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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십시오, 김진룡 교수님

조선어 언어학자 김진룡 교수 고별사

[우리문화신문=현용운 회장]  또 한 분이 타계하셨다. 조선어신식학회는 대선배를 잃었고 현용운은 평소에도 그렇게 존중해 마지않던 스승을 잃었다. 2016년 4월 14일 전임 연변대학 한어학 교수이고 조선어신식학회 창시자이시며 저명한 현대응용 언어학자이신 김진룡 교수가 유명을 달리하셨다. 항상 정의감이 있고 불의에 대하여서는 참지 못하는 김 교수님이셨고 폐암 말기에도 아주 쾌활하게 병마와 싸우시던 멋쟁이 노장 김진룡 교수, 악독한 병마는 우리 김진룡 교수를 끝내 하늘나라로 데려갔다.

 

   
▲ 김진룡 동지 고별 의식- 2016년 4월 16일 중국 연길

금년 초에 내가 병문안 갔을 때만 해도 아주 긍정적이고 유쾌하시던 김진룡 교수, 안부를 물으니 ”금방 난 애들도 요절하는데 내 이만하면 오래 살었지.” 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더욱이 나의 아내 장명자의 집적 스승이었기에 노상 현용운을 “내 제자의 남편”이라고 하시면서 아주 아끼고 챙겼기에 나는 김 교수 앞에서는 아주 조심스레 행동하였다.

때론 성깔머리 부리는 과분한 처사를 하면 아주 부드럽게 타일렀지만 제자인 우리 마누라한테 술을 많이 마셨다던가, 남북사이의 민감한 사안들을 처리할 때 있었던 무리한 행동들을 ”통보해서” 몸 둘 바를 모를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네 남편을 잘 챙기라는 부탁은 해마다 전하곤 했다.

2010년 11월 22일 동숭학술재단(이사장 김민수)은 제14회 동숭학술상 수상자로 로버트 램지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 김진룡 중국 칭다오 빈하이 대학 초빙교수, 정진권 한국체대 명예교수를 선정했다. 램지 교수는 저서 등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데 이바지했으며, 김 교수는 한글 정보교환 국제화와 남북 전산용어 통일, 정 교수는 교육용 기초한자 제정에 이바지했다고 재단은 설명했다.

김진룡 교수는 한국 경북 울진 태생인데 반세기 전 중국 만주에 온 이산(디아스포라) 제1세대 학자이다. 연변자치주 화룡에서 연길로 오셔서 1980년대부터 한어학과 교수로 있었다. 1987년 연변 전자정보센터에서 김진룡 교수와 최명수(작고) 선생 그리고 나는 중국 조선어 정보교환용 코드집을 만들었다,

이는 남북을 뺀 나라밖에서는 첫 번째 표준이다 한어학이 전공인 분이 늦은 나이인 1984년부터 컴퓨터공학을 다시 섭렵한 학자이며 1996년에는 명저 《현대응용언어학》 1,2부를 집필했다 이처럼 정확하게 논문을 쓰고 한국어를 중국어로 번역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

 

   
▲ 명저 《현대응용언어학》 1,2부

김진룡 교수는 2000년 진용옥 교수의 주선으로 경희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근무한 적이 있다. 고 서정수 회장, 고 공병우 박사님과 한국어 정보학회 전임 회장이신 진용옥 경희대 명예교수하고도 많은 친분이 있었고 조선의 김영황 교수, 문영호 원사, 한국의 홍윤표 교수, 최기선 교수와 교류를 해왔으며 박경윤・고문자 교수와는 같이 근무했다

2001년 여름 나는 서울을 방문했는데 경희대학에서 연구를 하시던 김진룡 교수는 수원에서 서울 남영동 호텔까지 오셔서 “우리 제자 남편한테 한턱내신다.” 했다.

나는 맛 좋은 북어국에 대포 한잔 보기 좋게 마셨지만 선생께서는 음료만 드시고 남영역에서 헤어질 때 내 주머니에 봉투하나 쑥 밀어 넣어주시면서 중국 갈 때 애들한테 선물이나 사가라 하시고는 거절할 사이도 없이 노구[老軀]를 달려 지하철로 달려가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사실 이튿날 귀국하는 내 지갑은 이미 텅텅 비였는데 김 교수가 주신 한국돈 십 만원 때문에 500원 짜리 볼펜 세 상자와 책들을 사서 돌아와 체면을 세웠다.

2001년 2월 22일 연길 개원 호텔에서 남・북・중・나라밖 한국어정보처리 국제회의가 성황리에 열렸다. 이 모임을 위해 나는 평양을 두 번이나 갔다 왔다. 조선 과총 박영신 서기장, 김정부 대외 사업부장, 미녀여성대원 김영성 국규위원회 대표, 조선의 거물급 언어 문자학자 김영황 김일성 종합대학 교수, 리수락 박사 등등 대표단과 조선 문예총 사진가 동맹 허병석 서기장[나중에 렌즈로 본 조국의 사진전 개최 계기], 김춘일 대외사업 부장 등 방대한 대표단을 중국 연길이라는 변방소도시에 불러왔었다.

남녘에서 한글을 ISO에 등재하자 북녘은 1995년부터 항의하여왔다 북에서는 조선글, 중국에서는 조선문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ISO에서 이 문제를 특임조직에 위임했다. 우리는 ICMIC 국제학술회의에서 특임조직회의[ad-hoc WG)를 열었다. 난상토론이 벌어지고 새볔 4시가 되어도 끝날 기미가 없었다. 남녘의 대표 진용옥 교수는 훈민정음에서 훈민을 뻬고 정음으로 하자는 제의를 했다.

갑자기 회의 분위기가 돌변하고 참여자 모두가 동의하게 되자 기술표준원 홍종희 국장이 한국의 청와대에 전화로 보고한 뒤 남・북・중 특임 대표6명이 서명을 하였다. 중국 대표인 나와 최명수 선생은 북경의 훈령도 들을 새 없이 일단 서명하였다 내가 맨 먼저 서명하고 나니 최 선생은 “야, 이거 참참…” 하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시던 일 지금도 머리에 선하다. 베이징의 훈령도 없이 국제기구로 가는 문서에 서명한 셈이었다.

그때 꼴통 역을 한 남측 표준분야 선수의 태도가 정말 지겨웠다. 결국 그 날 그 서명한 문서를 근거로 남・북・중 대표가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 가게 되였지만 전문가가 없는 중국 쪽 대표파견에 문제가 생겼다.

급기야 진용옥 회장한테 비싼 국제전화를 하였다, 한국 경희대 체류중인 김진룡 교수를 한국주재 미 대사관에 가서 미국 행 비자를 받고 미국 행 중국 대표로 파견하는 긴급 조치를 취했다 김교수가 서울에서 중국 대표로 미국행 비자를 받고 샌프란시스코를 날았다, 중국 조선족 학자대표의 국제기구회의 첫 참석의 쾌거였다. .

그때 김진룡 교수가 미국서 내게 메일 보냈는데 코드 변환으로 문자가 깨질까봐(아직도 우리말과 글은 국제표준화가 못 되었다.) HWP도 아니고 MS워드 영문도 아닌 중국어 병음으로 전문을 날려와 미국서 온 편지 그 내용을 내가 왈왈 읽어 대는 걸 본 연변 과협의 많은 사람들은(메일을 처음 보는 터라) 나를 영어의 달인으로 알고 뒤에 많은 번역청탁이 오는 난리가 있었다. 실은 소학교 3년생이면 다 판독할 한자 병음 전송인데 내가 읽고 비서가 한자로 다시 적으니 영문 문서를 줄줄 통번역한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 편지 내용에 두 구절을 적어 본다.

--- 현 부장(그때 내가 연변 과협 국제부장직을 겸직하였었다), 여기 미국의 국제회의에서는 연회나 술 파티도 없고, 여기서 실리콘 벨리에서 양복 정장에 넥타이 매고 다니면 깡패 아니면 중국사람이라고 합니다. 국제회의만 하면 술판이 벌어지는 우리 동양사람들이 좀 배워야 하겠습니다……”

 

   
▲ 2015년 중국조선어국가기술표준 공작조 창립 예비회의에서 공작소조 설립을 견연히 지지한다는 말을 하는 김진룡 교수

2005년 쓴 논문 ‘중국 조선어 정보기술표준 제정의 제반 문제에 대하여’라는 앞을 내다보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 논문에서 제기한 입력장치의 표준은 KSX1026으로 실현되었지만 아직도 불완전하기에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러나 쪽 글판 옛 자모 입력기는 아직도 실현 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외 나와는 세편의 정보기술 표준화 국제, 국내 협력에 관한 논문을 공저했다.

진용옥 교수는 한글의 두루누리 쓰임새[세계화를]를 위하여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으로 정음한글을 가지고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자연언어보다는 인공기계언어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어 표준화 정보화에 주력했다 그 결과 1990년대부터 미국에서 김남길, 김석연 교수, 안마태 신부 그리고 중국에서 김진룡, 문창덕 편심, 최명수 주임, 현룡운, 김호범 교수 일본의 사와 교수였다.

그런데 최명수와 문창덕 교수는 벌서 타계하신지 5~6년 넘었고 이제 김진룡 교수와 김석연 교수도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앞으로 누구하고 이 문제를 상의한단 말인가? 존경하는 김 교수님이시여! 이제 남은 일은 진용옥과 현룡운 둘이 헤쳐 나갈 테니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고 지켜봐 주시옵소서.

상향
진용옥, 현룡운 돈수배례 2016/04/17

진용옥(전 경희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장-명예교수), 현룡운[중국 조선어정보학회 회장]
공동 작성

 

 

  김진룡 교수 논문 요약
  “중국 조선어 정보기술표준 제정의 제반 문제에 대하여”

 

이 논문은 중국조선어정보기술표준에 대하여 기술한 것이다. 중국조선어표준은 중국표준의 범주에 속하므로 독자적 표준이 필요하지만 한국과 조선의 사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양 지역의 표준이 서로 다른 경우는 중간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오히려 제3의 표준이 될 우려가 있음으로 이미 있는 표준은 중간 치환법으로 대치하고 정해지지 않는 표준에 대하여 먼저 GB를 제정하여 중국에 보급하고 양측에 동일 표준을 채택하는 것을 권고할 필요가 있다.

채택하는 쪽은 민족의 관점보다는 중국시장 진입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표준으로는 옛 자모 입력 두벌식 자판과 번호자판, 옛 자모가 포함 된 세벌식7비트 부호틀(문자 집), 전송 부호틀 식별자(로케일)형식, 한자공통 처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