년대부터 인도군이 카슈미르의 남자들을 납치하여 하루아침에 남편의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 여인들이지요. 시인은 사진 설명에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서로 기대고 보살피면서, 강인한 생의 의지로 굳은 땅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카슈미르의 봄’ 희망을 봅니다.​

 

   
▲ "굳은 땅에 숨결을 불어넣다", 나면의 생사를 모르는 여인들의 나무심기(사진 박노해 시인)

 

사진전은 6월 29일까지 합니다. 한 번 시간 내어 라 카페 갤러리(서울 종로구 백석동 1가길 9, http://www.racafe.kr/)에서 하는 <카슈미르의 봄>을 보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관람시간 오전 11시 – 오후 10시, 단 매주 목요일 휴관) 저도 나눔문화에서 보내준 사진집만 보았지만, 꼭 한 번 보러 가야겠습니다. 더구나 ‘라 카페’에서 직선거리로 43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백사실 계곡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후 백사실 계곡을 돌아보면서, 서울 시내에 이런 계곡이 있었냐며 놀라워하던 그 계곡입니다. 저 역시 처음 백사실 계곡에 들어섰을 때 마찬가지로 놀라워하였었지요.​

끝으로 박시인이 카슈미르의 강인한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 입장에서 쓴 시의 구절을 읊조리며 제 글을 마치겠습니다. 시인은 사진 설명에서 창밖에는 거센 눈보라가 휘날리는데, 남편을 잃은 카슈미르의 어머니는 오늘도 불같은 사랑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이 젖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딸아 사랑은 불 같은 것이란다.
 높은 곳으로 타오르는 불 같은 사랑.
 그러니 네 사랑을 낮은 곳에 두어라.
 아들아 사랑은 강물 같은 것이란다.
 아래로 흘러내리는 강물 같은 사랑.
 그러니 네 눈물을 고귀한 곳에 두어라.
 히말라야의 흰 눈처럼 언제까지나
 네 마음의 빛과 사랑을 잃지 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