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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에블린 레이 “when I grow to old to dream”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102]
80년간 변하지 않은 재즈의 전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함께 가는 인생길에서 우린 즐거웠지요

꿈 많던 젊은 시절은 아름다웠고요

당신이 가고 난 뒤 인생도 따라 가겠지요

우리가 부르던 옛 노래처럼

내가 나이 들어 꿈조차 꿀 수 없을 때

당신 모습 떠올리겠어요

내가 나이 들어 꿈조차 꿀 수 없을 때에도

그 모습 내 맘속에 살아 있으리니

그러니 내 사랑, 키스해 줘요

그리고 우리 작별하기로 해요

내가 나이 들어 꿈조차 꿀 수 없을 때에도

그 입맞춤 내 맘속에 남아 있으리니

 

아우님 이리와 인사드리시게. 내가 형님으로 모시는 분이야.”

 

계절은 아직 여름 끝에서 어물쩍 거리는데 마음만 저만치 앞질러 가버린 탓에 종일 우수에 젖던 그날, 소중한 인연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멋쟁이 형님이셔 아우 생각이 나서 모시고 왔지.”

 

오랜만에 만나는 동균 형이었다.

 

그동안 KBO 일이 바빠 못 와 미안하다며 솥뚜껑만한 손바닥으로 내 등을 두드린 뒤 한 노신사를 소개했다. 몸매는 가냘프나 악수를 청하는 노신사의 눈빛에서 우리의 인연이 오래 갈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60년대 학번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들만 골라 들려줬고 우리는 다른 손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목로에 술병이 제법 쌓이자 내일 일정이 바쁘다며 동균 형은 먼저 자리를 떴고 그제서 주위를 둘러보니 밤이 깊었는지 듬성듬성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는 분위기가 맞지 않을 것 같아 말았는데 혹시 When I grow too old to dream 이란 노래가 있소?”

 

형님, 사실 저 오늘 많이 우울했습니다. 가을이 가까워 오니까 옛 생각도 많이 나고 옛 노래도 많이 생각났습니다. 이젠 형님이 청하신 이런 옛 노래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들려줄 사람도 없어요. 그 생각을 하니 슬퍼지더군요.”

 

나는 한동안 잊었던 Evelyn Laye의 음반을 꺼내어 먼지를 닦고 턴테이블 위에 올렸다. 전주가 시작되자 노신사는 눈을 감았고 노래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미동도 없었다. 가끔 수정 알갱이 같은 게 술잔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사실 작년에 내가 상처를 했소. 왜 하필이면 이 노래를 좋아해서 이 노래처럼 되었는지

 

말꼬리가 흐려지는 노신사의 회한은 이 노래에 대한 원망이 아니리라. 영원한 아름다움이리라. 그날 밤 우리는 형제가 되었다.

 

재즈의 전설이 되어버린 이 노래는 1934년에 만들어졌다. Oscar Hammerstein이 쓴 시에다 헝가리계 미국인 Sigund Romberg가 곡을 붙였다. 노랫말과 곡이 아름다워 악보에 나오는 음표 개수보다도 많은 가수가 다투어 불렀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노래의 매력은 변하지 않아 80년이 지난 요즘에도 젊은 가수들에 의해 꾸준히 불리고 있다.

 

오늘 추억한 Evelyn Laye190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뮤지컬극장을 운영하는 부모님 영향으로 열다섯 살에 뮤지컬가수로 데뷔한 후 1929년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