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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일제강점기 대중을 울리고 웃기던 배뱅이굿

[국악속풀이 29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 이어 서도소리 중 배뱅이굿 관련 이야기를 계속한다

 

<서도소리>란 황해도의 산염불이나 난봉가와 같은 노래, 또는 평안도의 수심가(愁心歌)나 긴아리, 잦은아리와 같은 노래들로 대표되는 황해도 지방이나 평안도 지방에서 불리어 온 노래를 아울러서 부르는 이름이다. 서울, 경기소리처럼 서도소리에도 명주실을 뽑아내듯 속청을 사용하는 시창(詩唱), 초한가나 공명가와 같은 좌창(坐唱), 씩씩하면서도 흥겨운 선소리, 그리고 민요와 잡가, 송서, 배뱅이굿과 같은 창극조 등 다양한 소리가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소리라도 서도창이란 수심가조가 기본이 된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배뱅이굿>을 다듬고 정리한 사람은 19세기말 용강의 김관준(金官俊)이라는 스님 출신의 소리꾼이라는 점, 그의 아들 김종조와 최순경, 이인수 등이 그 소리를 이어 받았고, 이인수는 이은관에게, 박준영은 이은관의 그 소리를 이어가는 큰 제자의 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배뱅이굿은 줄거리가 있는 재미있는 소리극조로 주인공 <배뱅이>라는 처녀가 결혼 전에 죽게 되자, 그녀의 혼을 달래주기 위해 8도의 무당들을 불러 굿을 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묘사한다는 점, 노래와, 아니리, 발림이 있어서 그 구성은 판소리와 비교되지만 그 내용이 다소 허망하여 재미 위주라는 인상이 짙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박준영은 이은관의 소리를, 이은관은 이인수, 이인수는 김종조와 그의 아버지 김관준의 소리제를 이어받고 있어서 배뱅이굿의 역사는 적어도 120여년 전의 소리계보를 지니고 있는 전통의 소리라는 점에서 문화재적인 가치가 크다 할 것이다. 참고로 김관준의 배뱅이굿이 불리기 시작할 무렵, 이와 비슷한 시기의 서도의 유명한 명창으로는 장계화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배따라기><영변가>로 유명했다.

 

현재 불리고 있는 영변가는 5절에 불과하지만, 장계화가 부르는 영변가는 10절이었다고 하니 당시의 소리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고 많이 잃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장계화는 제자를 기르지 못하고 타계하였으니 전승과정에 신경을 못써준 당시의 정책이 아쉽기만 하다. 또한 곽바람과 최바람이 수심가를 잘 불렀다고 전해 오며 배종빈은 진남포에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쳐 여러 명창이 나왔다고 한다.

 

원각사 시절에는 서도 날탕패로 문영수나 이정화 등이 재담가인 박춘재와 더불어 유명했으며 그들의 음반은 다수가 남아 있어 유명세가 짐작이 되고 있다.

 

평양 기성권번 선생이었던 김밀화주는 장학선, 이정렬, 이반도화 같은 명창들을 길러냈고, 일제강점기 시절 서울에서 서도소리로 이름을 떨치던 이진봉, 김옥엽, 이영산홍, 백운선, 백모란 등은 하규일이나 장계춘에게 가곡, 가사, 시조를 배워 소리의 폭을 넓혔으며 유산가를 비롯한 경기좌창도 잘 불렀다고 전한다.

 

김관준의 <배뱅이굿>을 이어받은 김종조와 이인수는 유명한 명창이었는데, 특히 이인수는 평양은 물론이고, 황해도 지방에 널리 알려진 명창이었다. 강원도 철원 노래자랑에서 1등을 한 20살 전후의 젊은 이은관은 황해도 황주로 이인수를 찾아가 수년간 서도창과 배뱅이굿을 착실하게 배운 뒤, 서울의 극장가를 돌며 일약 대스타가 되었다. 당시 여류명창으로는 김계춘이 유명하여 이은관과 쌍벽을 이루었는데, 서로의 장기가 달라 이은관은 청중을 웃기는 배뱅이고, 김계춘은 청중을 울리는 배뱅이로 유명했던 것이다


       

박준영이 부르는 이은관류의 배뱅이굿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서울 장안에 이정승, 김정승, 최정승이 재산은 많으나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어 명산대찰을 찾아가 정성껏 빌어서 세집이 각각 딸을 낳게 되었다. 이정승의 딸 세월이와 김정승의 딸 네월이는 성장하여 결혼을 하였으나, 최정승의 딸 배뱅이는 혼인을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시주를 나온 상좌중과 눈이 맞아 사랑을 하게 되었고, 다시 온다고 약속하고 떠나간 상좌중이 돌아오지 않자 배뱅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

 

그래서 부모는 각도의 무당들을 불러 배뱅이 죽은 넋이나 듣자고 굿을 하게 되는데, 때마침 평안도 건달이 주막집에 들렀다가 주모에게 배뱅이네 집 내력을 다 알아가지고 굿판에 들어가 배뱅이 혼이 온 것처럼 사실적으로 굿을 하게 된다. 널리 알려진 대목, ‘왔구나, 왔소. 배뱅이 혼신이 평양 사는 박수무당의 몸을 빌고 입을 빌어 오늘에야 왔구나, 오마니 오마니 우리 오마니는 어디가고 딸자식 배뱅이가 왔구나 하는데도 모른체 하나요라는 대목은 소리꾼이 흐느끼며 구슬프게 우는 대목으로 유명하다.

 

이 대목을 잘 표현하는 소리꾼이어야 대중의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배뱅이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구슬프게 울던 그 건달 무당은 주막집 주모에게 사전에 들어알던 <노랑돈 아흔 아홉냥 칠푼 오리>이야기에 구경꾼들은 놀라게 되고, 이어서 <세월이와 네월이의 손을 만지는> 이야기, <배뱅이 아버지 갓 고르는 이야기> 등으로 진짜 배뱅이가 온 것처럼 부모와 동네사람들을 속여서 돈을 많이 벌어 떠나간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소 허황되고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일제강점기 때 웃음을 잃고 살던 당시의 대중들을 울리고 웃기는 대목이 많아 그런대로 인기를 끌던 서도의 창극조임엔 틀림없다.

이 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박준영은 부모님이 즐겨 들던 배뱅이굿을 어려서부터 접하면서 심취하게 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소리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국가문화재 서도소리 준보유자로 배뱅이굿을 열심히 지켜가고 있다. 평소에도 그는 소리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습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경기소리축제에서 영예의 대통령상 수상을 비롯하여 각종 대회에서의 큰 상이나, 국내외의 무대공연, 방송활동, 음반제작 등이 그의 소리 공력을 인정하고도 남게 만든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 사람들은 그를 정직한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인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소리도 잘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한 박준영 명창이야말로 성공한 국악인이 아닐 수 없다.