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공지> 본 협회 이종환 고문 오늘 새벽 1시 별세. 박원웅 부회장 인솔 하에 단체조문 예정. 연락바람’
몇 달 전 부회장직 반납의사를 전해 왔을 때 이상한 예감이 들긴 하였으나,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으니 머잖아 건강한 모습으로 여러분을 만나게 될 것 같다”는 박원웅 신임 부회장의 전언을 우리 ‘한국 방송 디스크자키 협회’회원들 대부분은 믿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이종환 고문의 부음을 접하고 나니 우리 DJ계의 양축 가운데 하나가 무너진 상실감이 밀려왔다.
중년세대치고 이종환의 목소리 안 들어본 이 누가 있으랴? 저 넓디넓은 우주어디엔가 우리처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별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곳의 초청을 받았으리라는 자위로 허탈감을 메우며 대선배의 명복을 빌어본다.
오늘은 남성듀엣 ‘쉐그린’이 ‘노래 꽃 피는 마을’을 방문하였다. 이종환은 신인가수 특히 통기타가수 발굴에도 대단한 열정을 보였는데 그가 운영하던 통기타살롱 ‘쉘부르’가 바로 그 산실이었다. 종로에서 시작하여 훗날 명동에 둥지를 튼 ‘쉘부르’는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유명가수를 수두룩하게 배출해냈다.
이태원, 전언수로 구성된 쉐그린은 그들 가운에 맏이 격이었다. 오늘 소개할 ‘어떤 말씀’에는 197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이들에겐 평생 잊히지 않을 당시의 사회상이 담겨져 있다.
어머님의 말씀 안 듣고
머리 긴 채로 명동 나갔죠
내 머리가 유난히 멋있는지
모두들 나만 쳐다봐
바로 그때 이것 참 큰일 났군요
아저씨가 오라고 해요
웬일인가 하여 따라갔더니
이발소에 데려가 내 머리 싹둑
어머님의 말씀 안 듣고
짧은 치마 입고 명동 나갔죠
내 치마가 유난히 멋있는지
모두들 나만 쳐다봐 (뭘 봐)
바로 그때 이것 참 큰일 났군요
아저씨가 오라고 해요
웬일인가 하여 따라갔더니
그 다음은 말 안 할래요
여러분도 이런 봉변당하지 말고
어서 머리 깎으세요 (머리 깎어)
여러분도 이런 큰일 당하지 말고
어서 긴 치마 입으세요
4월과 5월의 백순진이 작사, 작곡한 ‘어떤 말씀’은 전언수의 익살스런 모습과 잘 어우러져 많은 사랑을 받았다. 노래가 발표되던 1972년 당시엔 대대적으로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을 벌였는데 필자 역시 명동파출소 단골이었다. 그 기준은 남성은 머리카락이 귀를 덮을 시, 여성은 치마밑단이 무릎 위 15센티미터 이상 올라가면 단속대상이었다.
쉐그린은 노래에서는 머리 깎고 긴 치마 입으라고 외치지만 정작 자신들은 장발로 무대에 올라 그 노래내용이 비판적 풍자였다는 것을 암시했다.
세월은 지난날의 고통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고 하던가! 숨 한번 크게 내쉬지 못하고 억눌려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